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무명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냥사탕 May 19. 2023

소리 없이 오는 좋은 것을 위해


한동안 스스로 잔소리하는 시간이 많았던 적이 있었다.


"이것 다음에 저것을 해야지~"

"오늘 10개를 하기로 했는데 이렇게 굼뜨면 어떻게 하냐~"

"자기가 한 약속을 이렇게 안 지키면 누가 너랑 약속을 하겠냐!"


전부 성에 차지 않은 결과물을 바라보며 내면의 '내'가 소리치는 내용이다.


'나도 알지~ 알면서도 그러는 건 백 프로 고의성이야!'

'너의 부족함을 채울 생각을 왜 못하니?'


돌이켜보면 하나같이 나 스스로 마음을 할퀴고 있었다.

잠이 너무나 많은 탓에 어렸을 적 학교 가라고 깨우는 엄마 목소리가 듣기 싫어서 오기로 더 뭉개던 때가 생각났다. 그래서일까? 속에서 들리는 셀프 잔소리는 오히려 계획한 일을 더욱 굼뜨게 만들고 회피하고 싶어지는 욕구를 종종 느끼게 된다.


분명할 수 있다고 야심 차게 계획하고 또 의욕 뿜뿜의 시간을 겪어내다 보면 잠깐의 숨 돌리는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앞서 해 놓았던 것이 성에 차지 않기 시작하면 여지없이 앞으로 남아있는 여정에 대해서 겁이 나기 시작한다. 그 찰나를 나의 자아는 못 참고 다그친다. 그렇게 스스로 상처 내는 말들을 거침없이 내뱉고 난 이후에는 더 나아가지 못한 채 미련스럽게 질질 끌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한다.


나아지고 싶다.

더 잘하고 싶다.


진짜 속마음은 이렇게 간절하게 외치는데 나는 왜 진실을 외면하고 깎아내리는 것일까.

태초부터 그렇게 생겨먹은 것인가 싶다가도 이 또한 스스로를 무시하는 내용이라는 결론으로 치닫는다. 말버릇이라는 것이 참으로 무섭다.


초등학교시절 장미꽃 두 송이를 두고 하나는 예쁜 언어, 다른 하나는 나쁜 말을 계속해주는 실험을 한 적이 있다. 결과는 당연하게 '사랑해~, 예쁘다~'와 같은 좋은 언어를 계속 해준 쪽이 훨씬 오랫동안 생생하게 살아있었다.


하다못해 꽃 한 송이도 그러할진대 나는 왜 자신에게 그런 몹쓸 소리만 해 왔었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나를 챙겨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이 나에게 뭐라 하지도 않는데 스스로 계속 나쁜 말만 하다 보니 셀프 자존감 바닥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듯싶었다. 낮아진 자존감은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기보다는 그저 나에게 주어진 일들을 질질 끌고만 가는 것을 느꼈다. 한 발을 더 내딛으면 또 다른 내가 한 소리 해댈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미련하게 말이다.


말 한마디 만으로도 사람을 살릴 수가 있다는데, 그것 하나 나에게 못 해줄까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때부터 또다시 나를 아프게 하려는 마음이 들 때면 의식적으로 기분 좋은 말을 시작했다. 내면의 목소리에서 '그것 봐~'라는 시동이 들리면 오히려 들으라는 듯이 입 밖으로 '괜찮아~'를 내뱉었다. 혼자서 중얼거리는 것이 다소 부끄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큰 소리가 아니더라도 입으로 긍정 언어를 내뱉으면 이내 속마음은 수그러들었다. 그동안 그 누구보다 나 자신에게 사랑을 받고 싶었나 보다.


할 수 없음을 알고 있지만 해낼 수 있는 힘을 충전할 수 있었고, 하고자 하는 일을 미련하게 질질 끄는 횟수도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다.


제일 바보 같은 게 뭔지 아냐?
기회가 왔는데 그거 못 잡는 거.
너희들 힘든 건 아는데,
너희들 인생이 언제 뒤집어질지 몰라.

근데 바보같이 준비 안 하고 있을 거야?

인생, 사람 모르는 거야.
나쁜 것도 소리 없이 오지만은,
좋은 것은 더 소리 없이 올 수 있어!


유튜브를 통해 알게 된 박막례 할머니는 소리 없이 오는 좋은 것을 향해 미리 준비를 하라고 말해 주었다. 과연 그 준비라는 것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좋은 교육을 받고 완벽한 물질적인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 또한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가장 첫 번째 준비는 바로 '내가 할 수 있는 마음'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그 마음은 나를 위한 말 한마디이다.


세상의 사랑을 아무리 많이 받는다 할지언정 스스로를 귀하게 여기고 존중해 주며 누구 보나 나 자신을 사랑해 주는 일은 아무리 많아도 부족하지 않다.


때로는 따끔하게 일침을 쏘아붙이는 한 마디 보다 '고생했어'라는 따뜻한 격려 한 마디가 내일 소리 없이 다가올 '좋은 것'을 웃으면서 반길 수 있는 준비가 될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이가 성숙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