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현영강 Aug 15. 2024

지킴이 대회의 책임자

힘을 간판으로 마련된 지킴이 자리는 몇 해 전, 매드라는 이름을 가진 사내가 마을로 들어오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쉽사리 정착되질 못했다. 기본적으로 결핍이 깔린 마을에서 힘을 두고 자웅을 겨룬다는 자체가 모순이었기에. 시티의 사람들이 골리앗이라면, 마을의 사람들은 다윗이었다. 다시 말해, 힘 지킴이를 선발하는 대회는 시티에서 갓 들어온 건장한 체격을 가진 자들의 소수 싸움일 뿐이었다. 힘 지킴이에 도전하는 그들 대부분은 마을에 적응하는 그 무렵부터 자신의 신체적 우위를 깨닫기 시작했다. 권력이라는 단어, 저 두 음절을 평생 모르고 살았다고 하여도 무방할 정도로 그들은 철저한 방랑자 생활을 겪어 왔기에, 그들에게 대회라는 것은 다른 그 어떤 무엇보다도 처절한 반격의 자리로 다가왔을 것이다. 힘 종목의 지킴이 대회는 유일하게 중증의 부상자가 발생하는 종목이었다. 말 그대로 힘 하나만으로 판결을 내리는 것이었으니까. 해서, 그들은 항상 서로를 죽였다. 아니, 죽일 듯 해치웠다.


“볼거리도 좋지, 하지만 올해 첫 장은 쉽게 쉽게 가 보자고.”


군이 굵다란 엄지손가락으로 담배를 말며 말했다. 곰 같은 골격과 연갈색의 피부, 갈비뼈까지 내려오는 머리를 땋지 않고 무심히 펼쳐 둔 모습이 그의 몸속에 흐르고 있는 인디언의 인자를 여실히 증명해 주고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 특이한 외관이 있었는데, 눈이었다. 오른쪽 눈은 파먹혀 죽은 것처럼 색이 하얬지만, 왼쪽 눈은 검었다. 한쪽의 상실을 상쇄하듯, 혹은 감추듯, 짙은 쪽의 눈이 항상 총기를 뿜어내었다. 그러한 사실을 군 자신도 알고 있는 까닭에, 군은 항상 말을 할 때면 상대에게로 왼쪽 얼굴을 내밀었다. 책임자 자리 하나는 지킴이 세 사람에 미치진 못했지만, 그런대로 무게가 존재했다. 다만, 군은 겉과 속이 다른 사내였다. 꼼수에 능한 잔챙이 같은 사람이었다. 꼬거나 트는 일이 잦았고, 틈만 나면 직선이 아닌 곡선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그러한 성격 때문에 사람들, 특히 여자들 사이에서 군은 인기가 좋지 못했다. 군은 지킴이 대회의 총책임자이자, 심판자였다. 그가 심판자의 역할을 갖게 된 이유는 하나였다. 창립 멤버로서 자리를 선점했다는 것.


“이번 달에 마을로 여러 사람이 새로 들어왔습니다.”


“그렇습니다. 이번에 특히 괜찮은 사람이 있더군요. 기대하셔도 좋을 듯합니다.”


대답은 양쪽에서 차례로 들려왔다. 둘의 목소리가 비슷하여 눈을 감고 듣는다면 왼쪽이 한 말인지, 오른쪽이 한 말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둘은 쌍둥이였다. 그리고 동시에 그들은 추녀였다. 쌍둥이 자매는 서로를 더 못났다고 생각했기에, 누군가로부터 닮았다는 이야기를 듣는 때면 말을 꺼낸 당사자 앞에서 길길이 날뛰곤 했다. 굳이 따지자면, 둘의 직위는 부책임자가 될 것이다.


“요즘 기름 구하기가 힘들다고 합니다. 부싯돌도 마찬가지고요.”


왼쪽에 앉은 추녀가 담배를 다 말은 군에게로 탁자 위의 라이터를 주워 그의 앞으로 내밀며 말했다. 보기에도 오래돼 보이는 라이터 덮개의 경첩이 허공에서 소리 내며 흔들렸다. 그러자 오른쪽 추녀가 말을 얹었다. 그녀가 1분 30초 동생이었다.


