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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라 Nov 09. 2016

인간이 인간으로 살 수 없었던 곳

아우슈비츠 수용소, 오시비엥침, 폴란드

다음 여행지를 고르는 데 있어 너무나 우유부단하고 결정장애를 겪었던 내가 프라하에서 별다른 고민 없이 폴란드 제2의 도시 크라쿠프를 선택했다. 독일의 바이마르에서 본 나치 수용소의 강렬한 기억과 프라하에서 방콕 할 때 본 나치 전범 재판에 대한 영화「한나 아렌트 」 덕분에 여행 전에는 생각하지도 않았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가고 싶어 졌기 때문이다.


크라쿠프에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있는 건 아니고, 크라쿠프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오시비엥침(Oświęcim)으로 가는 버스를 타면 된다. 아우슈비츠는 오시비엥침을 독어로 읽은 말이라고 하는데, 그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오시비엥침이란 원래 지명 대신 아우슈비츠로 알고 있으니 참 아이러니하다. 워낙 유명한 곳이라 그런지 버스는 만석이다. 1시간여를 달린 버스는 아우슈비츠 수용소 앞에 도착했다.


얼마나 많은 유대인을 가둬놓았길래 수용소도 1 수용소, 2 수용소로 나뉘어 있는지...

버스에서 내리니 두 개의 수용소를 알리는 표지판이 보인다. 무슨 짓을 얼마나 크게 했길래 수용소가 두 개나 있는 걸까. 두 개의 수용소를 왕복 운행하는 셔틀버스를 타고 우선 2 수용소인 비르케나우 수용소부터 갔다. 부헨발트 수용소처럼 수용소까지 가는 길의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은 평범하고 조용한 시골이다. 차창 밖으로 철조망이 보인다. 수용소에 가까워지고 있다. 

"죽음의 기차"

기차에 올라탈 수밖에 없었던 유대인들은 그 기차의 끝이 어디인지를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기차에 내려서, 기차선로의 끝을 보았을 때 사람들의 심정은 어땠을까. 밖으로 보이는 수용소의 정문은 더없이 절망스럽고 끔찍하다. 이제는 유물이 되어버린 기차는 수용소에 정지해 있다. 더 이상 누군가를 태우지 않는다. 한국인에게는 "달리고 싶은 철마"가 있는데, 이곳에는 "달리면 안 되는 철마"가 있다.

누군가 꽂아놓은 추모의 장미. 선로의 끝에 다다르면 추모비가 놓여 있다. 전쟁에 진 독일군들이 도망치면서 불 지르고 갔던 곳, 지금은 터만 남아 있다. 

이곳에 도착한 유대인들은 즉시 남자, 여자로 나뉘고, 신체검사를 통해 죽을지 살지 결정했다고 한다. 검사관의 손가락 방향에 따라 어리고 연약한 사람들은 곧바로 가스실로, 건장한 사람들은 강제노동으로 나누어졌다. 사람의 손가락질 하나로 생명이 왔다 갔다 했다. 대부분의 벽돌 건물은 가스실이었고, 해부실이었다. 오직 남아 있는 건 사람들의 재를 뿌렸다는 이 연못. 우리가 모르는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이 연못이 알고 있을지.

기차 선로는 수용소 안에서 끝난다.
전쟁에서 진 독일군이 도망치면서 수용소를 불태워 터만 남아 있다.

수감자들이 머물렀던 공간에 들렀다. 사진 속 부헨발트 수용소 수감자들은 나무로 만든 서랍 속에 있는 듯했는데, 이곳은 돌로 만들어진 관 속에 있는 것 같다. 하루에 1,000칼로리도 못 먹으면서 12시간을 넘는 강제노역을  했던 사람들. 게다가 잠은 이런 곳에서... 독가스를 통해서도 사람들은 많이 죽었지만, 영양실조와 약해진 면역력으로 갖가지 병에 걸려 죽은 사람도 많다. 

원래 마구간이었던 곳에 유대인을 수용했다. 내가 둘러보고 있던 여성용 수용소에서 마침 지나가던 한 투어가이드의 이야기가 들린다.

 "갓난아기가 있는 여성들은 아기와 함께 이곳에 같이 수용되었어요. 강제노동을 하는 동안엔 아기와 함께 있는 건 금지되어서 아기들은 이곳에 홀로 남겨져야 했지요. 일을 마치고 해가 져 수용소로 돌아왔을 때 적지 않은 엄마들이 아이들이 죽어있는 걸 발견합니다. 안 그래도 위생상태는 엉망인데, 벌레나 쥐들이 들어와서 아기들을 공격해 병에 걸리기도 하고, 아사하거나 동사했지요. 일을 마치고 돌아와 아이가 죽어 있는 것을 발견한 엄마의 마음이 어땠을까요?"

 그 말에 어떤 사람들은 훌쩍거린다. 인간으로서 누리던 가장 기본 적인 것조차 거세당한 그곳에서 아이 때문이라도 버텼을 엄마들은 그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문득 예전에 본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가 생각난다. 현실은 영화보다 훨씬 참혹했다.


먹먹해진 마음을 안고 제1수용소인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독일의 패전 분위기가 팽배할 무렵, 그들은 더 많은 사람들을 가스실로 내몰았고, 패배가 확정됐을 땐 모든 만행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수용소를 불태웠다. 하지만 아우슈비츠의 독일군들은 소식을 늦게 접했던지 도망치는데 급급해 수용소를 불태우지 못했다. 덕분에 우리들은 그들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알게 되었지만.

