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8시 빵집 문이 닫힌다. 영업이 끝난 빵집의 진열대엔 팔리지 않은 빵이 남아 있기 일쑤였다. 남은 빵은 다음날 베이커의 간단 식사가 되거나 냉동실에 처박히는 신세가 되었다. 문제는 남은 빵을 무한정 냉동실에 넣을 수 없다는 데 있다.
남은 빵을 처리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처음엔 푸드뱅크에 기부하려 했다. 하지만 생각을 금방 접었다. 다음날이 되면 딱딱해지는 사워도우 빵을 기부했다가 들을 원성이 미리 걱정이 되었다. 더군다나 우리 빵은 다음날이면 이런 빵을 어찌 먹으라고 주느냐는 원성을 듣던 우리밀로 굽는 사워도우 빵이 아니던가(물론 지금은 딱딱해지는 문제를 어느 정도는 해결했다).
그럼 음식물 쓰레기로 버려야 하나? 그러기엔 너무 가슴이 아팠다. 빵의 주재료인 밀을 기르기 위해 얼굴, 팔뚝 등 피부란 피부는 모두 그을린 농부 황진웅 선생의 노고와 빵을 만들기 위해 이틀간 들인 나의 정성과 노력의 결과물을 음식물 쓰레기봉투에 처박는 건 차마할 수 없었다.
나의 텃밭이 떠올랐다. 그래 텃밭에 내면 거기서 자라는 밀에게 좋은 거름이 되겠지. 그날부터 팔다 남은 빵을 밀가루 포대에 담았다. 20킬로짜리 밀가루 포대가 차는 데는 며칠 걸리지 않았다. 포대가 두세 개 차면 차에 싣고 텃밭으로 향했다. 텃밭 고랑에, 줄지어 자라고 있는 밀들 사이에, 퇴비 더미에도 던져놓았다. 빵이 쌓인 퇴비더미는 그 높이가 점점 높아져 갔다. 그 기세가 마치 만리장성이라도 쌓을 듯 했다.
빵이 깔린 텃밭에선 빵 향의 향연이 펼쳐졌다. 심지어 텃밭 입구에서부터 희미하지만 향긋한 빵 향을 맡을 수 있을 정도였다. 텃밭에 낸 빵에겐 우리 빵집과는 달리 수많은 단골 손님이 있었다. 지렁이도 공벌레도 텃밭에 살고 있는 미생물도 빵을 좋아했다. 이들 단골 손님의 왕성한 식욕에 힘입어 빵은 금세 부숙이 되어 검은색 흙으로 다시 태어났다. 영양분이 풍부한 검은흙은 텃밭 작물에게 좋은 영양분을 제공했다. 흙에서 나온 것을 다시 흙으로 돌리는 닫힌 순환의 수레바퀴가 돌기 시작한 것이다.
남은 빵을 텃밭에 내는 일상을 반복하고 있던 어느 날 나는 페이스북에 이런 소회를 남겼다. 때는 마침 텃밭에서 자라고 있던 밀이 이삭을 피울 준비를 하고 있을 즈음이었다.
빵은 다시 밀밭으로. 팔지 못하고 남은 빵 일주일치를 모아 밀밭에 냅니다. 빵 위로 마른풀을 두텁게 덮어둡니다. 이제 곧 이삭을 피울 밀들에게 좋은 양분이 되겠죠. 그 밀을 수확 하여 다시 빵을 구울 겁니다. 밀밭과 빵집 사이의 순환이 이렇게 이루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