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린 이야기 #8
모던악기는 주로 제작된 지 100년이 지나지 않은 바이올린을 말한다. 이 시기 악기는 어떻게 보면 가장 합리적인 소비가 될 수 있다. 제작된지 어느정도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올드와 비슷한 음색을 띄면서도 올드보다 상대적으로 알려지고 튼튼한 악기를 구할 수 있는 구간이다.
20세기에 들어오면서 악기 제작자들의 필모그래피가 그대로 남아있고, 제작자의 명성이나 평가가 오늘날 이어지는 경우가 많아 올드악기보다 상대적으로 더 많은 기록이 남아있다. 감정사가 발행하는 감정서 이외에도 제작자가 써준 보증서도 남아있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사기를 당하는 경우도 적다.
그렇다면 모던 악기가 최선일까? 단정하기 쉽지 않다. 왜냐하면 20세기에서 명장으로 인정받는 제작자가 과연 누구인지 의문이 크기 때문이다. 올드악기는 유명한 제작자 족보가 확실하다고 판명될 경우 비싸긴 하지만 좋은 소리를 내는게 보장되는 편이다. 하지만 모던악기는 제작자 족보가 확실하다고 해서 명성만큼 좋은 소리를 내는지는 잘 보장되지 않는다. 즉, 유명 제작자가 만든 올드악기는 수백년의 세월을 거쳐 ‘인정’을 받은 악기인 것이고, 모던악기는 아직 ‘검증중’인 악기다.
명장의 반열로 인정받은 모던악기는 파뇰라(Fagnola), 스가라보또(Sgarabotto), 비쟉(Bisiach), 포찌(Poggi) 등이 있는데 이미 이 악기들은 족보있는 올드악기 대접을 받는다. 가격 또한 수천만원에서 1억원 이상을 호가한다.
반면에 이탈리아 크레모나의 3대 모던 제작자 중 두 명인 비솔로띠(Bissolotti), 지오바타 모라씨(GB. Morassi)도 5000만~8000만원하는 가격대비 좋은 소리를 내는지 바이올리니스트 사이에서 여전히 논란이다.
개인적으로는 모던악기를 크레모나 바이올린으로 선택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본다. 상당히 많은 바이올린 연주자들이 크레모나 악기를 '넘버원'으로 생각하지만 의외로 그렇지 않다. 스트라디바리우스, 과르네리 이후 크레모나는 백년이 넘도록 바이올린 제작에서 멀어졌고, 100년전만 해도 사실상 명맥이 끊어지다시피 했다.
그러다가 약 20세기 중반에 외국 출신 제작자(순혈주의를 중요하게 여기는 이탈리아에서 외국인 제작자가 한 지역의 대표인 것은 놀라우면서도 크레모나가 그만큼 퇴락했다는 의미)인 사코니가 크레모나에 학교를 다시 열고 위에 언급한 비솔로띠와 모라씨가 스쿨에서 제작을 가르치면서 크레모나가 다시 유명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즉, 적어도 모던악기 까지 크레모나 바이올린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 크레모나 악기랑은 거리가 멀다. 현대에 들어서 수 많은 제작자들이 크레모나에서 제작교육을 받으면서 다시 부흥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그 덕을 보려면 현대에 제작된 악기를 사야하는 것이다. 모던악기까지 바이올린의 주류(스트라디 시절의 크레모나를 계승한)는 밀라노나 볼로냐, 토리노 등 이탈리아 북부 롬바르디아 대도시 학파다.
그래도 모던 크레모나를 고집한다면 비솔로띠 아니면 모라씨겠다. 하지만 두 제작자는 현대 제작자들 사이에서 평이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다. 비솔로띠의 경우 음악을 모르는 나뭇꾼이 악기는 예쁘게 만들었으나, 소리는 가격대비 못 만든 악기라고 한다. 모라시는 예쁘게 만든 악기에 단기적인 좋은 소리를 억지로 넣으려고 악기 판 두께를 조정하는 등 논란이 있다고 전해진다. 물론 비솔로띠와 모라시는 재테크 관점에서 나쁘지 않고 리셀도 상대적으로 쉬운 장점이 있다.