“사치십니다.”


“야!”


왼쪽 추녀가 언성을 높였다.


“민트 씨가 순종적이어서 그렇지, 그녀도 지킴이이기 이전에 마을 사람입니다. 불필요한 심부름은 옳지 않습니다. 하물며, 피크님도 지킴이를 대할 때만큼은…”


“뭐? 피크님?”


다시 왼쪽 추녀였다. 군은 마을 사람의 대화거리에 피크가 나올 때면 그와의 비교 대상으로 종종 소환되곤 했다.


“그만해. 중요한 일도 아니잖아. 뭘 그렇게 목소리를 높여? 네 동생 말이 맞아. 너도 돌렸을 뿐이지 같은 말을 하였고. 어떤 의미로 한 말이든 틀리지 않았어.”


군이 손가락 사이에 끼워 놓은 담배를 재떨이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리고 군은 텁텁하다는 듯이 입맛을 다셨다.


“말이 나온 김에 담뱃잎 텃밭도 싹 밀어 버리시죠. 시티의 향락가와 다를 게 없는 장소예요. 우리는 그런 걸 멀리해야 한다고요.”

    

오른쪽 추녀가 언니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어디 한번 이번에도 반박해 보라는 눈빛이었다.


“아니지, 그건 잘못된 말이야.”


자매의 고개가 동시에 돌아갔다. 군과 눈을 마주친 건 동생 추녀였다. 그의 검은 눈이 딸려가듯 왼쪽을 탐했다.


“마을의 간소하다 못해 마르다시피 한 유흥을 시티의 향락과 비교해선 아니 될 일이야. 내가 동의할 수 없어. 기본적으로 그들은 폭력적이지. 품위는 말할 것도 없어. 발효로 겨우 끄집어낸 알코올을 술이라고 들이켜는 사람들이야. 얼마를 마신들 취하지도 못하는 구정물 따위로 건배를 하는 사람들이라고. 텃밭을 없애자? 말도 안 되는 소리. 촉수 삐친 것 마냥 생기다 만 꽃 한 송이를 보려고 그 값을 들여 종자를 구한 줄 알아? 의도가 다르다고, 의도가.”


대상이 사람이 아니었음에도 자매의 히스테리는 시작되었다. 자매는 동시에 행패를 부렸고, 머리를 쥐어뜯으며 듣기 싫은 괴성을 내질렀다. 소리를 지르는 도중, 서로의 얼굴로 삿대질을 겸하는 것은 덤이었다. 군은 곧장 자신의 실수를 인정했다. 그리고 찰칵- 하고 라이터의 불이 켜지는 소리가 울렸다. 얼마 남지 않은 부싯돌에 닳고 닳은 롤러가 만나 겨우 스파크를 일으켰다. 담배의 첫 모금을 빨아들인 군이 자매 둘에게로 시선을 흘리며 말했다.


“그런 말이 있어. 명성은 위대함을 뜻하기도 하지만, 반대로 조롱의 대상임을 확인시켜 주는 것이라고. 무슨 말인지 알아듣겠나? 우리는 그 같은 명성을 멀리하기만 하면 되는 거야. 위대해지진 못할망정, 누군가의 조롱거리가 되지 않도록 말이지.”


군은 자신이 뱉은 말에 만족한다는 듯이 늘어뜨린 어깨를 의자의 팔걸이에 올려놓았다.


“이번에는 안 속아요. 또, 군 씨가 만든 말이죠?”


“그래요. 지난번에도 그럴듯한 말로 우릴 매도했었으니까.”


자매가 차례로 말했다.


“피해자를 자처하는 건 너희들이야. 일전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지만, 나는 세상에 퍼져 있는 명언을 재사용한 죄밖에 없어.”


군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자존감 높아 좋으시겠어요.”


“그러게. 아주 살맛 나시겠어.”


