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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영강 Aug 15. 2024

포의 욕망

포는 집을 나서는 퓨티에게 인사를 건넨 이후 다시금 잠에 빠져들었다. 연약한 몸의 회복을 위해 택한 잠이라기보단, 깨어 있기가 마냥 귀찮은 늙은이의 게으름이었다. 창가를 등져 누운 포의 등으로 떨어지는 햇볕도 그를 아는 듯 그의 곁에 오래 머물렀다. 어느덧 해가 넘어가고, 폭포의 물소리가 무의식 속으로 한 겹씩 들려오려는 무렵, 포는 가장 꿈이 아니길 바라던 한 장면에서 눈을 떴다.


“…”


조용히 몸을 일으킨 포는 나지막이 입을 뻐끔거렸다. 정확지 않을 정도의 짧은 욕이었다. 그런 뒤, 포는 짧은 탄식을 내뱉고서 침대 옆에 놓인 잔을 들어 입술 사이로 조금씩 물을 떨어뜨렸다. 짧아진 혀가 미치지 못하는 잇몸 구석구석으로 수분을 채워 주기 위함이었다. 특히, 위아래의 앞니 뒷부분은 갈라짐이 쉽게 나타나는 자리였기에 물을 흘려주는 데 있어서 섬세함을 더하여야 했다. 포는 끝으로 볼을 이용해 안쪽을 헹군 뒤, 머금고 있던 물을 창밖에 대고 뱉어냈다. 그 모두를 마치고 나서야, 포는 집 내부로 눈을 돌릴 수 있었다. 그리고 포는 퓨티가 아직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그제야 알아차렸다.


“…”


포는 그녀를 부르고 싶었다. 포는 비틀거리며 침대에서 몸을 내렸다. 끼니를 두 번이나 건너뛴 그의 다리가 유독 얇아 보였다. 포의 눈은 식탁에서 멈추었다. 오전에 퓨티가 말한 음식들이 그대로 식탁 위에 자리하고 있었다. 먹음직한 냄새는 진즉에 달아났지만, 그들은 하나같이 마을에서 보기 힘든 귀한 것들이었다. 시간이 흘렀음에도 나무쟁반이 기름기로 번들거렸다. 포는 침을 꿀꺽 삼키며 그곳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얇게 썰린 올리브가 얹혀 있는 연갈색의 뭉텅이 하나를 집어 들었다. 포는 그것이 시티에서 빵이라고 불린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포는 집어 든 빵을 단숨에 입 안 가득 베어 물었다.


“…우으.”


씹음과 동시에 안으로 퍼지는 고소한 풍미에 포는 콧소리로 그를 반기며 빵을 씹어 나갔다. 그리고 맛에 익숙해지는 가운데, 식도가 밀가루에 막혀 갈 무렵, 포는 불쾌감이 느껴졌다. 퓨티가 수풀로 가득한 마을에서 어떻게 이러한 음식을 구할 수 있었는지서부터, 음흉한 마토의 아래에서 하수인처럼 일하는 그녀의 모습까지가 머릿속으로 그려졌기 때문에. 포는 베어 물었던 빵을 입에서 떼어 내어 이빨로부터 떨어져 나간 자리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포는 생각했다. 반듯하지 못하고, 여기저기 보풀이 올라온 것이 꼭 생쥐 떼가 지나간 것 같다고.


“…”


포는 들리지 않는 소리로 중얼거리며 남은 조각을 음식들 사이로 깊숙이 밀어 넣었다. 기분이 꺾인 포는 다시 침대 속으로 파고들고 싶었다. 그러나 포는 잘 알았다. 잠으로 도망칠 시간 또한 인간의 하루에는 제한선이 있다는 걸. 자신은 오늘 그 하루치를 모두 사용했다는 걸. 창밖의 거리는 이제 어둑하여 눈으로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가 되어 있었다. 포는 현관으로 가, 닳도록 닳은 신발에 발을 구겨 넣었다. 그리고 단단히 내려놓은 빗장을 올리고 계단에 첫발을 내밟을 때쯤, 포는 민트와 눈이 마주쳤다. 곧장 거리로 나설 요량이었던 포는 흠칫하며 딱딱한 자세로 한 손을 들어 보였다. 그리고 고개를 살짝 틀어, 민트의 곁에 퓨티가 있는지 살폈다. 퓨티는 없었다. 민트 혼자였다. 민트는 말없이 고개를 꾸벅였다. 10년이 넘도록 그렇게 이어져 온 사이였다. 그간에 오간 둘의 대화를 모두 합하여도 홈이 하룻밤 술자리에서 내뱉은 말을 합한 것보다 적을 것이다. 포는 잠시 머뭇거리다 빠르게 계단을 내려갔다. 그리고 민트 앞에서 손짓과 함께 입을 뻐끔댔다.


“뭐라고요?”


포의 입을 본 민트가 말했다.


“…”


포는 다시 입을 크게 움직이며, 손을 자신의 가슴 자락 정도에 유지한 채 허공을 눌러 퓨티를 묘사했다. 그제야 민트는 얼추 무슨 뜻인지 알아들었다는 눈망울을 띠어 보였는데, 레드를 대하였을 때와는 달리 친절한 감이 확연히 떨어져 있는 모습이었다.


“아, 퓨티요?”

     

포는 고개를 끄덕였다.


“글쎄요. 오늘은 아침에 잠깐 만난 거 말고는 못 본 거 같은데, 이제 곧 밤이니 알아서 들어오지 않을까요?”