밀라노, 볼로냐 악기를 사긴 어렵고, 크레모나를 피하고자하는 연주자들이 궁여지책으로 이탈리아 만토바의 Gadda Family 악기를 쓰는 경우도 종종 봤다. 주로 금전적으로 여유가 되지 않는 전공생들이 마지막으로 찾는 악기이기도 하다. 아버지인 Gaetano Gadda가 좀 더 좋은 소리를 내는 것으로 알려졌고, 아들 Mario Gadda도 그럭저럭 전공생용으로도 쓸만하다는 평이다. 가격은 마리오가 2000만~5000만원, 가에타노가 6000만~8000만원 선이다.
가에타노의 경우 괜찮은 악기라는 평에 이견이 없지만, 마리오에 대해서는 좀 더 언급해보자. Mario Gadda의 악기 가격은 일찍 제작된 것일수록 가격이 뛴다. 물론 시간이 지날수록 농익은 소리를 내는 현악기 특성일 수도 있으나, 가격차이가 심하게는 두 배 이상 차이가 난다.
이유는 마리오 제작자 개인의 문제다. 마리오가 1980년대 이후 대대적으로 상업적으로 나서면서 자신이 직접 제작하지 않고 대부분의 공정을 워크샵(공방)의 제자들에게 시켜 제작한 악기에 자기 이름을 붙여 파는 경우가 잦았고, 이는 악기 품질 하락으로 이어졌다.
특히 1990년대 이후에는 마리오가 병상에 있으면서 그의 제자가 자신이 모두 제작하고 마리오 이름을 붙여 팔기도 하면서 1990년대에 제작한 마리오의 악기는 사실상 가품 내지는 마리오 제자가 제작한 악기로 본다. 행여 모던 악기를 선택하면서 마리오 가다를 구매한다면 이 점을 유념하도록 하자.
덤으로 마리오 가다의 진품과 가품(제자악기)의 차이를 살펴보도록 하자. 아래의 그림을 먼저 보자.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마리오 가다 본인이 제작한 악기는 전반적으로 ‘절제미’가 있으나, 제자 또는 가품으로 추정되는 악기는 ‘화려함’이 강조된다. 세부적으로 살펴보자.
스크롤은 제작자의 심볼이자 시그니처라고 봐도 무방하다. 제작자의 스타일이 응축된 부분이 스크롤이 가장 많다고 본다. 왼쪽 마리오 가다의 스크롤을 보면 특유의 절제됨이 있다. 넥 부분도 실제로 측정하면 넥의 넓이와 두께가 일정한 편이다. 반면에 오른쪽 악기는 스크롤은 왼쪽 마리오의 진품 스크롤보다 화려하게 디자인 된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다. 넥 부분에서도 균일성 측면에서 일정하지 않은 편이다.
뒷판을 봐도 같은 라벨의 두 악기의 차이점을 알 수 있다. 진품인 왼쪽 악기는 악기 엉덩이 부분을 보면 매끄럽게 빠져 내려오는 모양새다. 하지만 오른쪽은 굴곡이 더 들어가 살짝 비대해 보인다.
앞판 에프홀에서도 차이가 드러난다. 왼쪽 마리오 가다의 에프홀은 구멍의 크기가 좁다. 어찌보면 답답할 정도로 응축돼있는 형태다. 반면 오른쪽 악기는 구멍의 크기가 넓다. 한 눈에 알 수 있는 차이이기도 하다.
의외로 두 악기는 비슷한 가격에 팔려나간다. 왼쪽을 구입한 사람은 제작자의 손길이 100% 들어간 악기를 건진 것이고, 오른쪽을 사게 된 연주자는 제작자의 손길이 덜 닿거나 제작자의 제자가 만든 악기, 정말 운이 나쁘다면 제작자와 전혀 상관없는 악기를 사용하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