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객기 속에서 매일의 하루를 지새우는 피크와는 달리 그의 아내 워블은 일과가 매우 단출했다. 대략 십몇 년 전부터 그녀에겐 식사라는 개념이 없었다. 속이 쓰리고 소리가 날 정도로 배가 고프길 기다렸다가, 피크가 만들어 놓은 미음을 떠먹는 것이 공기를 제외코서 그녀의 속으로 들어가는 전부였다. 그렇게 어느 정도 속이 채워지면 워블은 곧장 집의 난간으로 기어갔다. 마을을 대충 둘러보다, 금세 고개를 쳐들어 드넓은 하늘에서 구름을 골랐다. 그녀가 찾는 것은 작고, 동그랗고, 빵빵한 모양의 것들이었다. 처음 워블의 그런 모습에 사람들은 의아해했지만, 햇수가 쌓이고부터는 모두가 의문을 거둬들였다. 워블이 구름으로부터 무엇을 짜내고 있는지를 눈치챘기 때문이었다. 원망의 화살은 피크에게로 날아갔다. 말이 들릴 때마다 피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고는 떳떳이 변명했다. 자신도 할 만큼 해 보았다고. 본인이 선택한 인생이라고.
“자기, 오늘 어때?”
조용히 다가온 피크가 워블의 등 뒷자락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최악이에요. 오늘같이 두껍고 평평히 층이 진 날은.”
워블이 팔을 뒤로 돌려 피크의 손을 잡으며 대답했다. 낡은 손이었다. 트고, 투박하며, 목에 둘린 스카프와는 반대되는 손. 목소리도 그러했다.
“그러면 오늘은 이만 들어가서 쉬는 건 어때. 민트 씨로부터 송이 몇 개를 구해 왔어. 코코넛 숯에 불을 놓아 다진 마늘과 함께 구워 먹으면 맛이 상당할 거야.”
“내가 무슨 말을 할지 이미 알고 있잖아요.”
워블이 하늘에 놓은 눈을 피크의 눈앞으로 내리며 말했다.
“어제의 대답은 알지. 하지만 오늘의 대답은 모르는 거잖아?”
“미안해요. 오늘도 같은 답이에요. 먼저 들어가 보아요. 나는 구름을 봐야겠어요.”
말을 들은 피크는 허탈함 가득한 표정으로 워블의 손을 놓았다. 근 10년 가까이 되는 반복에 피크도 지칠 대로 지친 것은 사실이었다. 그리고 피크 역시 가장이라는 이유로 티를 내지 못할 뿐, 워블과 마찬가지로 억누르는 삶을 살고 있다는 점은 다르지 않았다. 만삭이었던 워블을 끌고서 시티를 박차고 나왔던 날, 차마 치울 엄두조차 나지 않는 먼지 바닥에서 아기의 첫 울음소리를 들었던 날, 피를 닦아 줄 천 쪼가리가 없어, 입고 있던 속옷을 벗어 물에 적셨던 날, 양손에서 김이 날 정도로 차가운 물이었음에도 일말의 내색 없이 고개를 끄덕이던 워블. 그것이 시작이었다. 자신의 타고난 카리스마를 좋은 쪽으로만 다루던 피크가 독단적인 사람으로 변하게 된 것은.
“그래, 그럼. 혹시나 생각이 바뀌게 되면 내려와 줘.”
“알겠어요.”
워블이 회갈색 눈동자를 하늘 위로 들어 올리며 힘없이 말했다. 그에 피크는 몸을 돌리며 마지막 말을 남겼다.
“나는 내일도 자기에게 같은 질문을 건넬 거야, 알고 있겠지만.”
워블은 대답하지 않았다. 이미 눈이 두꺼운 구름 뒤로 숨은 태양을 향해 있었다. 안으로 들어온 피크는 도마에 포개어 있는 연잎을 손가락으로 한 겹씩 걷어 냈다. 그리고 두꺼운 손 근육으로 송이 모두를 으스러뜨려 통에 버렸다. 미음이 데워질 정도로만 가느다란 장작을 추가로 넣은 다음, 피크는 집 밖으로 나갔다.
“내일은 비가 내리겠군.”
난간에 기댄 워블을 지나쳐 하늘을 본 피크가 차가운 어조로 말했다. 피크는 출구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공손함으로 인사를 건네오는 사람들에게는 가벼운 묵례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출구는 하나의 벽 같았다. 사이사이 나무를 낀 채로 자연스레 둥글게 조성된 마을은 그 느낌이 덜하였지만, 출구는 달랐다. 차분함 가운데에서 떨리는 하나의 손처럼, 출구는 거칠었다.
“새로 오신 분 이름이 뭐라고 했죠?”
