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서는 첫날

by 그냥사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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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드님~ 일어나세요, 등교해야지요”


평소 같으면 백 번은 불러 깨워야 눈이 떠질까 말까 한데 오늘은 ‘등교’라는 단어 한 마디에 눈이 번쩍 떠진다. 전날 교장선생님의 말씀 때문이었을까. 학교에 수업 들으러 간다는 사실이 나 못지않게 아이에게도 설레었던 것일 수도 있겠다.


엄마로서는 학교에서 무얼 배우고 느낄지 알지 못하는 마음이 설렘으로 다가왔다는 게 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여전히 불안하다. 게다가 오늘부터는 오로지 홀로 하루를 채워나가야 하는 아이 걱정에 아침을 준비하면서 최대한 기분을 맞춰주려고 노력했다.


학교에서 보내준 각종 준비물과 안내사항을 다시 한번 꼼꼼하게 살펴본다.

자신보다 여전히 커 보이는 책가방 안에 든 건 연필 네 자루와 지우개, 짧은 자가 들어있는 필통 한 자루. 한없이 가벼운 내용물이지만 엄마 눈에는 돌보다 더 무거워 보인다.


‘내 아이가 잘할 수 있을까?’


매 순간 떠오르는 걱정이 그저 흘러가는 우려 심이지만 하루종일 노심초사하는 내 모습을 어렵지 않게 그려볼 수 있었다.


“학교 수업 끝나면 바로 꼭! 돌봄 교실로 가야 해”

“돌봄 교실에 있다가 태권도 차량 오면 꼭! 관장님만 따라가야 해”

“태권도 도착하면 꼭! 엄마한테 연락해야 해”

“태권도 끝나고 집에 도착하면 꼭! 엄마한테 연락해야 해!


나는 정해진 코스를 다시 한번 알려주지만 ‘꼭!’이라는 한 글자를 강조하다 보니 자연스레 잔소리처럼 느껴진다. 마지막 집으로 온 이후에는 할머니께서 케어해 주시겠지만 그마저도 일을 하고 계시니 낮동안에는 진짜 홀로 움직여야 한다. 물론 학교 선생님과 태권도 관장님의 보호 아래에 무사히 지낼 수 있다는 생각은 있지만 내가 아니잖아.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 달려갈 수 있는 전업맘이 아닌지라 일하는 엄마는 아이와 24시간 함께 있지 못하는 애틋함이 더욱 강해진다. 내가 직장에 있는 동안 정말 잘할 수 있을까? 신발장은 제대로 찾았는지, 반은 제대로 찾아갔는지, 점심은 잘 먹었는지부터 시작하여 돌봄 교실, 태권도까지 나름 빡빡한 일정이다.

세상이 좋아져서 1학년이라는 특권으로 돌봄 교실도 무사히 등록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보호자 없이 8세 아동이 하루를 홀로 보내기란 세상이 너무 무섭다는 것이 함정이었다. 일을 그만두고 아이를 보면 된다는 주변의 속없는 조언이 원망스럽게 다가오기도 한다. 나도 그러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우리네 세상살이가 야속하기만 하다.


스스럼없이 친구들과 어울리며 바깥을 뛰놀았던 나의 어린 시절과 달리 교우관계, 정서적 안정, 교육, 생활환경 등 너무나 고려할 상황들이 많다. 하지만 모든 것을 채워주기에 부족함이 많은 부모이기에 늘 미안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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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출근 시간과 등교시간이 원활하지 못하다 보니 남편이 함께하기로 했다. 나는 못했지만 다행히 근무시간을 한 시간을 조정하여 앞으로 등교를 책임지기로 했다. 얼마나 다행인지... 물론 학교에서 아침 돌봄 교실을 운영한다고 하지만 반드시 교실에는 8시 40~50분 사이에 들어오란다. 둘째 어린이집 문을 열자마자 등원시키고 첫째 학교에 등교를 시키면 나름 이 시간도 빡빡한 일정이다.


부모의 출퇴근 시간에 맞춰 더 일찍 하루를 시작하고, 집에는 더 늦게 들어와야 하는 작은 꼬맹이에게 사회는 참 많은 것을 하라고 시킨다. 여러 가지 제도를 마련하여 돌보아 주겠다고는 하지만 많이 뛰놀고 부모 품에서 사랑받아야 할 시기에 그에 맞추려면 소위 뺑뺑이를 시킬 수밖에 없다.

그동안 감사하게도 어린이집에서 보육을 도와주어 무사하게 잘 지냈지만 학교를 앞두고 생에 첫 학원을 등록하는 어미 입장에서는 씁쓸하기만 했다. 그나마 본인이 원했던 태권도였지만 다른 선택지가 없어 등 떠밀리는 기분은 어쩔 수가 없구나.




남편이 보내준 첫 등교 사진.

커다랗고 비어있는 까만색 가방을 등에 메고 교장선생님의 안내에 따라 교문 안으로 씩씩하게 들어가는 아이의 뒷모습에 내 가슴이 아려온다. 정말로 처음으로 홀로 서는 하루이다.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알 수 없어서 혹시 연락이 올까 하루종일 핸드폰 액정만 쳐다보았던 나의 하루이기도 했다.


엄마가 미안해.

함께 할 수 없어서 미안해.

주님 우리 아이를 잘 돌보아 주세요.


언제나 안쓰러울 수밖에 없고, 언제나 미안할 수밖에 없는 위치여서 속상했지만 그럼에도 언젠가는 겪어야 할 이야기이기 때문에 나는 이제 믿을 수밖에 없다. 100% 다 챙겨주고 싶은 마음이지만 그럴 수 없고 그래서는 안된다는 것을 조금씩 배워나가야 하는 것은 내 몫 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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