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추운 겨울날이었다.
모처럼 휴일을 맞아 늦도록 잠을 자고 있었는데 불길한 전화가 울렸다. 전화번호는 회사 선배 번호.
자는 척 전화를 받지 않을까 열번 정도 고민 끝에 전화를 받았다. 아니나 다를까 의정부의 한 아파트에서 불이 크게나 급히 취재를 나가야 한단다. 요청이 아닌 사실상 명령이었다.
우울한 마음을 가지고 수십km를 달려 의정부에 도착했다. 차에 내리자마자 북방의 삭풍이 불어닥쳤다. 무척 추운 겨울이었다.
불이 난 아파트에서 난 잿빛 연기는 하늘을 회색으로 얼룩지고 있었다. 회색 하늘을 보면서 뭔가 그 색깔이 내 마음 속 색상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잿빛 속을 형형색색으로 물들일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아무래도 음악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악기는 평소 배우고 싶었던 바이올린이었다.
취재를 다녀온 다음날 바이올린 학원에 전화를 걸어 방문 약속을 잡았다. 그리고 지금까지 5년넘게 이어져 온 바이올린 라이프의 시작이었다.
돌이켜보면 최고의 선택이자 최악의 선택이었다.
서른 살이 다 되어갈 때 시작한 데다가 음악적 재능도 부족해 배우는데 지금도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들어갔던 돈과 시간을 헤아리면 홧병이 생길 것만 같았다.
그렇지만 바이올린을 하면서 단순한 배움과 연주에 그치지 않고, 바이올린에 대한 악기 자체 연구와 역사, 악기를 만드는 제작자부터, 좋은 악기를 구하는 방법까지 연구를 시작했고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다행히 직업이 기자인지라 바이올린에 몸 담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할 기회가 조금은 있었고, 그들과의 대화를 통한 지식들을 잊기 아까워 조금씩 메모를 한 것이 이 글의 시작이다.
처음에는 오로직 메모 형태로 혼자만의 글로 남겨놓으려고 하다가, 조금이나마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 이 곳에 연재를 시작한다.
글은 주관적인 해석과 객관적인 사실을 근거로 하며, 때로는 추측과 불명확한 사실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참고적인 용도로 봐줬으면 좋겠다. 또한 타인을 비방할 의도가 없음을 미리 밝힌다.
<Giovanni Battista Guadagnini, Parma circa 17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