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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베이킹랩 이성규 Aug 05. 2020

스웨인, 빵 완판 했어!

화덕 빵의 추억

러시아의 시골엔 집집마다 페치카라는 화덕이 있다. 맞다. 예전에 군대에서 부르던 바로 그 페치카다. 집 한가운데에 벽돌을 쌓아 만든 페치카는 러시아의 추운 겨울을 나는데 없어서는 안 될 난방설비이자 남은 열로 음식을 하는 조리설비이기도 했다. 물론 지금은 시골 동네에도 천연가스가 공급되기 때문에 페치카는 더 이상 쓸모가 없어졌다.


바실리가 살고  있는 푸체즈에는 페치카가 있는 집들이 아직 꽤 많다. 바실리는 화덕 빵을 구워야겠다는 나를 위해 빈집을 하나 섭외해 놓았다. 그는 자신의 화덕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메신저로 보내온 화덕 사진은 친구네 집에 있는 페치카 사진이었다. 너 만나러 가서 니 화덕에 빵을 꼭 구워볼 거라며 예매한 항공권 사진을 보냈을 때 바실리는 얼마나 당황했을까?


섭외해 놓은 빈집은 우리 숙소에서 100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버려진 지 오래되었는지 집 주위로는 잡목이 우거져 있었다. 사람이 드나들 수 있을 정도로 잡목을 쳐내고 들어간 집 안엔 전에 살던 사람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가 가득했다. 페치카 주위에 있는 쓰레기를 치우고 페치카 안쪽을 살펴보니 다행히도 페치카는 멀쩡했다. 마른 가지를 주워와 불을 피워 보니 연기가 새는 곳 없이 굴뚝으로 잘 빠져나갔다. 드디어 화덕에 빵을 구워 볼 수 있겠구나! 흥분으로 가슴이 떨렸다. 빵을 굽는 사람들은 누구나 화덕 빵에 대한 로망이 있다. 나도 예외는 아니다. 이제 그 로망을 실현할 수 있게 되었으니 어찌 흥분하지 않을 수 있을까.


푸체즈에 머문 5일 동안 화덕 빵을 세 번 구웠다.


첫 번째는 

화덕과 밀가루 특성을 알아보기 위한 테스트 베이킹이었다. 화덕에 불을 지필 장작은 바실리가 새벽같이 가져다 놓았다. 그것도 은빛 수피가 아름다운 자작나무 장작으로. 자작나무 장작이라니 호사도 이런 호사가 없다. 장작불에 화덕이 달구어지는 동안 페치카가 있는 거실 한편에 미리 해놓은 반죽을 발효시켰다. 빵 반죽은 바실리가 맷돌로 제분한 현지에서 재배한 유기농밀에 바실리의 아내가 키우고 있는 사워도우 스타터를 넣었다. 화덕이 데워지는데 예상보다 시간이 더 걸리는 바람에 반죽은 이미 처지기 시작하였다. 서둘러 분할 성형하여 2차 발효에 들어갔다. 한번 처지기 시작한 반죽은 강한 성형에도 불구하고 금세 축 늘어졌다.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 화덕에서 타다 남은 장작과 재를 꺼내고 물에 적신 천으로 바닥을 한번 훔친 후 빵 반죽을 넣을 차례. 한데 반죽을 화덕에 넣을 도구가 없다. 도구의 용도를 설명하자 바실리는 밖으로 나갔다. 돌아돈 바실리의 손엔 삽 한자루가 들려 있었다. 꿩 대신 닭이다. 반죽을 삽에 하나씩 올리고 칼집을 낸 후 화덕에 차례대로 넣고 화덕 문을 닫았다.


10분이 지났다. 화덕에서 빵이 어떻게 구워지고 있는지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다. 10분이 10시간 같이 길게 느껴졌다. 화덕 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화덕 입구로 수증기가 확 밀려 나왔다. 화덕의 기밀성이 좋다는 증거다. 빵이 잘 부풀고 귀도 잘 나왔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들었다. 하지만 화덕 안에서 구워지고 있는 빵은 기대와는 다른 모습으로 구워지고 있었다. 뭐 처음 시도니까, 밀도 오븐도 익숙하지 않은 거니까 충분히 그럴 수 있다.


