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이 너무나 많은 탓에 어렸을 적 학교 가라고 깨우는 엄마 목소리가 듣기 싫어서 오기로 더 뭉개던 때가 생각났다. 그래서일까? 속에서 들리는 셀프 잔소리는 오히려 계획한 일을 더욱 굼뜨게 만들고 회피하고 싶어지는 욕구를 종종 느끼게 된다.
분명할 수 있다고 야심 차게 계획하고 또 의욕 뿜뿜의 시간을 겪어내다 보면 잠깐의 숨 돌리는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앞서 해 놓았던 것이 성에 차지 않기 시작하면 여지없이 앞으로 남아있는 여정에 대해서 겁이 나기 시작한다. 그 찰나를 나의 자아는 못 참고 다그친다. 그렇게 스스로 상처 내는 말들을 거침없이 내뱉고 난 이후에는 더 나아가지 못한 채 미련스럽게 질질 끌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한다.
나아지고 싶다.
더 잘하고 싶다.
진짜 속마음은 이렇게 간절하게 외치는데 나는 왜 진실을 외면하고 깎아내리는 것일까.
태초부터 그렇게 생겨먹은 것인가 싶다가도 이 또한 스스로를 무시하는 내용이라는 결론으로 치닫는다. 말버릇이라는 것이 참으로 무섭다.
초등학교시절 장미꽃 두 송이를 두고 하나는 예쁜 언어, 다른 하나는 나쁜 말을 계속해주는 실험을 한 적이 있다. 결과는 당연하게 '사랑해~, 예쁘다~'와 같은 좋은 언어를 계속 해준 쪽이 훨씬 오랫동안 생생하게 살아있었다.
하다못해 꽃 한 송이도 그러할진대 나는 왜 자신에게 그런 몹쓸 소리만 해 왔었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나를 챙겨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이 나에게 뭐라 하지도 않는데 스스로 계속 나쁜 말만 하다 보니 셀프 자존감 바닥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듯싶었다. 낮아진 자존감은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기보다는 그저 나에게 주어진 일들을 질질 끌고만 가는 것을 느꼈다. 한 발을 더 내딛으면 또 다른 내가 한 소리 해댈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미련하게 말이다.
말 한마디 만으로도 사람을 살릴 수가 있다는데, 그것 하나 나에게 못 해줄까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때부터 또다시 나를 아프게 하려는 마음이 들 때면 의식적으로 기분 좋은 말을 시작했다. 내면의 목소리에서 '그것 봐~'라는 시동이 들리면 오히려 들으라는 듯이 입 밖으로 '괜찮아~'를 내뱉었다. 혼자서 중얼거리는 것이 다소 부끄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큰 소리가 아니더라도 입으로 긍정 언어를 내뱉으면 이내 속마음은 수그러들었다. 그동안 그 누구보다 나 자신에게 사랑을 받고 싶었나 보다.
할 수 없음을 알고 있지만 해낼 수 있는 힘을 충전할 수 있었고, 하고자 하는 일을 미련하게 질질 끄는 횟수도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다.
제일 바보 같은 게 뭔지 아냐? 기회가 왔는데 그거 못 잡는 거. 너희들 힘든 건 아는데, 너희들 인생이 언제 뒤집어질지 몰라.
근데 바보같이 준비 안 하고 있을 거야?
인생, 사람 모르는 거야. 나쁜 것도 소리 없이 오지만은, 좋은 것은 더 소리 없이 올 수 있어!
유튜브를 통해 알게 된 박막례 할머니는 소리 없이 오는 좋은 것을 향해 미리 준비를 하라고 말해 주었다. 과연 그 준비라는 것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좋은 교육을 받고 완벽한 물질적인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 또한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가장 첫 번째 준비는 바로 '내가 할 수 있는 마음'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그 마음은 나를 위한 말 한마디이다.
세상의 사랑을 아무리 많이 받는다 할지언정 스스로를 귀하게 여기고 존중해 주며 누구 보나 나 자신을 사랑해 주는 일은 아무리 많아도 부족하지 않다.
때로는 따끔하게 일침을 쏘아붙이는 한 마디 보다 '고생했어'라는 따뜻한 격려 한 마디가 내일 소리 없이 다가올 '좋은 것'을 웃으면서 반길 수 있는 준비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