너무나도 유명한 아우슈비츠 정문 문구 "노동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독가스 사이클론B -  한 통으로 유대인 2000명을 20분 안에 질식사 시켰다.

나치가 가스실을 이용한 이유는 가장 적은 비용으로 가장 많은 사람을 힘들이지 않고 죽일 수 있기 때문이었다. 모든 과정도 단계별로 나뉘어 있어 사람들은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양심의 가책을 적게 느끼거나 아예 느끼지 않았다. 모두가 이런 식이다.

 "전 스위치 밖에 안 눌렀어요."

 "전 사람들이 안에 들어가도록 감독했을 뿐이에요."

 "전 죽은 사람들을 끌어냈을 뿐이에요."

 "전 사람들 면도시킨 거밖에 없어요."

철저하게 분업화되어 다른 일은 알 필요가 없었기에 사람들은 자신의 일이 얼마나 끔찍한지 알지 못했고 그래서 죄책감도 적었다.

처음 이 전시물을 보고는 무언지 감이 안 왔다. 하지만 이것이 수감자들의 머리카락이란 것을 알고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이 머리카락으로 독일인들은 원단을 만들어 팔았다. 도망을 방지하기 위한 이유도 있지만, 아마 경제적인 이윤을 얻기 위한 게 더 컸지 싶다. 그뿐 아니라 가스중독으로 죽은 사람들의 잇속을 하나하나 확인하며 금니를 뺐다. 이쯤 되면 나치는 수감자를 인간이 아닌 죽도록 일 시키고 때가 되면 죽이는 가축이나 자원으로 봤다. 인간의 몸에서 얻을 수 있는 모든 것을 악착같이 이용한 사람들. 도착하자마자 뺏겼던 가방과 신발의 모습에 더 마음이 아프다.

강제 노역뿐 아니라, 아우슈비츠 수용소에는 수감자를 처형했던 총살의 벽이 있다. 이곳에서는 고문도 일어났다. 탈출을 시도했거나 돕거나 했던 사람들, 유대인뿐 아니라 나치에 반대하는 독일인들도 함께 이곳에서 총살되었다. 

                                 <나치를 피해 유대인들이 숨어있었던 비밀의 방. 책장 뒤, 마룻바닥 아래>

"유대인은 반드시 전멸되어야 하는 민족이다." - 한스 프랑크 (나치 폴란드 총독)
"그들은 우리와 다른 민족이다."

얼마나 무서운 구분 짓기인가. 그 말 한마디에 사람들의 생명이 왔다 갔다 하고, 누군가는 아무 이유도 없이 기계처럼 사람을 죽여나갔다. 사람은 타인과 나를 구분하면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기도 하지만, 과도한 구분 짓기는 차별을 정당화하는 도구가 된다. 노예제도와 다를 게 무엇인가. 흑인을 무시하고, 동남아 사람들을 무시하는 것도 구분 짓기이다. 비단 그것뿐일까. 같은 나라 사람이지만 사는 곳에 따라 구분을 짓기 시작하는 사람들. 나와 다른 것에 어떤 반응을 보이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지만, 구분 짓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선동을 지지하는 수단이 된다. 


부헨발트 수용소처럼 이곳도 한기가 돈다.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의 영혼이 아직도 이곳에 있는듯하다. 분명히 반갑고 아름다운 장소는 아니지만, 꼭 지키고 관리해야 할 장소. 인간이 어디까지 잔인해질 수 있는지, 인간이 같은 인간에게 무슨 짓까지 할 수 있는지 여과 없이 보여주는 곳. 인간에 대한 회의도 들지만, 부대끼며 살아갈 수밖에 없기에 항상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조심해야 한다. 언제나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일이기에. 아니 발생하고 있는 일이기에... 아주 오래전 일 같지만 이 일이 발생한 지 채 100년도 되지 않았다니, 참 섬뜩하다.



PS. 크라쿠프 시외버스 터미널(크라쿠프 중앙역 옆)에서 오시비엥침으로 가는 버스는 30분에 한 대씩 자주 있어요. 모든 수용소는 무료이고 마음대로 관람 가능하지만 1 수용소는 유료 가이드 투어도 진행됩니다. 하지만 한국어 투어는 없어요. 그리고 유료 투어 우선으로 진행되기에 무료 투어는 오후 3시부터 입장이 가능하다는... 그래서 유료 투어가 싫으시면 제2수용소 가셨다가 1 수용소 가시는 걸 추천합니다. 수용소는 검은색 무료 셔틀버스를 타고 이동 가능합니다. 가이드 투어는 싫고 수용소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으시다면 기념품숍에서 한국어 가이드북 구매를 추천합니다.(저렴했던 걸로 기억합니다.ㅎ) 가이드북도 설명 잘 되어 있어요. 각 수용소 별로 기념품숍이 있어요. 배낭 메고는 입장 불가라 가방 맡겨야 합니다.


* 아우슈비츠의 생존자 빅터 프랭클 박사가 쓴 「죽음의 수용소에서」'삶의 의미'를 찾아서

https://brunch.co.kr/@swimmingstar/151


* 독일 바이마르의 부헨발트 수용소에 들른 이야기

https://brunch.co.kr/@swimmingstar/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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