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토는 고전을 여자처럼 사랑했다. 자동보다는 수동, 수동이 불가능하다면 적어도 숙련된 지식을 요하는 것. 그리고 특히 그가 좋아하는 것은 역사가 오래되어 잊히는 중이거나, 원리를 제대로 알지 않고서는 함부로 사용할 수 없는 물건들 따위였다. 종자의 재배법도 그중 하나였다. 홈과 같은 사람이 완성품을 판매하는 장사꾼이었다면, 마토는 그 완성품의 공급처 역할을 했던 셈이다. 한참을 나아간 편의와 의식으로 만들어진 시티. 과거에는 호기심 많은 탐구가로 불릴 수도 있었겠지만, 시티에서 그를 곱게 보는 사람은 손에 꼽혔다. 모두가 그를 하나의 돌연변이 보듯 했다. 하지만 그런 그를 좋은 눈길로 보는 사람도 없지 않았다. 교육을 접하지 못하는 사람을 가엾이 여긴 마토는 자신이 엮은 책을 선물하기도 하였고, 때로는 그네들과 직접 접선하여 공구가 되어 주기도 하였다. 그 같은 시간이 끊이지 않았더라면, 마토는 아마 현재에도 시티에 머무르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애당초 시티를 떠날 마음이 없는 사람이었으니까. 생김은 결코 평이하다고 말할 수 없었다. 어느 각도로는 꽤 관리 잘한 중년의 신사 같은 얼굴이었고, 또 어느 각도로는 심성 삐뚠 사람의 표본만큼이나 이마 라인부터 턱까지의 길목이 험난하기 짝이 없는 얼굴이었다. 마토는 비교적 일찍이 마을과 어우러진 사람이긴 했지만, 창립 멤버가 아니었다. 해서, 처음 그가 배정받았던 집의 2층, 그것도 1층 주민의 양해도 구하지 않은 채 시티에서 가져온 배양토를 냅다 마당에 뿌렸을 때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그가 융통성이라곤 전혀 없고, 괴상한 악취미만 있을 인간으로 취급하며 거리를 뒀었다. 하지만 마토는 언변이 강했다. 사람을 설득하고, 편으로 끌어당길 능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당장에, 오늘 화를 내며 돌아간 사람들도 내일이면 머리를 숙이고 들어올 게 분명했다.
“그래도 오늘은 확실히 차도가 있긴 했어. 모두를 싸잡은 건 미안하게 됐지만, 머리 빈 인간들을 깨우치게 하는 데엔 패악질만 한 게 없으니까.”
퓨티와 사람들이 돌아간 뒤, 홀로 작업장에 남은 마토가 큰 발로 갈색의 흙을 짓뭉개며 말했다. 그 옆에는 작은 텃밭이 있었다.
“턱없이 부족해. 이 방법만으론 한계가 올 거야. 또 새로운 사람이 들어왔다지? 빌어먹을 민트 녀석만 좆빠지게 고생하겠군.”
마토와 민트는 서로 비슷한 이름을 가졌지만, 가족이거나 한 건 아니었다. 마토, 피크, 군, 포렌, 토슈, 디케이, 지킴이, 그리고 이제는 알게 됐을 페리까지. 그들을 제외한 일반 부류에 속한 사람들은 본인들의 일손 하에 돌아오는 곡식과 먹거리들이 마토가 그어 놓은 토지에서의 경작으로부터 나오는 줄로 알고 있다. 그들의 시야가 좁은 것이 아니었다, 마토와 주변인들이 쌓은 거짓의 울타리가 그만큼 굳건했다. 마토의 등장 이후 현 마을에 가장 변화된 점을 꼽으라면, 줄곧 모순됨을 느끼고 있던 사람들이 마을의 독립성에 믿음을 붙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시티에 손을 뻗지 않고도 살 수 있다는 자긍심 비슷한 무언가를 품게 해 주는 일이었다. 하지만 아직도, 그로부터 십수 년이 흐른 지금도, 그들은 시티의 피를 빠는 모기일 뿐, 변한 게 없다는 것이 진실이었다. 그것이 현실이었다.
“조각은 다음으로 미뤄야겠어. 오늘은 전혀 할 기분이 아니야.”
마토는 몸을 돌려 계단 위, 손잡이가 드러나 있는 흰색의 자루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리고 이어 마토는 입구가 풀려 있는 자루를 보기 싫다는 듯 완전히 죄인 채, 끈을 손에 걸고서 2층으로 걸음을 옮겼다. 마토는 그대로 손을 뻗어 문을 밀었다. 그는 잘 때를 제외하고는 항상 문을 열어 놓았다. 피크 아들의 죽음 이후, 작게는 방울에서 크게는 빗장까지 걸어 놓는 집도 생겨났지만, 마토는 반대였다. 그는 그 시기에 오히려 더욱 아무것도 하려 들지 않았다.
‘툭툭.’