자매의 투정에 군은 깊게 들이쉰 담배 연기를 좌우로 번갈아 내뿜는 걸로 대신했다. 그리고 하던 말을 이었다.


“지킴이라는 거 말이야.”


“사실 아무짝 쓸모없는 명패에 불과하단 말이지. 군사도 아니고, 정보원도 아니고, 고작 시티의 치즈를 빼돌릴 도둑 생쥐를 양성하려는 거니까. 목매는 그들이 있다는 것 자체가 코미디야. 우스워.”


“또, 또 자기만 안다는 듯.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아요, 그 말투.”


왼쪽 추녀가 연기를 흩치며 말했다. 그녀가 말을 끝내자, 곧바로 오른쪽 추녀가 한목소리로 소리를 냈다.


“하지만, 그들 덕에 우리가 생명 부지를 하고 있다는 점은 명백한 사실이에요. 이런 말 하긴 그렇지만, 그들보다 더한 존재는 우리예요. 우리가 하는 게 뭐가 있어요. 고작 대회를 개최해 줄 뿐이고, 나올 관중을 집 밖으로 나오게 하는 것뿐이죠. 지칭할 생쥐가 필요하다면, 그건 우리 세 사람일 거예요. 그들이 아니고요.”


시티를 포함하여 모든 양복쟁이를 줄 세웠을 때, 누구 한 사람의 콧대가 가장 높게 치솟아 있을까. 현재, 지금 당장으로만 따진다면 동생 추녀의 콧대일 것이다. 군과 오래 지낸 사람일수록 그런 경향이 강했다. 바깥으로 도는 형태를 무시코서 안으로만 굽어 들어가는 달팽이의 속살처럼 말이다.


“오늘따라 유독 날을 세워 말을 하는걸. 어젯밤 장난을 아직도 마음속에 담아 두고 있는 건가?”


군은 물고 있던 담배를 오른쪽 손으로 옮긴 다음, 재를 한 차례 털고서 다시 베어 물었다. 당사자인 동생보다 언니의 낯빛이 붉어져 있었다. 그리고 동생 추녀를 바라보는 언니 추녀의 눈이 바늘이라도 쏟아 낼 듯 날카로웠다.


“…장난이 아니셨을 텐데요.”


부끄러움에 바닥으로 내려간 목소리. 추녀 자매의 입에서 좀처럼 듣기 힘든 소리였다. 특히, 동생은 부정으로 똬리 틀린 언니와는 달리 자존감이 있는 여인이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장난이었대도.”


“두 사람, 무슨 일인데요?”


언니 추녀가 말했다.


“‘그 손’을 장난이라고 밀어붙이는 건, 군 씨답지 않은 처사예요. 차라리 깨끗하게 인정하고, 손을 터는 편이 나았을 거라 생각해요.”


“‘그 손’이 뭔데요? 왜 그 대화에 저만 끼지를 못하는 거죠?”


“자꾸 그런 쪽으로 몰고 가지 마. 정말 아무 뜻 없이 나온 행동이었으니까. 네가 그럴수록 우리 세 사람만 멀어지는 거야. 책임자끼리 사소한 일로 다투지 말자고. 대회가 얼마 남지 않았어.”


그리고 군은 서두르는 손짓으로 담배를 꺼뜨렸다.


“사과를 듣지 못한 이상, 제가 이번 대회에서 군 씨를 돕는 일은 없을 거예요. 남은 오해는 언니를 데려가 푸세요.”


새침한 목소리로 말한 동생 추녀는 군의 집에 드리운 은근한 불편을 스푼으로 젓듯 넌지시 휘저은 다음, 밖으로 나가 버렸다. 쾅, 하는 소리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인지, 자리에 앉아 있던 군은 문소리가 나지 않자, 몸을 일으켜 등 뒤의 현관을 확인했다. 동생 추녀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그리고 군은 또 다른 그녀와 말하기 위해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아도 되었다. 언니 추녀가 벌써 그의 앞에 다가와 있었다. 그녀의 눈가에 살짝만 건드려도 떨어질 듯한 새끼손톱 크기의 눈물이 맺혀 있었다.