뒷짐을 지고서 소리 없이 계단을 오른 피크가 때마침 같은 곳에 올라 있는 사내를 발견하고는 그에게 물었다. 사내는 키가 크고 무척이나 마른 사람이었다. 검은색 눈망울과 갈색 피부가 해가 약함에도 매력적인 색으로 빛이 났다. 피크를 본 사내는 짝짝이로 짚고 있던 다리를 똑바로 풀며 대답했다.
“어, 피크님.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분명 사내는 피크의 말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피크는 처음 목소리에서 톤을 한 계단 낮춰 다시 말을 건넸다.
“그제 밤에 마을로 오신 분을 보러 들렀습니다.”
“아하, 홈 씨를 만나러 오셨군요? 물 한 컵 들이켜고는 곧장 곯아떨어진 거 같던데, 아직 깨어났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아직 디케이 씨 댁에 머물고 있겠군요. 알겠습니다.”
피크는 인사 없이 아래로 걸음을 내밟았다. 사내는 길게 말을 나누지 못해 섭섭한 듯 입맛을 다시며 멀어지는 피크의 뒷모습을 끝까지 바라보았다. 디케이는 피크와 같이 마을의 창립 멤버인 동시에 의사였다. 기계만큼이나 차고 넘치는 시티의 반려동물들, 디케이는 그중 주로 유기 동물을 건져 치료해 주고 다시 원래 자리에 풀어 주곤 했었는데, 변할 것 같지 않은 현실과 그에서 오는 자신의 인생에 회의를 품고서 피크 무리에 합류해 시티에서 도망쳐 나왔다. ‘치료’라는 건 단상에서의 교환 대상이 아니듯, 디케이 역시 지킴이들만큼이나 갑옷 같은 대우를 누리고 있었다. 디케이의 집은 피크가 걸어온 마을의 나머지 반 바퀴가 시작되는 무렵에 자리해 있었다. 말 그대로 출구와 가장 가까운 집 중 하나였다. 디케이의 집 입구에는 석류나무 세 그루와 과즙을 덧대고 덧대어 만든 붉은 십자가 문양이 대문 정면에 큼지막하게 칠해져 있었다.
“디케이, 집에 있나?”
문을 가볍게 두드린 후, 소리가 없자 피크는 말했다. 피크는 한 번 더 문을 두드렸다. 다시 소리가 없었다. 피크는 잠시 가만히 있다, 창가로 걸음을 옮겼다. 흙색의 나무줄기를 촘촘히 가로로 길게 엮은 발 앞에 선 피크는 고민했다. 디케이가 가장 혐오하는 행위가 남으로부터 엿봄을 당하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피크는 숨을 참은 채로 아주 살짝 발을 들어 올려 시선을 집어넣었다.
“피크!!!”
굵고 우렁찬 목소리. 늘 그렇듯 디케이의 목소리는 방대한 성량에 성대가 따라가지 못하는 듯 소리가 긁혀서 나왔다. 피크는 눈을 질끈 감으며 창에서 떨어졌다. 그리고 작게 중얼거렸다.
“엿 됐군.”
발을 올리자, 디케이가 격하게 손짓하고 있었다. 피크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으로 걸음을 옮겼다. 문을 채 다 열기도 전에, 허리춤에 손을 올린 디케이가 현관 앞에 도착해 있었다. 피크보다 머리 하나만큼은 키가 컸고, 유한 흰색의 눈썹과는 대조되는, 다소 어두운 미간을 가진 사내였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마을 내에서 유일하게 안경이란 걸 쓰고 있다는 점. 그는 고도 근시였다.
“아침부터 싸울 상대를 찾고 있는 거야, 응? 내가 상대해 주면 돼? 그래, 어떻게 해 줄까? 어떻게 해 주길 바라?”
디케이가 한 손으로는 안경을, 다른 한 손으로는 피크의 가슴을 누르며 말했다. 피크는 입꼬리를 올리며 대답했다.
“이번엔 여자도 아닌데 뭘 그리 화를 내?”
디케이가 누르던 손을 펼쳐 옷을 붙잡자, 피크는 이를 드러내며 웃음을 보였다. 그리곤 양손으로 디케이를 안으로 밀어 넣으며 말을 이었다.
“이제 들어가도 되지?”
“네놈의 그따위 농담을 마을 여자들이 들어야 하는데 말이야.”
대답한 디케이는 밀려난 몸을 다시 앞으로 전진시켰다가, 이내 발을 뒤로 빼며 피크를 향해 들어오라는 고갯짓을 보였다. 디케이의 집은 어두웠다. 또한, 무겁기 그지없었다. 분위기는 물론이거니와, 실제로도 그랬다. 사방의 벽마다 두께가 어마어마한 나무 선반들이 박혀 있었는데, 그 위에는 부리가 좁고 길이가 긴 투명한 유리병들이 줄지어 나열되어 있었다. 하나 같이 매연을 가득 담아 놓은 듯 속이 검었고, 생명력이 없었다.
