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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베이킹랩 이성규 Apr 07. 2020

토종밀, 고대밀 빵 테이스팅

밀이 다르면 빵도 달라질까?


밀과 밀가루를 공부하며 줄곧 품어왔던 의문이다. 빵 굽는데 밀가루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후 밀과 밀가루 공부를 시작했다. 시중에 대량 유통되는 밀가루는 대부분, 아니 전부가 육종 된 밀을 제분한 밀가루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육종으로 밀 소출은 늘었으나 그 반대급부로 밀은 고유의 풍미를 잃게 되었다는 사실도. 산업화된 농업 체계에서 밀은 개성 없는 일상재(commodity)가 되었다.


"밀가루만 다를 뿐인데 빵이 이렇게 달라지다니, 참 놀랍다. 굉장히 새롭고 좋은 경험이었다."


빵 테이스팅에 참가했던 많은 분들의 반응이다. 빵집 아쥬드블레를 그만둔 후, 우리밀 빵 연구를 위해 더베이킹랩을 열었다. 토종밀, 고대밀 빵 테이스팅은 더베이킹랩의 대표 프로그램인 <빵톡: 우리밀과 빵 이야기>  시리즈의 첫 번째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은 짧은 강의와 빵 테이스팅으로 구성되어 있다. 강의는 그동안 밀 공부를 통해 알게 된 내용들을 풀어놓는다. 베이커로서 밀에 관심을 갖게 된 경위, 수입밀과 우리밀에 대한 담론, 토종밀과 고대밀이 육종 밀과 다른 점, 직접 기르고 있는 밀 품종, 우리밀의 제빵 특성 분석 결과, 마지막으로 우리밀이 나가야 할 방향에 대한 나의 생각으로 끝맺는다.


빵 테이스팅은 강의에서 소개한 다양한 밀로 구운 빵을 맛보는 시간이다. 참가자들은 미리 나누어 드린 평가표의 순서에 따라 각 빵의 모양, 풍미, 향 등을 평가한다. 밀가루에 따른 빵의 차이를 평가해 보는 것이다. 테이스팅에 포함된 빵은 5가지 서로 다른 밀가루로 굽는다. 토종밀 2종, 고대밀 1종, 개량종밀 1종, 그리고 수입밀 1종.


토종밀은 우리 토종 앉은뱅이밀과 캐나다 토종밀 Red Fife이다. 충남 청양과 공주에서 기르고 있는 토종밀로, 두 품종 모두 종자 보존의 가치를 인정받아 슬로푸드 맛의 방주에 등재되었다. 고대밀로는 스펠트를 선택하였다. 2018년 여름, 러시아 연수 때 바질리가 맷돌로 제분한 스펠트로 빵을 구웠는데 그 넛티한 스펠트의 풍미가 아주 인상적이었다. 개량종밀은 금강밀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재배하고 있는 우리 밀 품종 중의 하나로 제빵성이 좋다. 수입밀은 유럽빵을 굽는 베이커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프랑스의 T55 밀가루를 사용한다.


프로그램을 준비하며 여러 차례 테스트 베이킹을 했다. 발효는 사워도우 발효가 아닌 이스트 발효를 취했다. 이스트 발효가 사워도우 발효보다 밀 본연의 향을 더 잘 나타낼 수 있기 때문이다. 제빵용 이스트는 아주 소량만을 사용하였다. 재료 비율과 제빵 공정은 동일하게 했음에도 오븐에서 나온 빵은 모두 달랐다. 봉긋하게 잘 부푼 것부터 좀 납작한 것까지, 기공이 크게 열린 것부터 거의 없는 것까지, 풍미 또한 같은 것이 없었다. 총 4시간의 짧은 발효에도 불구하고 빵의 풍미는 대단했다. 특히 토종밀, 고대밀로 구운 빵은 밀의 풍미가 강하게 풍겨져 나왔다. 이들 빵에 비하면 개량종밀과 프랑스밀로 구운 빵의 풍미는 밋밋하게 느껴졌다. 밀이 다르면 빵도 다르다는 걸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빵 하나하나에 코를 박고 밀과 발효의 향을 맡고 있으니 참으로 행복했다.


여러 차례 테스트 베이킹으로 배합과 공정 조건을 확정한 후, 여러 차례 빵 테이스팅을 열였다. 베이커들을 대상으로 열었고, 더베이킹랩 오픈 기념으로 음식 관련된 일을 하시는 분들을 초청하기도 하였다.


베이커들이 참가한 빵 테이스팅에서는 행사 중 직접 빵을 구웠다.

밀가루 100%
물 68%
소금 2%
인스턴트 드라이 이스트 0.3%


빵 재료 배합표이다. 수분율 68%의 시골빵이다. 밀가루, 물, 소금, 약간의 제빵용 이스트, 기본 재료만으로 굽는 빵이었다. 기본 재료로만 구운 빵도 밀가루만 좋으면 맛있고 개성 있는 빵을 구울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공정도 제빵 기본 공정과 다를 바가 없다. 다만, 반죽 시 오토리즈를 적용하여 믹싱 시간을 줄인 게 차이라면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스탠드 믹서로 저속 3분,
오토리즈 30분,
소금 추가 후 저속 3분,
1차 발효(온도 32도, 습도 80% 발효실) 2.5시간, 30분, 60분에 늘여 접기 각 1회
분할(500g), 성형(불, 바타르)
2차 발효(온도 32도, 습도 80% 발효실) 1시간
굽기 30분(240/240도, 마지막 10분 vent open)
식히기 30분


테이스팅은 블라인드이다. 빵 굽는 데 사용한 밀 품종 이름은 가려 놓았다. 5개의 쟁반에 담겨 있는 빵을 앞에 두고 참가자들은 빵을 하나하나 요리조리 살피고 맛을 보며 평가를 하였다. 그리고 각자의 평가표에 있는 평가 항목에 평가결과를 기록하였다. 참가자들이 테이스팅에 얼마나 집중하는지 행사장이 조용해질 정도였다. 때로는 옆에 있는 참가자들과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테이스팅이 관능평가이고 평가지표 자체도 지극히 주관적인 것들이라서 평가가 쉽지만은 않다. 또한 그 평가 결과를 분석하는 일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참가자들이 어떤 빵을 선호하는지만 알아도 평가는 충분한 의미가 있었다.


빵 테이스팅에 대한 구상은 6년 전 밀 종자를 수집할 때 시작되었다. 밀 육종으로 사라진 밀 고유의 풍미가 궁금했던 나는 육종 이전의 밀을 찾아보자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렇게 육종 이전의 밀인 토종밀과 육종밀을 만나게 되었다. 토종밀, 고대밀은 과연 밀 품종 하나하나가 다 서로 다른 맛을 가지고 있었다. 토종밀, 고대밀 빵 테이스팅 참가자들 또한 빵을 보고, 만지고, 냄새 맡고, 먹으며 밀 맛이 밀 품종에 따라 다르며, 그 밀로 만든 빵도 다 다르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그 사실에 놀라워했다. 나는 테이스팅을 통해 밀의 새로운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빵 테이스팅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였다.


같은 배합에 밀가루만 다를 뿐인데 맛이 이렇게 다르다는 게 놀랍다. 굉장히 새롭고 좋은 경험이었다.
밀에 대해 진지하게 이론적 접근 경험을 하게 된 소중한 기회. 밀 종류에 따른 빵 테이스팅도... 어디서도 경험하지 못할 재미있고 학구적인 수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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