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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영강 Nov 08. 2024

나의 시간은

하늘을 쉽게 보던 나의 시간은 끝이 났다. 오늘 나는 시력을 잃는다. 시력을 잃는 날이면 나는 꼼짝없이 집에 있어야 한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침대 옆에서 알람 소리가 들려온다. 아침 7시라는 뜻이다. 이제 7시이니, 잠에 들 때까지 대략 16시간을 버텨야 한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눈을 슬며시 떠 봤다. 역시나 보이는 것은 없다. 신이 인심이라도 써 주는 날에는 그래도 희미한 빛줄기 정도는 볼 수 있다. 하지만, 오늘은 신이 아량을 베풀기 싫은 모양이다. 나에게 이러한 저주가 찾아온 건, 백화점에서 쇼핑을 제대로 했던 날, 맹인인 할멈이 손주를 찾는답시고 허우적대는 모습을 속으로 비웃었던 다음날부터이다. 그래, 내가 나빴다. 하지만, 누구나 속으로는 상대를 우스운 사람으로 만들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아, 물론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도 저와 같은 마음가짐을 지니고 있다면, 3일에 한 번이 아닌, 평생토록 눈이 먼 사람으로 살게끔 신이 저주의 강도를 높이셨을 테지. 나의 상태를 알고 있는 사람은 없다. 안과에 방문한들, 의사가 나를 정신과에 가 보라며 말할 게 뻔하다. 말 그대로 혼자 끙끙 앓는 셈이다. 그게 내가 내린 선택이고, 순종적인 신의 하수인으로서 기꺼이 벌을 받들겠다는 복종이다. 나는 자그마한 스타트업 회사의 평범한 직장인이다. 정확히는 3일에 한 번 병가를 제출하는 못난이 직장인이다. 사장 하나, 팀장 하나, 나를 포함한 말단 직원 둘. 내가 생각해도 나는 그다지 모나지도, 특출나지도 않은 사원이기에, 나 하나 빠진다고 해서 회사에 지장이 가는 일은 없다. 사장은 무뚝뚝한 사람이라 내게 관심이 없다. 그러나 팀장은 다르다. 그녀는 한번 내게 물은 적이 있다.


미생 씨는 정확히 어디가 아픈 거야? 하루 이틀도 아니고, 매번 병가를 쓰니 걱정돼.”


질문을 받은 당시에 나는 아마 이렇게 말했었던 것 같다.


“마음이요.”


그 뒤로도 그녀와 회사에서 눈이 마주칠 때면 제법 긴 대화를 나누었다. 우울증이니, 남성 갱년기니, 영양제를 잘 챙겨 먹으라는 둥. 고혹적인 눈을 가진 여자가 내게 그런 관심을 보이니, 동료 이상의 관계를 생각했다. 아마도 조만간 말해 버릴지도 모르겠다. 믿기지 않겠지만, 나는 3일에 한 번 시력을 잃는 사람이라고. 만약에 그녀가 나의 예상과는 달리 입이 가벼운 여자라면, 혹은 보통 이하의 여자라면, 나라는 존재가 전 세계의 포털에 오르내리게 될 것이다. 특히나 종교계에선 열광을 할 테고. 어쩌면 누군가의 실험체가 될지도 모르는 일이겠지.


“이른 아침 작은 새들…”


전화가 왔다. 꽤 이른 시간인데. 3일이 되는 날이면 나는 휴대전화를 베개 아래에 넣어 놓고 잠을 청한다.


“전화 받았습니다.”


“오늘도 병가예요?”


그녀다.


“네.”


“나도 오늘 쉬는 날인데. 배가 좀 아파서.”


“아, 네. 몸조리 잘하세요.”


“와아아- 무뚝뚝하네요. 전보단 친해진 줄 알았는데.”


화제를 돌려야 한다.


“그럼, 오늘 회사엔 사장님과 성민 씨만 있겠네요.”


“그렇죠. 그 친구도 내일 아마 아프지 않을까요? 말수 없는 늙다리 사장과 9시간을 일해야 하는데.”


“미생 씨는 집이 어디예요?”


“부산 근처예요.”


“뭐라는 거야, 진짜. 누구는 부산 안 살아요? 농담 말고 어딘데요.”


“정말로 오시게요?”