“수치스러워요.”


군과 눈이 마주친 순간, 언니 추녀가 흰색 머플러에 얼굴을 파묻으며 말했다. 그녀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옷을 만지지 않았다. 바람에 깃이 삐뚤어져도, 빗물에 옷이 달라붙어도 그랬다. 그녀가 옷매무새를 다듬는다는 건, 그러지 않고선 버티지 못하는 특별한 상황이라는 의미였다.


“오해야, 포렌.”


군이 자리에 서 있는 언니 추녀의 이름을 부르며 말했다.


“오해라는 말은 진실을 들켰을 때 하는 말이라고 배웠어요. 군.”


포렌은 뒤로 걸음을 물리며 대꾸했다. 포렌의 그 말에 군은 스스로 헛발질을 일으켰다.


“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왜 우리끼리 내분을 조장하려는 거냐고. 아니면, 지금 설마 약속 때문이야? 내가 지난 분기 두 사람 몫을 적게 줘서 그래? 그런 거라면 언제든 뒤로 언질을 달라고 했잖아. 내게 달린 몫을 떼어 주겠다고. 남의 배려를 이런 식으로 갚으면 안 되지. 그리고 당시에도 최대한 알아듣게 설명했지만, 우리는 두 채를 빼야 했어.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꼬박 10년간 민트의 자리를 빼앗을 만한 사람이 나타나지 않았으니 말이야!!”


포렌은 대답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말을 듣지 않은 걸지도 모른다. 얼굴이 파묻힌 머플러만이 그녀의 호흡에 맞추어 부풀고 줄어들기를 반복했다. 그를 보던 군은 날쌔게 포렌의 옆을 지나쳐 부엌으로 향했다. 나무 바닥 위로 물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곧이어 불친절한 고함이 이어졌다.


“내 집에서 당장 꺼져! 너희 자매한테도 질렸으니까!!”


새하얀 머플러 위로 포렌의 빨간 눈시울이 떠올랐다. 포렌은 말없이 몸을 이끌었다. 타고난 마음 그릇의 크기가 선천적으로 다른 세 사람이었기에 가능한 상황이었다. 그릇이 작은 사람이 일을 일으키고, 그릇이 없는 사람이 일을 운반, 그릇이 큰 사람이 일을 뒤집어쓰는. 그런 의미에서 포렌의 동생은 항상 일의 중심에 서 있었다. 특히나 일에 감정이 포함된 경우일 때면, 그녀는 무적이었다.


“토슈!!”


길로 나온 포렌이 머플러를 내리고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소리쳤다. 그녀의 목소리를 들은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 고개를 돌렸지만, 그들은 눈으로 자기네들이 있는 곳은 아니라고 대답했다. 포렌은 고개를 돌렸다. 날은 이미 어둑했고, 시야가 멀리 트이기엔 역부족이었다. 자매의 집은 군의 집에서 한참을 돌아가야 나오는 곳이었다. 그리고 마을 중앙 폭포의 암벽과 등을 맞대고 있는 집이기도 했다. 등을 맞댄 탓에 그녀들의 집엔 물안개가 들지 않았다. 포렌과 토슈 자매는 10년 전, 마을의 스물일곱 번째 약속의 날, 그러니까, 퓨티와 포 부녀가 단상에 소개되기 두 달 전 마을로 들어온 여인들이었다. 홈이 마을 사람들과 술판을 벌인 것은 시티의 달력으로 17일 밤. 그의 경우에서 보았듯이 지금은 약속의 날이 아니더라도, 도망자들이 단상에 먼저 오르지 않아도, 마을 사람들과 융화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과거엔 아니었다. 피크의 선창이 우선이었다. 확성기를 쥔 피크는 가히 절대적인 존재였다. 그랬던 피크가, 마을 사람들이, 그 같은 행위를 흩쳐 버리게 된 것은 하루였다.


피크의 아들이 목이 잘린 채로 발견된 하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