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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수연 Mar 22. 2020

부탁 받지 않은 조언은 공격이다.

안다고 생각했던 나, 몰랐던 것을 알다.




내가 유일하게 아는 것은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 소크라테스   




온라인 커뮤니티 '까미노 친구들의 연합'은 산티아고 순례길을 여행하는 이들에게 보물창고 같은 곳이다. 여행에 대한 모든 정보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도 궁금증이 생길 때마다 들러서 도움을 받았다. 여행에 대해서 만큼은 두려움이 없는 전직 승무원인 나도 한달이나 걷는 여행은 미지의 세계였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어느 여행자의 글을 보았다.


그녀는 여행의 1/3 지점에 도착했다. 고통은 극에 달했고, 여행의 목적을 잃어버렸다. 여행을 지속할지 포기할지 고민과 혼란스러움을 가득 담은 글이었다.


‘제가 대체 왜 여기 왔는지 모르겠어요.
포기하고 돌아가면 실패하는 것 같아서 싫은데 여기 있다고 해도 괴롭기만 하고 하나도 즐겁지가 않아요. 저만 그런가요?’



여행 질문서
 

“당신이 안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나는 그녀의 마음이 어떤지 안다."



나는 그녀의 고통을 안다.

나에게도 사무치게 고통스럽고 외로웠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이 나를 성장시켰듯 그녀도 고통을 이겨내야 한층 성장할 수 있을것이다.

... 라고 생각했다.  



안타까웠다.

게스트하우스 1인용 침대에 누워 집에 갈까 말까 고민하는 그녀가 안타까웠다.

내 마음이 불편해서라도 문제를 해결해주고 싶었다.


‘여행의 목표를 세워보세요.’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얼마나 뿌듯할지 상상해보세요.’

'그만두세요. 당신 자신을 소중히 여기세요.’


여러 조언의 말들이 떠올랐다.


온라인 답글로 그 말들을 전달하려다가 그만두었다.

조언들은 당사자에게 전해지지 못한 채 허공에 둥실둥실 날아다녔다.


그녀가 얼른 고통을 이겨내고 마음의 평화를 찾아야 할 텐데. 안타까운 마음이 한동안 지속되었다.



안다고 생각했던 나,

몰랐다는 것을 알다.


그러나 그 길에 오른지 단 3일째 되던 날 깨달았다.

그 안타까운 마음이, 조언들이 얼마나 황당한 것이었는지를.


그래도 그녀는 열흘이라도 버텼지 난 고작 3일 만에 위기가 닥쳤다.

 

‘내가 대체 여기 왜 왔지?'


질문에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모를 만큼 혼란스러웠다. 처음 겪어보는 고통이었기 때문이다.


난 분명 여행의 목표를 제대로 정하고 왔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온몸이 두드려 맞은 듯 쑤셨기 때문에 목표 같은 것은 어떻게 되던 아무 상관없었다.


사실은 난 하나도 몰랐던 것이다. 그녀가 정말 어땠는지를.

그저 비슷한 조건의 상황을 상상하며 가늠했을 뿐이었다.


겪어보니 전혀 다른 이야기.

아무리 비슷한 것을 겪었어도 그것과 이것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고통에 머물러 있는 그녀가 안타까웠었다. 생각만 달리 먹으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 텐데.라고 생각했었다.

 

그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도 모르면서.

아무것도 모르면서 아는 체 실컷했다.


안타까운 것은 그녀가 아니라 나 자신이었다.



혼자만 아는 자기 세상과의 결투. 그 고통을 누가 알겠어?




전하지 않아 다행인 조언


그날 그녀에게 조언하지 않아서 천만다행이었다.


만일 울고 싶던 내게 누군가 조언을 하며 내 마음을 변화시키려 했다면 짜증이 났을지도 모른다.

전혀 위로받는다고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위로라는 이름으로 공격하고 공격받는다.




자기 경험을 가지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안다고 생각하는 것은 위험하다.

자기 경험으로 오로지 자기 문제 해결만 가능하다.