“궁금한 게 있어서요.”


“뭐가 궁금하신데요?”


“집에서 혼자 뭐 하고 있는지? 양심상 회사에 아프다 해 놓고 어디 가진 않을 거 아니에요. 미생 씨는 그럴 사람도 아닌 것 같고.”


“그냥 침대에 가만히 누워 있어요. 배고프면 우유 마시고.”


“그렇게 하루를 보낸다?”


“네.”


“정말로 우울증 같은 거 아니에요?”


“전에도 말했지만…”


“주소 불러요. 미생 씨 집에 놀러나 가려니까.”


“네? 아니, 그게 정말 침대에 누워만 있다니까요?”


“그래요. 침대에 누워 있는 거 구경하러 갈게요.”


“이런 질문 정말 죄송한데…”


“흘려들을게요.”


“혹시 사장님께서 지시하셨어요?”


한 차례 한숨이 들려왔다.


“미생 씨. 내가 무슨 사장 따까리예요? 나도 늙은 사장 비위 맞춰 주느라 얼마나 마음이 고달픈데. 이건 누가 봐도 관심이잖아요!! 사적인 관심!!”


“아…, 그럼 혹시 다른 날은 안 될까요?”


“안 돼요. 마침 나도 오늘 시간이 나서 그러는 거니까. 말했잖아요. 병가 썼다고.”


팀장의 마지막 말에 나는 눈을 떠, 어둠을 바라봤다. 이 여자의 집착과 관심이 거미줄로 변하여 나의 몸을 칭칭 감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결국 누군가의 먹이로 전락하는 것인가, 하는. 이번을 거절한다면, 다음엔 독이 흐르는 굵은 쇠사슬을 가져와 나를 옥죌 테지. 나는 그날을 견딜 자신이 없다. 또한, 숨어 사는 삶 역시 이젠 지긋지긋하다. 아무래도 오늘이 날인 모양이다. 무시해선 안 되겠지. 모든 건 신의 뜻대로니까.


“…에서 내려서, …쪽으로, ……말고, 돌아 나오세요.”


“잠깐만. 그렇게 말하면 어떻게 찾아가. 문자 찍어요. 택시 타고 갈게.”


“문자는 좀 곤란해요.”


“왜?”


“병가를 쓰는 게 눈 때문이라서요.”


“눈? 시력을 말하는 거예요?”


“네.”


“아- 눈이 문제였구나. 몰랐어요. 그럼, 음성 메모로 좀 남겨 줄래요?”


“굳이 누구한테 알리고 싶지 않은 이야기여서…, 지금 이 말을 하는 것도 팀장님이 처음이에요.”


“좋아요. 오늘 내가 가서 미생 씨 상태도 보고, 이거저거 도와줄게.”


그리고 팀장은 그 뒤로 ‘그랬구나, 그랬구나.’라고 혼잣말하며 나의 심리치료사라도 된 듯이 말을 이었다. 나는 전화가 끝나자마자 팀장의 번호에 주소를 남겼다. 음성 메모를 남긴 후에 몰려온 후회는 덤이었지만. 나는 모든 안 좋은 가정들을 머리에 떠올렸다. 전에 말한 매스컴, 팀장이 나에게 보일 몸짓, 말투, 이어질 상황까지. 나는 눈이 보이지 않는 날의 나의 눈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사진에 남겨 두었기에, 팀장이 적잖이 놀란 모습을 보이리란 걸 어느 정도 짐작 중이다. 하얗게 파먹힌 검은자위. 단순한 맹인의 모습이 아닌, 벌을 받고 있는 듯한 죄인의 눈동자. 놀라지 않을 이유가 없다. 나는 팔을 뻗어 이불의 모서리를 붙잡았다. 다음으로는 침대에서 내려와 슬리퍼를 신고, 손바닥으로 이불 면을 그대로 쓸며 반대쪽 이불도 가지런히 정리했다. 여기서 작은 보폭으로 일곱 걸음을 걸으면 주방이다. 그리고, 오른쪽으로 두 걸음. 냉장고. 그녀가 몇 시에 도착할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내 기억으로 내 집에 손님이 방문하는 것은 처음이니까, 나름의 노력을 하려 한다. 냉장고의 문을 여니 물이 담긴 페트병의 오돌토돌한 감촉이 느껴졌다. 나는 뚜껑을 열어 물이 맞는지 확인했고, 이어서 바로 옆에 놓인 포트에 물을 부었다. 스위치를 내리고서 나는 가만히 기다렸다. 손잡이에서 손을 떼면 안 된다. 이제부터는 내가 걸어가 보지 않은 길을 가야 한다. 나는 딸깍 소리가 난 포트를 왼손에 쥔 채 천천히, 그리고 느리게, 찻장을 더듬어 나갔다. 시간이 꽤 걸렸다. 잔의 종류가 같은지를 확인해야 했고, 두 개의 잔이 모두 깨끗한 상태인지 냄새를 맡아야 했다. 당연히 설거지를 끝마친 잔들을 찻장에 보관하지만, 만에 하나란 게 있으니까.


