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린 이야기 #10
지난 2010년 프랑스 파리에서 바이올린 역사상 유례없는 대결이 벌어졌다. 바로 바이올린의 정점인 스트라디바리우스와 현대악기의 '블라인드 테스트'. 연주자의 눈을 가린채 무작위로 스트라디바리우스와 현대악기를 연주했고 선호하는 소리를 내는 악기를 고르게 했다.
결과는 의외였다. 물론 스트라디를 선호하는 연주자도 있었지만 의외로 오늘날 제작된 악기를 마음에 들어하는 연주자도 있었다. 그렇다면 스트라디바리우스는 그저 이름값일 뿐이고, 올드악기 소리는 큰 의미가 없다는 뜻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블라인드 테스트에 동원된 현대악기는 동네 악기상에서 살 수 있는 허접한 공장제 악기는 아니다. 현존하는 최고의 제작자의 악기다. 그렇다고 해도 빌딩 한 채 값인 스트라디바리우스가 1억원 이하의 새악기와 엇비슷한 평을 받았다는 굴욕이 아닐 수가 없다.
블라인드 테스트가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올드악기와 새악기 논란은 현재 진행형이다. 테스트 결과를 신뢰하지 않는 올드악기파가 있고 새악기가 여러모도 더 낫다고 믿는 연주자도 있다. 올드악기와 새악기 중 어느 게 더 좋은 소리를 낼지 살펴보도록 하자.
지난 2012년 프랑스 소르본 대학의 클라우디아 프리츠(Claudia Fritz)는 스트라디바리우스 3대, 유명 제작자가 만든 새악기 3개를 두고 세계적인 바이올린 솔리스트 7명에게 연주를 부탁했다. 하지만 그들은 연주하는 악기를 미리 듣지 않으면 스트라디와 새악기의 차이점을 잘 느끼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어떤 연주자는 새악기가 더 잘 뻗어나간다고 느끼기도 했다. 심지어 어떤 악기를 가지고 싶냐는 질문에 테스트에 참여한 연주자들의 62%는 새악기를 선택하기도 했다.
바이올리니스트 John Soloninka는 당시 “나는 스트라디와 새악기의 차이를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불가능 했다”고 말했다.
일반 청취자의 입장에서 테스트가 이뤄지기도 했다. 바이올린 연주자 7명이 스트라디바리우스와 새악기를 선택해 차이코프스키, 브람스,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 일부를 연주했다.
테스트에 참여했던 Frank Almond는 “오래된 이태리 악기의 독특하고 숭고한 소리가 콘서트 홀에서 더 다양하고 더 크게 울려 퍼질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관객들은 그저 무작위적인 결과로 선호하는 소리를 선택했다.
결국 프리츠는 논문을 통해 연주자와 청취자는 스트라디바리우스 같은 신화적인 악기와 현대 악기 소리를 구별할 수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프리츠는 “블라인드 테스트에서 값 비싼 와인이 값 싼 와인보다 항상 더 낫다고 볼수 없는 것 처럼 올드악기 역시 현대 악기보다 항상 더 좋은 소리를 내지 않는다”며 “사람들이 스트라디가 더 나은 소리를 냈다고 말했다면 그들은 소리를 들은 게 아니라 그 악기가 스트라디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물론 여기까지 읽고 올드악기는 부질없고 컨템포러리 악기가 더 낫다는 것이 아니다. 위 테스트는 과거와 오늘날의 명장이 만든 최고 수준의 악기끼리 비교한 것이다. 올드가 더 낫다고 할 수도 없고, 현대악기가 더 좋은 소리를 낸다고 볼 수 없다. 그저 좋은 소리를 내는 잘 만든 악기, 소리가 좋지 않은 못 만든 악기가 있을 뿐이다.
그리고 명장의 악기가 아닌 그저 그런 악기라면 위에 언급했듯 악기에 쓰인 나무가 시간이 지나 조직 공동(空洞) 현상으로 올드 특유의 음색이 나기 때문에 더 좋은 평을 받는 경우가 많다. 섣불리 결론을 내리기 어렵지만 개인적으론 현대 악기가 스트라디바리우스, 과르네리 등 유명 올드 악기에 못지않다고 말하려면 적어도 비교 대상이 오늘날 최고로 꼽히는 제작자들의 악기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구매할 악기의 예산범위와 타입을 모두 정했고, 고른 악기의 소리가 마음에 들었다면 마지막으로 고려해야할 것이 악기 리스크다. 악기 리스크는 앞서 말한대로 관리비용과 리셀 시 잠재가치다.
첨언하자면 재테크 관점과 리셀 측면에서 비중을 둔다면 올드나 모던악기는 감정서가 있는 이탈리아 제품이 비교적 안전하다. 아직까지도 이탈리아 악기 선호현상은 이어지고 있다. 확실한 보증서가 있는 이탈리아 올드 또는 모던악기를 고른다면 적어도 사기를 당할 가능성은 적어진다.
보증서(Certificate)나 감정서(Appraisal) 중에서 신뢰할 만한 것을 꼽아보자. 우선 악기 도감에 실려있는 악기는 최고 수준이다. 따로 보증서가 없어도 ‘어떤 도감, 몇 페이지만 기재돼도 신뢰성 갖춘다. 물론 이런 악기들은 너무나 유명해서 5000만원 이하의 악기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평이다.
이밖에 공신력 있는 감정사나 공방에서 발행한 감정서와 보증서는 꽤나 신뢰할만 하지만, 이들도 가끔 서류를 관대하게 쓰는 경우가 있어 100% 신뢰로 보긴 어렵다. 지난 2019년 10월 해외 경매에서도 공신력 있는 Etienne Vatelot의 감정서가 첨부된 J,B,Vuillaume의 악기가 출품됐는데, 경매 도중 진품이 아닌 것으로 판명나 감정서가 철회(Certificate withdrawn)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물론 유명 감정사까지 감쪽같이 속일 정도면 가품이더라도 잘 만들어진 악기인 셈이라 가품치곤 매우 높은 가격(약 5000만원)에 낙찰되긴 했다. 하지만 진품에 비해서는 턱없이 낮은 가격이었다.
프렌치(프랑스) 올드나 모던악기는 예산이 부족할 경우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프렌치 악기 역시 감정사 Rampal을 필두로 많은 감정서가 발행됐다. 프렌치 악기의 경우 올드나 모던악기 모두 예산을 넓게 잡아도 4000만원 이하에서 구할 수 있을 만큼 가격 측면에서 탁월하다. 운이 좋다면 1000만원 이하에서도 괜찮은 물건을 구할 수도 있다. 프렌치 악기는 이탈리아 악기보다 크기가 조금 더 크다는 점을 알아두면 좋다. 악기길이가 크게는 10~15mm 큰 경우도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