마토는 집에 들어서기 전, 신을 세워 바닥에 부딪혔다. 긁힘으로 인해 뜬 곳을 제외하면 상태가 좋은 가죽신이었다. 마토는 벗은 신 옆에 자루를 내려놓았다. 마토의 집은 단칸의 공간을 잘게 잘라 놓은 것 같았다. 벽에서 벽으로의 일주가 가능할 정도였다. 마토는 익숙하게 움직였다. 어디에선 무엇을 챙기고, 어디에선 무엇을 놓아야 하는지 따위는 그의 머릿속에 선명했다. 길을 가로막는 건 비단 책으로 형성된 벽뿐이 아니었다. 바닥 역시 마찬가지였다. 열렬한 탐독의 흔적이 묻어 있는 필사의 종이들이 서류철 속에서 허리를 구기고 있었다. 서넛 번쯤 길을 꺾자, 밝은 장소가 나타났다. 그의 집에서 유일하게 생기의 냄새를 풍기는 공간이었다. 마토는 햇살이 깊숙이 떨어지는 길을 따라 자연스레 걸음을 내려놓았다. 창가 길게 양팔에 쏙 담길 정도의 화분들이 일렬로 늘어져 있었다. 화분 앞면에는 각각 네모반듯하게 오린 종이가 가지런히 붙어 있었는데, 개중에는 동일한 이름이 적힌 화분 여럿이 연이어 서 있는 것도 있었다. 싹이 난 화분은 몇 있지 않았다. 대부분 쌓인 흙이 보이는 것이 전부이거나, 벌레들이 뚫어 놓은 구멍 보이는 것이 고작이었다.
“흙이 별로인 거야. 그거 말곤 이유가 없어.”
마토는 휑한 표면을 머릿결 다듬듯 쓸어내리며 말했다. 양 끝에는 널따란 물웅덩이가 놓여 있었다. 미지근함과 차가움 사이로 적당히 데워진 물에는 작은 기포 하나 떠 있지 않았다. 마토는 피아노를 연주하듯 팔을 벌려 가며 화분들에 손가락을 내렸다.
“그래, 네놈은 조금 말랐군.”
왼쪽 새끼로 한 번, 그리고 왼 손가락 전부로 한 번, 정확히 두 번. 마토는 그 이상 흙을 건드리지 않았다. 그리고 마토는 물웅덩이에서 손바닥만큼의 물을 떠, 흙의 중앙으로 천천히 떨어뜨렸다. 흙은 기다렸다는 듯이 물줄기를 쭉 빨아들였다. 흙 위의 물을 가만히 지켜보던 마토는 구멍이 완전히 가라앉자, 손에 남은 물기를 바지에 닦아 냈다. 그리고 그때, 화분 전체를 감쌌던 해가 반대로 조금 넘어갔다. 마토는 허기가 느껴졌지만, 음식을 씹고 싶진 않았다. 이제 금방 바지에 물기 닦은 것을 잊은 듯이 마토는 멍한 얼굴로 화분 옆에 남은 물웅덩이를 들어 올렸다. 눈에 보일 정도의 물방울들이 그의 손 옆을 치고 아래로 떨어졌다. 1층으로 내려간 마토는 초록의 이파리들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진 곳으로 물을 흘려보냈다. 한없이 맑고 깨끗한 물에, 바닥에 얼룩진 주름이 보였다 말았다 하였다.
“주변 사람에게서 받을 물이 있던가. …아니, 아니야.”
마토는 빈 용기의 뒷면을 손으로 탁탁 두드리며 중얼거렸다. 그러고는 한숨을 푹 내쉬며 말을 이었다.
“너무도 같잖아. 말이 좋아 교환이지, 시티의 착취와 다를 게 없어. 그중에서도 제일 같잖은 건 누구도 그를 걸고넘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겠지만.”
그리고 마토는 연이어 입을 대차게 움직였다.
“전반적으로 다들 바라는 것들이 너무 많아. 아는 것도 없고, 입만 나불거릴 줄 아는 인간들뿐. 애초에 도망자들이 이렇게 안락한 곳에 지낸다는 것 자체가 역설일 테지. 원래라면 이곳 사람들이 하루의 최고의 행복감을 느끼는 때가 잠자리를 맞이하는 순간이어야 할 거야. 바닷물 한가운데에서 허우적대는 꿈을 꾸며 현실의 바짝 마른 입술을 적시고, 시티 한복판의 광장을 종횡하듯 다니며 다시는 누리지 못할 문명을 만끽하고. …그래, 그렇게 말이지.”
말을 마친 마토는 빈 용기에 맺힌 물방울들을 내려다보며 마지막 문장을 한 번 더 되풀이했다. 그리고 잎을 관찰할 때보다 조금 더 풀린 눈으로써 물이 흥건한 바닥을 가만히 응시했다. 누군가가 그때 그렇게 주저앉아 있는 마토를 발견하고서 버려진 물이 아깝다는 말을 뱉었더라면 그는 이렇게 답했을 것이다.
제발, 제발, 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