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사람들은 자신의 집을 태양보다는 폭포를 기준으로 기억, 인지하고 있었다. 예를 들면, 사형대가 위치한 곳은 9시 방향, 마을의 출입구가 위치한 곳은 3시 방향, 과 같은 방식이었다. 폭포의 물이 떨어지는 곳과 마주한 집, 그 집이 6시였다. 그런 식으로 볼 때, 홈의 집은 7시, 퓨티의 집은 그보다 조금 더 떨어진 5시 30분 정도였다. 각 집은 생김이 똑같다시피 했고, 위치로 인한 장단 역시 크게 차이 나지 않았지만, 추녀 자매가 머무는 12시 방향 인근의 집들처럼 물안개가 끼지 않는다는 명확한 장점이 존재하는 곳도 존재했다. 그리고 공통적으로, 마을 사람들은 사형대에서 멀리 떨어진 집에 살기를 선호했다. 지어진 집들은 한정돼 있었고, 창립의 몇몇 멤버들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선택지가 없었다. 무조건 출입구부터 시작되어 안쪽으로 채워졌다.
이제, 비어 있는 집이 몇 남지 않았다.
홈은 예상치 못한 질문에 어떻게 할지 고민하다 결국은 자신의 방정맞은 입을 책망하며 책의 결말에 대해 퓨티에게 설명해 줬다. 말을 들은 퓨티는 크게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이내 눈꺼풀로 반쯤 눈동자를 덮어 버렸다. 그리고 떨어지겠다 마음먹은 사람처럼 아래를 응시했고, 사형대의 땅끝까지 발걸음을 옮겼다. 홈은 바라보기만 할 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만약 한 걸음만 더 내디딜 결심을 했더라면 퓨티는 떨어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퓨티는 거기서 멈췄고, 다시 원래와 같은 표정으로 돌아와 그곳에서 몸을 돌렸다. 다른 말은 없었다. 홈의 옆을 지나친 퓨티는 사다리의 봉을 붙잡았다. 그때야 홈은 몸을 납작 엎드려, 퓨티의 손 너머 팔목을 움켜잡았다. 그리고 홈은 퓨티가 무사히 땅에 발을 내린 것을 확인한 뒤, 사다리 위로 자신의 발을 올렸다.
“…”
홈이 땅까지 네 줄 정도를 남기고 있을 때 퓨티가 입을 열었다. 얇아진 빗방울보다 작은 소리였지만, 홈은 그 소리가 들렸다. 홈은 두 번째 줄에 양발을 놓았다가 단숨에 땅 위로 뛰어내리며 말했다.
“네? 뭐라고요? 못 들었어요.”
“……”
공기밖에 없는 말소리였다. 풀린 얼굴에 달라진 점은 없었다.
“미안해요. 또 듣지 못했어요. 다시 말해 줘요.”
홈은 재촉과 사과를 동시에 건넸다. 자책감은 홈이 가장 두려워하는 감정이었다. 자신이 어떻게 되는지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 홈이 그를 깊게 여기는 이유는 본인으로 인해 타인의 불행이 발현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에 대한 불안. 그것 때문이었다.
“어서 말해요. 무슨 말을 하든 괜찮아요.”
홈은 말하고 나서야 느꼈다. 자신이 지나치게 조급함이 묻어나는 말을 퓨티를 향해 내뱉었다는 것을. 퓨티가 또다시 웅얼거릴 것처럼 입술을 움직이더니, 이번엔 들리는 크기로 말했다.
“…그냥 잠시 생각했어요. 그 책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돼 보는 것은 어떨까, 하고요.”
퓨티의 말에 홈은 망자를 취급해 놓은 언덕과 처음 마주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주변이 덜컥 주저앉는 것 같은 감각이 들었다. 그래서 억누르지 못했다. 원래는 속으로 삼켰어야 했을 말들이 입 밖으로 쏟아져 나와 버렸다.
“그건 단지 소설이에요! 실제로 벌어진 일을 써놓은 게 아니라! 주인공처럼 죽음을 택하려 했어요? 고작 제 말 한마디 때문에?”
“아뇨. 말했듯이 소설 속 소년의 마음을 상상해 봤을 뿐이에요. 죽긴 왜 죽어요. 그 정도 분별력은 있는 사람이에요, 저.”
별일 아니라는 듯이 말하는 퓨티의 태도에 홈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리고 다소 거친 언행을 쏘아 내려던 차에, 퓨티가 말했다.
“그래서 안 잡은 거 아니었어요?”
퓨티는 십 년 전, 단상에 올라 말했던 소녀와 똑같은 눈을 하고 있었다. 얕은 해변의 물처럼 청록의 찰랑임을 머금음과 동시에 먼 쪽의 깊은 곳을 보여 주며 감히 얕보지 못하게 하는 눈. 퓨티의 눈을 본 홈은 목이 졸린 사람처럼 얼굴이 시뻘게졌다. 홈은 농락당한 기분이 들었다. 죄를 지은 기분이 들었다. 더 이상 시간을 끌었다간 무안과 부끄러움과는 비교도 안 되는 더한 감정에 몸이 휩쓸려 바닥이 보이지 않는 곳으로 떠내려가 버릴 것만 같았다.
