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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야 Oct 04. 2020

올드 바이올린

바이올린 이야기 #7


    ■올드악기


Francesco Goffriller, Venice circa 1730


    악기 타입에 대해 언급하면, 오늘날 국내 악기 시장에서 선호되는 것은 올드악기다. 올드라고 부르는 기준은 따로 없으나 세법상 골동품으로 분류되는 제작된 지 100년 이상 된 악기를 뜻한다.


    올드악기의 장점은 특유의 음색에 있다. 현악기는 앞판은 스프러스(가문비 나무), 옆판과 뒷판은 메이플(단풍나무)로 제작된다. 스프러스의 경우 연목재이기 때문에 소리가 틔이는데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정확한 기준은 없으나 10년 정도면 트인다는 평가다.


    문제는 메이플이다. 메이플은 경목재로 앞판보다 훨씬 단단한 만큼 틔이는데 시간이 너무나 걸린다. 역시 정확한 기준은 없으면 30~50년이 걸린다는 평이 많다. 즉 최근에 제작한 악기를 평생 써도 메이플 트이는 걸 못 본다는 셈이다. 나무 특성상 시간이 지날수록 내부 조직에서 진액(수지)이 빠져 미세한 부분에 공동(空洞) 현상이 발생하면서 울림이 강해진다.


    이처럼 올드악기의 특유의 장점 때문에 많이 선호되지만 그만큼 위험은 큰 타입이다. 가장 큰 문제는 적정한 가격 기준이 없다는 것. 제작자가 불확실한 악기의 경우 악기 가격이 작전이 들어간 주식 마냥 출렁인다. 경매에서 400달러(세금까지 포함하면 대략 100만원)에 낙찰된 악기가 국내에 들여와 1000만원에 팔리는 것도 직접 보기도 했다.


    그렇다고 Eric Blot이나 Rampal 같은 감정사가 발행한 감정서 딸린 악기를 사자니 가격이 지나치게 뛰는게 국내 올드악기 시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드악기를 선택한다면 취미생은 절대로 예산안을 벗어나지 않을 것을 추천한다. 자신이 정한 범위에서 악기상을 돌아다니며 최대한 소리가 괜찮은 악기를 선택해 대여해오자. 대여한 악기를 주변 전공자나 레슨 선생에게 들려준 다음 솔직한 평을 받자. 발품을 많이 팔수록 합리적인 소비를 할 가능성이 높다.


    내가 마음에 들고 주변 전공자도 괜찮다고 평가를 했다면, 다음으로 볼 것은 악기의 상태다. 올드악기인 만큼 악기에 크랙(갈짐)이 있을 수 있다. 잘 수리됐다면 크게 신경쓰지 않아도 되지만, 제대로 수리되지 않아 선명한 자국이 있을 땐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게 좋다. 게다가 에프홀 근처의 크랙같은 건 소리에 끼치는 영향이 미미하지만 사운드포스트나 베이스바 근처, 뒷판이나 옆판에 제대로 처리되지 않은 크랙은 소리에도 좋은 영향을 주지 못하고, 악기 가치를 크게 하락시킨다.


    감정서가 있으면 항상 좋다. 프랑스 올드의 경우 Rampal, 이탈리아 올드는 Eric Blot 감정이 상대적으로 더 인정 받는다. 감정서가 있으면 어느정도 악기의 ‘진품’ 여부에 대해서는 안전할 수 있다. 단 내용을 반드시 해석할 것. 의외로 감정서 상 “이 악기는 19세기 프랑스에서 만든걸로 추정됨~”이라고 적혀있 는 등진품 여부를 가려주지 않기도 한다.     


    전공을 준비하는 학생의 학부모의 경우 진품과 가품 여부 리스크가 더 크다. 전공생이 쓰는 올드악기는 수천만원 이상 하는 등 매우 비싸다. 전공생도 예산만 다를 뿐 취미생이 구하는 과정과 크게 다를 것은 없지만, 꼭 감정서를 요구해야하는 게 차이점이다. 과거에는 감정서가 없는 경우가 비일비재 했지만, 요즘은 웬만한 족보있는 고가 악기는 감정서가 있다. 그래도 감정서가 없으면 과감하게 포기하고 다른 악기를 찾는 게 낫다.


    전공생이 사용하는 올드악기 유통경로는 너무나 비밀스러운 편이다. 서초동의 악기상에서도 VIP 고객에만 괜찮은 올드악기를 보여주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또한 국내 경매(케이옥션)를 통하거나 직접 해외를 방문해 구입해 오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전공생이 비싸고 리스크 큰 올드악기를 무리하기 구입하는 것은 비합리적인 소리라고 본다. 차라리 평소에 괜찮은 모던~현대악기를 쓰고, 입시나 공연 때 최소 Scarampella 이상이 되는 악기를 대여해서 사용하는 게 더 합리적이지 않을까 한다.


    명장으로 인정받은 몇몇 제작자가 만든 확실한 올드악기를 제외한 나머지 올드악기는 다시 되팔 때 시간이 예상외로 오래 걸리거나 제값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흔하다. 비유하자면 위치 좋지 않은 빌라라고 보면 된다. 당장 빌라에 거주할 수는 있으나, 팔려고 내놓으면 하세월인 악성 부동산이다.


    게다가 올드악기는 관리비용이 상대적으로 더 많이 발생한다. 잘 관리가 돼 있거나 평소에 좋은 습관을 가졌다면 관리비용은 적어지겠으나, 아무래도 모던이나 컨템포러리 악기보다 많은 비용을 유발한다.


    올드악기일수록 크랙에 취약할뿐더러 넥이 틀어지거나, 옆판이 뒤틀리는 경우도 있다. 충격에도 더 약하다. 아울러 올드악기를 구매했는데 펙을 넣는 구멍이 지나치게 넓어졌거나, 지판이 울퉁불퉁하거나, 베이스바가 불안정하는 등 각가지 이상이 있다면 수리비용은 많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


    비용은 적게는 수십만원, 많게는 수백만원도 든다. 글을 쓰는 나도 가지고 있는 올드악기 펙 넣는 구멍 4개를 좁히고(부싱 작업), 브릿지 다시 깎고, 울퉁불퉁한 지판을 평평하게 하는 드레싱작업, 악기에 광택을 더하는 폴리싱 작업 등을 했는데 140만원 상당의 비용이 발생했다. 앞판을 열어야 하는 수리면 비용은 더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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