상대는 나와 기질도 성격도 다르다.

전혀 다른 열쇠를 들이밀며 열어보라고 한들 자물쇠는 결코 열리지 않는다.


서로 잘 안다고 생각하는데 알고 보면 끊어져 있다.  


‘내가 네 마음이 어떤지 아는데…’

‘네가 지금 어떨지는 잘 알겠는데….’


이것보다 웃기는 소리가 있을까?

정말 알고 싶다면 물어보는 편이 좋다.


'마음은 좀 어때?'

'네 마음이 어떤지 얘기해 줄 수 있어?'


질문은 연결의 열쇠이다.

 


부탁받지 않은 조언은 공격이다.




누군가 힘들어하는가?

그를 돕겠다는 아름다운 마음으로 해결책을 제시하거나 조언을 하고 있는가?

그의 감정을 긍정적이고 편안하게 변화시키고 싶은가?  


그렇다면 해결책 제시나 조언은 더더욱 안된다.

상대방에 대한 존중이 빠진 도움은 자기 만족일뿐이다.   


그의 상황을 알 것 같다고 착각하면 곤란하다.

그것은 나에게 대입한 내 이야기일 뿐, 나는 그가 아닌 나 자신에게 감정이입 하고 있을 뿐이다.  


위기가 닥치면 나는 보통 재빨리 생각을 변화시켜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그 방식을 그녀에게 적용시켰다. 그녀의 생각을 변화시키고 싶었다. 그런 도움을 주고 싶었다.


나는 그녀의 고통에 머물지 못했다. 그녀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했다. 존중하고 인정하지 못했다. 그녀의 성격, 욕구, 살아온 환경도 전혀 모른 채. 나에게 대입했을 뿐이다.


만일 그 길을 걸어보지 않은 누군가가 나의 고통을 이해한다고 말했다면 난 몹시 황당했을지도 모른다. 섵부른 조언이라도 해줬다면 분노하고 상처받았을지도 모른다.


사람이 연약할 때는 다른 사람의 좋은 의도까지 헤아릴만큼의 힘이 없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 되려 공격하고 있잖아?




너나 잘하세요.


우리는 자신의 관점으로 세상을 본다. 좋은 사람이고 싶은 좋은 마음으로 상대를 돕고자 한다. 그러나 자기 세계에서 큰 힘을 발휘했던 칼은 상대의 세상을 무참히 찌르고 상처 입히기도 한다.


나에게 필요한 것이 때론 상대에게 독이 될 수 있다.


독을 피해 도망치는 상대를 탓한 적은 없을까?

나의 호의를 몰라주고 달아나는 상대에게 섭섭하고 서운하진 않았을까?



나에게 필요한 해답은 모두 내 안에 있다.




누가 물어봤어?


이런 일은 가까운 관계에서 더욱 빈번히 발생한다. 자신의 경험에서 배운 최고의 방법을 가르쳐주며 나의 감정과 존재를 변화시키려 하는 사람들 때문에 그동안 많은 상처를 받아왔음에도 똑같이 하고 있다.


누군가가 느끼는 아픔을 내가 다 알 수 없다는 것.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라도 소중한 사람을 잘 돕고 싶다면,

정말로 도와주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제대로 도우려면,


1. 상대의 생각과 감정을 존중하고

2. 함께 머물러주며

3. 원하는 것을 물어 그가 원하는 도움을 주자.


이 방법은 내가 아무것도 모름에도 그를 제대로 도울 수 있는 방법이 될 것이다.  


깨달음을 얻고 싶은 어떤 수행자가 큰스님에게 물었다.

‘스님, 깨달음이란 무엇입니까?”

큰스님이 대답했다

“내가 바보 멍청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깨달음이다.”



여행 질문서

“당신이 안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송수연 코치는 10년간의 직장생활을 때려치우고 현재는 '어떻게 잘 살아야 할까?'라는 주제로 강연과 코칭을 하며 살고 있습니다. 당신의 '잘 삶'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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