“그랬으면 좋겠어요.”
홈이 말했다.
“그랬으면 좋겠다고요?”
그에 퓨티가 못 들을 말을 들었다는 듯이 되물었다.
“네.”
“무서운 사람이었네요, 홈 씨.”
“그게 다예요? 더 묻지 않아요?”
“뭘 더 물어야 하죠?”
퓨티가 사다리에서 내려온 후, 처음으로 표정을 바꾸며 말했다.
“왜 소망하는 투로 말을 하였는지, 그럼, 본래의 진심은 무엇이었는지, 지금 홀로 성을 내는 이유가 무엇인지, 물을 게 너무도 많은걸요.”
문장이 바뀔 때마다 홈은 목소리를 키웠다. 특히 마지막 문장을 내뱉을 땐 성대를 깨물고 말을 하는 것 같은 노쇠한 쇳소리가 튀어나왔다.
“굳이 그럴 필요 있나요. 지금 말을 하는 나 자신도 현재의 내가 떠올린 생각을 말하는 중이 아닌데.”
말을 마친 퓨티는 잊고 있던 추위가 생각났다는 듯 살짝궁 양어깨를 떨어 보였다. 그리고 퓨티는 빗물을 빨아들인 머리와 윗도리를 한 갈래로 모았다. 퓨티가 힘을 주자, 널따란 물줄기가 세차게 떨어져 내렸다. 퓨티가 물을 짜며 생긴 시간 동안 홈은 퓨티의 방금 말에 대한 대답을 떠올리는 한편, 후에 꺼내 볼 만한 말이라는 생각에 문장 전체를 머릿속에 각인시켰다.
“사실 그때의 나는 별 감정이 없었는지도 몰라요. 그래서 소망하듯 말해야 했던 겁니다. 어디로든 부디 좋은 쪽으로의 진심이었기를, 라고요. 그리고 짜증은 전적으로 퓨티 씨가 드러낸 행동에서 비롯됐습니다. 퓨티 씨의 말에는 묘한 차가움이 담겨 있어요. 항상 냉정을 유지하기 위해 끈을 놓지 않는 사람처럼요.”
“계속 그렇게 재미없게 굴 거예요?”
퓨티가 보란 듯이 기지개를 켜며 대꾸했다.
“진지한 말은 항상 재미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쓰레기 취급을 당해 버리죠.”
“쓸데없는 곳에서 진지하니까 그러죠. 혼자 계산하지 마요. 지금 같은 말은 저기서 뛰어내린 내가 한 달 후에나 눈을 떴을 때 하면 되는 거라고요.”
퓨티는 몸을 돌려 세 걸음을 내밟았다. 사형대에서 돌아오는 길은 비가 내리지 않았다. 회색의 구름도 개어 하늘색 구멍들이 송송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런 하늘과는 반대로 두 사람의 분위기는 퓨티가 사형대의 끝으로 다다를 때까지 걸린 5초, 그 5초의 연속이었다. 홈은 퓨티의 뒤에 붙어 그녀를 뒤따랐다. 퓨티는 갈 때와 마찬가지로 곁은 신경 쓰지 않은 채 조용히 걸음을 옮겨 나갔다. 전날 밤, 제법 말이 잘 통한다고 생각했던 퓨티가 예상외의 극명한 모습을 보인 것에 홈은 실망감이 들었다. 느닷없이 꺼내든 운치 얘기에도 거부감을 표하지 않았던 그녀였기에 그런 감은 더욱 깊었다. 그래서 홈은 다른 쪽으로 생각이 흘러갔다. 혹시 다른 무언가가 그녀를 억누르고 있게 하는 것이 아닐까, 라고. 물론 홈은 앞서 나가는 퓨티에게 그를 물어보지 않았다. 적어도 오늘이 끝날 때까지는 홈은 그녀에게 말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사람이 혼자 만드는 생각이 늘 그렇듯 홈은 언젠가 타당성을 놓쳐 버리고서 자신의 고집을 이어 나갈지도 모른다.
“고마웠어요.”
첫 집의 지붕이 나오자, 홈은 앞서 있는 퓨티를 향해 말했다.
“한 것도 없는걸요, 뭘.”
그에 퓨티는 아쉽지 않다는 듯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대신에 고마움은 언젠가 갚아요. 시티 사정은 모르겠지만, 이곳 마을에선 어느 것 하나 공짜란 없으니까.”
홈은 방긋 웃으며 말했다.
“명심할게요.”
두 사람은 거기에서 헤어졌다. 둥글게 조성된 길에 헤어진다는 말이 안 어울리긴 하지만, 둘은 작별 인사를 했고, 금방 닿지 않을 거리에서 각자의 발걸음을 내렸다. 집 앞에 도착한 홈은 문을 열기 전, 마지막으로 퓨티의 뒷모습을 눈으로 좇았다. 그리고, 집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