민트가 별일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말했다. 그녀의 대답에 포는 다시 한번 똑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가 봐도 되죠?”


포의 한 손이 다시금 민트를 향해 다가갔다. 그를 본 민트는 달아나듯 집 빗장을 올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다른 작별 인사는 없었다. 포는 점쟁이는 아니었지만, 왠지 모르게 그 행동의 이유에 짐작이 가 씁쓸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포는 그녀가 집으로 들어가고 나서야 한 가지 물음을 놓쳤다는 사실이 뒤늦게 떠올랐다. 아침의 음식은 무엇의 대가로 준 것이냐는 물음.


“…”


입을 거의 열지 않은 채로 무언가를 웅얼거린 포는 굳이 부딪힐 게 뻔한 좁은 길로 몸을 비집어 넣어 바깥으로 걸어 나갔다. 길은 조용했다. 이맘때에 보이는 마을의 당연한 풍경이었다. 태양은 마을을 비추는 유일한 빛이었고, 빛의 존재는 절대적이었으니까. 포는 거리의 좌우를 살핀 후, 달빛 아래 그림자가 꼬여 있는 곳으로 걸음을 내렸다. 그리고 포는 순식간에 그들에게로 가까워졌다. 일순 수선하던 말소리가 잦아들었다. 포의 인기척을 느낀 사람들이 말하기를 멈춘 것이다.


“…”


포는 자신의 그림자를 그 위로 포개며 ‘안녕하세요.’라고 입 모양을 띄웠다.


“아, 포 씨! 오랜만입니다. 몸은 좀 괜찮으십니까?”


그들 중 포와 나이가 비슷해 보이는 사내가 모자를 벗으며 인사했다. 그의 옆에 나이가 한참 어려 보이는 두 사람이 자리해 있었는데, 그들은 가만히 서 있었다. 포는 구태여 경멸하듯 보는 둘과 각각이 눈을 맞댄 다음, 자신을 맞아 준 사내를 향해 말을 이었다.


“…”


“퓨티? 퓨티를 봤냐고요? 네, 봤었죠. 오전에요. 저희가 마토 씨와 다투고 있을 때 그녀가 등장했습니다. 덕분에 일이 잘 풀렸어요. 오늘은 정말 싸움으로 번질 뻔한 분위기였거든요.”


말을 끝낸 사내가 ‘안 그래?’와 같은 얼굴로 두 사람을 돌아봤다.

     

“예, 뭐.”


“그렇죠.”


둘은 형제처럼 대답했다. 원래는 시끄러울 것 같이 생긴 얼굴들이었다. 맞춘 건지 아닌 건지 모를 옷의 대비되는 색부터 요란스러웠다. 포는 세 번째 사내가 말을 마치기 이전부터 고개를 숙여 자리를 멀리하고 있었다. 포의 등 뒤로 어느새 커진 두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포는 흥미 가지 않았다. 포는 조금 더 걷기로 했다. 길은 시원함으로 가득했다. 억수 같이 내린 비의 향취가 여전히 거리 곳곳에 남아 있었다. 포는 굳은 땅을 골라 가며 발을 내렸다. 포의 신발 양옆에는 이미 작은 진흙들이 잔뜩 묻어 있었다. 그렇게 걷기를 10분 남짓, 포는 걸음 속의 무의식에서 시티의 냄새가 난다고 생각했다.


‘…라벤더, …향수.’


포는 속으로 읊조렸다. 포는 짧게 숨을 끊어 마시며 냄새를 쫓아 눈을 돌렸다. 후보는 두 곳이었다. 한 곳은 잡사가 가득했고, 다른 한 곳은 모자 하나가 덩그러니 걸려 있는 것이 전부였다. 포는 모자가 걸린 집은 아니라고 확신했다. 그리고 그때,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 집이었다. 소리를 들은 포는 그늘로 들어가, 체조하듯 목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그리로 치우쳐진 자신의 모습이 의도한 바가 아님을 증명하려는 것처럼 파인 땅 위로 발을 내려놓고는 일부러 큰 몸짓으로 휘청거렸다. 그리고 그 반동을 타, 포는 순식간에 집의 벽면에 몸을 밀착시켰다. 포는 재빨리 눈을 돌렸다. 거리에 다른 사람은 없었다.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한 포는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곤 한 틈에 집의 창문 속으로 눈을 집어넣었다. 군데군데 터진 실핏줄이 거리에 내린 달빛과 맞물려 아찔하게 빛났다. 집의 거실에 페리의 모습이 보였다. 몸을 씻고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것인지 그녀는 걸쳐 있는 것이 없었다. 반면, 행동에 나선 포는 과감했다. 절제력을 실추한 사람처럼 포의 눈이 사정없이 돌아갔다. 포는 지저분한 백태가 묻힌 혀를 내밀어 페리의 몸 위아래를 게걸스럽게 핥았다. 숨은 금방 달아올랐고, 쿵쾅대는 심장 소리가 벽을 타고 그대로 이어졌다. 페리는 포의 존재를 전혀 눈치 못 챈 듯했다. 그녀는 환히 열린 창 쪽으로 몸의 굴곡을 자랑하듯 내밀었고, 물기가 머무를 시간이 지났음에도 뭔가를 주워 입을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아래에서 손을 흔들고 있던 포는 순식간에 사정했다. 그리고 포가 내린 바지를 올리는 그때, 집에 있던 페리가 작은 병 하나를 들어 흥얼거리며 몸 위로 뿌려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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