“홈이란 사람을 만나러 왔는데.”
집으로 들어온 피크는 시니컬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는 익숙할 법한데도 피크는 아직도 주변의 것들에 눈길이 갔다.
“너도 참 별나. 평등으로 일군 마을이랑 네 행동은 괴리가 있다고. 너도 알지?”
디케이의 딴지에 피크는 여유롭게 말을 받으며 되물었다.
“그런 말은 섭섭한걸. 순수한 병문안과 아침 인사가 권위적이란 소린가?”
“쳇. 홈이란 놈은 내 침실에 있어.”
“고마워.”
홈은 담요를 배에 덮은 채로 아기처럼 자고 있었다. 침실로 들어선 피크는 눈빛을 바꾸어 홈의 머리부터 발까지를 유심히 관찰했다. 담요 바깥으로 삐져나온 팔과 다리에 보이는 찰과상 말고는 달리 큰 상처는 없어 보였다. 피크는 침대 옆 등받이가 없는 의자를 한 손으로 끌고 와 몸을 앉혔다. 피크는 등을 빳빳이 세우고서 다리를 꼰 다음, 힘준 눈으로 다시 한번 홈을 훑었다.
“몸은 괜찮군.”
그리고 침실 문 쪽에서 디케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변태같이 그러고 있지 말고 깨워서 말을 하지 그래.”
“곤히 자는 사람에게 그럴 수 있나.”
말을 들은 디케이는 어이없다는 듯 콧방귀를 뀌었다. 그리고 발소리를 크게 내며 홈의 얼굴 가까이로 다가가 허리를 숙이고는…
“웍!!!”
짧고, 굵게 고함을 내질렀다. 홈은 발작하듯 담요를 팽개치며 몸을 일으킴과 동시에 그와 비슷한 소리를 내뱉었다. 하마터면 홈의 오른발에 피크의 턱이 차일 뻔했다. 피크와 디케이는 동시에 킥킥대고는 홈을 향해 진정하라는 손동작을 내밀었다.
“뭡니까?”
홈이 속에서 올라온 신물을 삼키듯이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아침 인사.”
피크가 말했다.
“라는 군.”
디케이가 덧붙였다. 둘의 가벼운 말에도 홈은 놀람을 가라앉히지 못하고선 손을 가슴에 대고서 연신 숨을 헐떡였다.
“이름이 홈, 맞나?”
피크가 말했다.
“…예.”
“혼자 도망 나오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그 말에 디케이의 눈빛도 좁고 날카롭게 변하였다. 홈은 쫓기듯 눈을 돌리다, 머리맡에 놓인 물을 낚아채 단숨에 들이켜고는 숨을 길게 내뱉었다.
“제가 살던 등급의 구역에 일순 정전이 있었습니다.”
“정전?”
“등급?”
피크가 정전을 말했고, 디케이가 구역을 말했다.
“예. 저는 제일 최하위 등급인 F구역에 살던 사람입니다. 주로 실패한 예술가들이 지내는 곳이요. 그런데, 저의 등급은 왜 물으시는 겁니까? 이곳에도 그에 따른 급이 존재하는 건가요?”
홈이 등급이라는 단어에만 반응하여 답을 하며 되물었다.
“그럼 그렇지. 우리도 변했는데 시티라고 변하지 않았을 리가.”
말을 한 디케이는 외면하듯 고개를 옆으로 돌린 후, 소리 내 혀를 찼다. 피크는 왼손으로 머리를 짚으며 눈을 감았다. 이마를 가린 검지를 기점으로 퍼지듯 올라간 눈썹이 물결처럼 출렁거렸다.
“그 잘난 시티에 정전이라니, 내 평생에 보지 못해 아쉽군. 봤더라면 실컷 비웃어 줬을 텐데 말이야. 안 그런가, 디케이.”
피크가 머리에서 손을 떼며 말했다. 디케이는 거기서 30초가량을 가만히 있다가 입을 열었다.
“물론 시티의 정전도 장관이었겠지만, 피크…”
디케이가 말을 끊고 숨을 깊게 들이쉬자, 그의 호흡에 두 사람은 빨려 들어가듯이 숨죽여 귀를 기울였다.
“드디어 시티에 보다 확고한 계급제가 도입된 거야.”
그리고 디케이는 더 깊숙이 홈을 향해 상체를 숙이고는 그에게로 취조하듯 말을 뱉어냈다.
“자네, 올해 나이가 몇인가. 주머니에 라이선스가 없던데, 라이선스는 당연히 살던 곳에 버려두고 왔겠지? 추적기가 달린 라이선스 말이야.”
“뭘 갑자기 열을 올리고 그래? 자네답지 않게.”
