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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베이킹랩 이성규 Apr 05. 2020

어! 정말 온다고?

2017년 페이스북을 통해 바실리(Vasiliy)를 알게 되었다. 아마도 페이스북 친구 추천 목록에 나타난 그에게 친구 신청을 넣은 게 인연의 시작이었을 것이다. 그는 러시아의 멋진 도시 니즈니 노브고로드  근처의 시골마을에서 밀농사를 짓고, 맷돌로 밀가루를 내고, 빵을 굽는다.


종종 메신저로 러시아의 빵과 밀농사에 대해 질문하였고 그는 나의 궁금증을 속시원히 해결해 주었다. 내가 꿈꾸고 있는 일들을 먼저 해나가고 있는 그가 부러웠다. 페이스북에 가끔씩 올라오는 드넓은 밀밭 사진, 맷돌 제분기, 맛있게 구워진 빵이 가득인 화덕 사진을 보며 가슴이 설레었다. 새벽에 요란하게 울리는 휴대폰을 열어보면 어김없이 그가 보낸 메시지가 있었다. 어떤 때는 집에 있는 사우나에서 나와 목욕가운만 입고 머리에 김 모락모락 내며 눈밭을 뛰어다니는 아이들 동영상이 있었다. 한 번은 한겨울 두껍게 쌓인 눈 사이 물웅덩이에서 수영하는 친구 동영상을 보내오기도 했다. 한 번쯤은 그를 꼭 만나보리라. 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에게 너 보러 한번 가야겠다고 했다. 그는 아마 '녀석이 농을 치고 있군'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2018년 5월, 일찌감치 모스크바 경유 니즈니 노브고로드행 항공권을 예매했다. 그날 바로 항공권을 복사하여 그에게 보냈다. 

"어! 정말 오는 거야?"

"그럼! 농담인 줄 알았냐? 7월 말에 보자고. 공항으로 픽업은 와야 돼."

"그... 그래."


당황하는 그의 모습이 메신저의 메시지로 전해졌다.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그를 만나기 위해 러시아 시골로 정말 찾아올 거라고는 예상치 못한 게 분명했다. 


2018년 7월 마지막 날 늦은 밤, 마침내 그를 만났다. 제분한 밀가루와 직접 만든 마카로니가 가득 담긴 트레일러가 붙어 있는 짙은 청색의 클래식한 자동차를 몰고 나온 바실리를. 덥수룩하게 기른 수염을 자랑스럽게 쓸어내리며 자신을 바바리안이라고 소개했다. 대학에서 국제관계학을 공부하며 외교관을 꿈꾸던 청년이 농사에 빠져 농을 천직으로 삼게 되었다고 말할 땐 그의 얼굴에 자신감과 뿌듯함이 가득하였다.


공항에서 하룻밤 머물다 갈 숙소로 이동하는 한 시간 남짓한 시간, 우리는 밀, 귀리, 헴프, 메밀 등 곡식 이야기, 유기농법 이야기, 제분 이야기, 빵 이야기, 그리고 러시아의 전통 음식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농사와 음식의 전통을 중시하고 그 가치를 지속해 나가고자 하는 그의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날 밤, 나는 앞으로 며칠간 그와 함께 보낼 시간에 대한 기대감으로 들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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