빵이 다 식기를 기다려 잘라보았다. 맷돌 제분한 통밀로 구운 사워도우 빵 치고는 나쁘지 않은 내상이었다. 맛은 뭐 더 말할 필요가 없었다. 첫 번째 빵은 우리가 다음날 아침으로 먹을 네댓 개를 빼고 모두 바실리에게 주었다. 다음날 아침 숙소로 찾아온 바실리는 빵을 밀 수확하고 있는 일꾼들에게 주었는데 모두 맛있다고 하더라는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빵을 또 굽자고 재촉하였다.


 

두 번째 화덕 빵

맷돌 제분한 통밀가루에서 체질로 밀기울을 제거한 밀가루에 맷돌 제분한 스펠트 통밀가루를 섞어 구웠다. 스펠트는 인류가 아주 오래전부터 재배해 온 고대밀이다. 독일어권에서는 딩켈(dinkel)이라고 부르며 최근 제빵계에서 다시 각광을 받고 있다. 스펠트로 만든 빵이 궁금하던 차였는데 마침 바질라프가 유기농법으로 스펠트를 재배하고 있기에 바질리에게 밀가루를 조금 내어달라고 부탁해 놓았었다. 마침 엊저녁 리프레쉬해 놓은 스타터도 있겠다 바로 르방을 만들었다. 르방을 4시간 정도 발효시킨 후 반죽을 했고 발효를 거쳐 화덕에 구웠다. 어제의 경험을 바탕으로 화덕을 데우는 시간을 고려하여 발효 타이밍을 조절하였다.


맷돌 제분 통밀가루(밀기울 제거) 80%
맷돌 제분 스펠트 통밀 20%
물 72%
르방 40%(수분율 100%)
소금 2%
꿀 2%

르방 4시간 실온
오토리즈 30분
1차 발효 5시간
2차 발효 1시간
굽기 30분



화덕에서 나온 빵은 볼륨도 내상도 만족스러웠고 맛도 좋았다. 스펠트의 풍미가 예술이었다. 20%를 넣었을 뿐인데 풍미가 참 대단했다. 다만 르방이 정점에 이르기 전에 반죽을 해서 산미가 거의 없는 점과 천 위에서 2차 발효하다 보니 덧가루를 과도하게 뿌려 크러스트 색이 안 나고 이에 따라 메이야르 반응이 약하게 일어난 점이 아쉬웠다. 하지만 스펠트의 풍미가 이 모든 아쉬움을 메워주기에 충분한 빵이었다.


화덕에서 나오는 빵을 보며 바실리는 오늘도 흥분했다. 평생 빵을 주식으로 먹었지만 이렇게 멋진 빵은 처음 본단다. 이날도 바실리는 우리가 먹을 빵 네댓 개 만을 남기고 다 식지도 않은 빵은 다 들고 갔다.


 맷돌 제분 통밀 80%
맷돌 제분 스펠트 통밀 20%
물 72%
르방 40%(수분율 100%)
소금 2%
꿀 2%

르방 4시간
실온 오토리즈 30분
1차 발효 3시간
2차 발효 1시간
굽기 30분


그리고 또 다음날,

바실리는 희희낙락하며 우리를 찾아왔다. 스웨인, 빵 완판했어. 스웨인은 내 영어 이름이다. 어제 어떤 행사장에서 빵을 팔았는데 순식간에 완판 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몇몇 사람들에게 예약도 받았단다. 그래서 그날도 빵을 구웠다. 이번엔 빵 완판 기념 베이킹.

이 날은 호밀빵을 구워보고 싶었다. 호밀과 밀을 반반씩 섞어 구운 빵, pain de meteil. 당시 아쥬드블레에선 메테이유라는 이름으로 판매하던 빵이다. 이번엔 밀 르방이 아닌 호밀 르방으로 발효하였다. 호밀빵이야 맛을 보지 않고 모양만 봐도 맛있는 빵이다.


맷돌 제분 통밀가루 50%
맷돌 제분 호밀 통밀 50%
물 76%
호밀 르방 40%
소금 2%
꿀 2%

르방 12시간 실온
오토리즈 30분
1차 발효 3시간
2차 발효 1시간
굽기 30분



화덕 빵(왼쪽이 두번째, 오른쪽이 세번째)



화덕 빵 굽기는 참 재미있었다. 러시아 밀, 스펠트, 호밀로 빵을 구워 보는 것 또한 소중한 경험이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어떤 밀로도 빵을 구울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갖게 된 건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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