피크는 디케이의 힘이 들어간 어깨 위로 손을 얹으며 말했다.
“확실하게 하고 싶은 것뿐이야.”
짧게 대꾸한 디케이는 답을 들을 때까지 물러서지 않겠다는 듯, 피크의 손이 유도하는
대로 몸을 물려주지 않았다.
“루트는 어떻게 알았지? 딸린 가족은 없는 건가?”
이미 디케이는 홈의 대답 따위를 듣기 위해 물음을 건네는 사람 같지 않았다. 목 주변의 핏줄이 곤두섰고, 목소리도 커짐과 동시에 거칠어져 갔다.
“라이선스는 물론입니다. 루트는…”
홈은 말을 멈췄다. 그리고 떨리는 동공을 쳐들어 두 사람의 눈치를 살피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에 피크는 능글맞게 말을 건넸다.
“괜찮네. 말해 보게.”
홈은 아주 천천히 입을 우물거렸다. 피로를 깨고 갓 일어난 탓에 생기라고는 없던 눈이 그제야 슬슬 빛을 찾아갔다.
“이쯤에서 민트라는 말을 뱉으면 목숨을 지킬 수 있다고 하던데, 맞나요?”
피크의 눈이 금방 닦아 낸 스테인리스 쟁반처럼 광이 났다. 그리고 말보다 손이 먼저 나갔다. 피크는 디케이가 선수를 치기 전에 그를 가로막았다.
“이거 인연이군.”
피크는 실실 쪼개며 말했다.
“…이런 망할. 피크, 또 지킴이를 독단적으로 이용한 건가?”
디케이가 지쳤다는 목소리로 피크를 향해 말했다.
“아내를 위해 어쩔 수 없었어. 물론 나도 분명한 거래를 나누었고 말이야. 빌어먹을! 이거 정말 인연이지 않나? 그런데 민트 씨는 왜 이 사실을 미리 내게 말해 주지 않은 거지?”
“자네가 아무리 암묵적으로 이 마을의 선봉장이라고는 하지만, 지킴이는 아니야. 그들만큼은 개인이 휘두를 도구가 아니라고.”
“민트 씨에게 가 봐야겠어.”
피크는 여운이 가시질 않는 듯 쉬지 않고 피식대며 중얼거렸다.
“피크!!!”
디케이가 몸 앞에 서 있는 피크의 팔을 강하게 휘어잡으며 소리쳤다. 힘이 들어가 앞으로 굽어 버린 어깨에 귀까지 빨갛게 달아올라 눈의 흰자위까지 화가 나 보였다.
“그래, 사과하지. 미안하네. 그리고 민트 씨는 이제 지킴이가 아니야. 과거의 사람이지.”
피크는 차분한 어조로 말을 건넸지만, 잡힌 팔을 놓아달라고 간청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피크, 이번 건은 그냥 넘어갈 수 없겠어. 다음 약속의 날에 나는 마을 사람들 모두에게 이 사실을 알릴 거야.”
처음 듣는 단어들에 홈의 눈이 반짝였다. 홈의 살아난 눈이 둘 사이를 빠르게 번갈아 오갔다.
“그래, 그럼.”
피크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그리고 디케이 쪽으로 몸을 돌려 그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다음 말을 덧붙였다.
“그런데 그게 과연 옳은 선택일까? 우리 둘로 조용히 무마될 수 있는 일을 오히려 키워 버리는 행위가 될 수도 있는데?”
“키워서 안 될 것도 없어. 괜한 억지 부리지 마.”
디케이가 빼지 않고 응수했다.
“저기, 잠깐만요!”
홈이 배꼽 위에 덮인 담요를 왼손으로 걷어 내며 급히 말을 뱉어냈다. 후두가 위로 들린 상태로 말을 한 나머지, 목소리의 톤이 상당히 얇고 엉성했다. 때문에, 어떻게 들으면 가볍게 새는 웃음을 곁들여 말을 하는 것 같기도 했다.
“마을에 들어서기 전, 민트 씨가 제게 부탁하셨어요. 이번 일을 발설하는 때는 목숨이 걸려 있는 듯 보일 때, 그때 한 번뿐이라고. 그래서…”
“너는 빠져 있어. 신참 따위가 낄 대화가 아니니까.”
디케이가 피크를 꼬나보던 눈동자 그대로를 홈에게 옮기며 말했다. 순간 그의 왼 어깨에 아주 작은 미동이 일었는데, 아마 손찌검을 올리려다 급하게 멈춰 세운 반동 탓일 것이다.
“민트 씨가 그랬다는 게 사실이라면, 우리가 낄 대화도 아니지 않나? 디케이.”
피크는 입술 양끝을 승자처럼 추켜올리며 말했다. 미소는 마치 예상이라도 하고 있었다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얼굴에 배어났다.
“룰대로 하겠네.”
디케이가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