“여기쯤인데.”


한참을 유지한 까치발에 발목이 후들거렸다. 그리고 마침내 녀석이 들어 있는 종이 상자가 손끝에 닿았다. 뚜껑을 여니 시원 향긋한 향기가 올라오는 게 틀림없이 메리골드다. 나는 두 송이의 꽃잎을 집어, 각각의 컵에 집어넣었다. 기다림의 시간이다.


‘째깍, 째깍….’


집에 있는 시계의 초침이 귀를 간지럽혔다. 이제 저것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다. 내면 깊은 곳으로부터 두려움과 초조함을 끌어올리는 지렛대다. 느껴졌다. 서서히, 아주 서서히, 검고, 동그란 내면의 그을음이 위와 식도를 타고 올라오는 것이. 적어도 2초에 한 번은 침을 삼키는 것 같았다. 나는 고뇌했다. 내게 남은 시간이 얼마일까. 또, 팀장과 함께할 시간 뒤에 찾아올 미래는 무엇일까. 이 초대가 내 인생 최악의 선택이 되는 건 아닐까. 뭘 생각하든 마지막은 비극이었다. 그러는 사이, 잠자코 있던 복도에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여자 구두 소리다. 나는 찻잔에 손을 대, 온기를 머금고 있는지 확인했다. 미지근하지는 않았다. 다음으로 나는 균형을 잡아 봤다. 썩 나쁘지 않은 느낌이다. 나는 그 길로 싱크대 옆에 있을 가벽을 향해 안기듯 쓰러졌다. 가벽이 오른 가슴과 귀에 딱 맞춰 들어왔다. 여기까지의 길이 이다지도 쉬운 것이었던가. 구두 소리는 정확히 내 집 앞에서 멈춰 섰다. 그때의 나는 가벽을 붙잡고, 현관 쪽으로 몸을 돌리는 중이었다.


‘따르르릉.’


나는 벽에서 손을 떼지 않은 채 대답했다.


“네.”


“저예요!”


“아,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잠시 기다려 달라는 말. 그 뒤로 나는 멈추지 않고 몸을 움직였지만, 세상 우스운 대답이었다고 속으로 생각했다.


“이제 현관에 도착했어요.”


팀장의 목소리가 복도를 울렸다.


“천천히 해요!”


손가락에 문고리가 걸렸다.


“어머, 실례합니다-”


문이 열림과 동시에 좋은 향수 냄새가 났다.


“미생 씨, 나보다 깨끗하게 사네.”


“노총각 사는 집이 다 이렇죠, 뭐.”


“그런가? 난 남자 혼자 사는 집에 처음 와 보는 거라서.”


“이거 어디에 놓을까?”


“빈손으로 오시지.”


“괜찮아. 가벼운 거야.”


이쯤 되면 물을 법도 한데 어째서 질문이 날아오지 않는 걸까. 감은 내 눈을 뻔히 봤을 텐데도.


“여기 앉으면 돼?”


“네, 어디든 편하신 데 앉으시면 돼요.”


그에 팀장이 말했다.


“미생 씨는 상냥하네. 차도 준비해 주고.”


“죄송한데…, 좀 가져다 드실래요? 말씀드렸다시피 제가 눈이 좀 그래서.”


“문제없어!”


팀장이 의자에서 일어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연이어 잔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그녀는 두 개의 잔 모두를 쥔 것 같다.


“자.”


나는 손을 덜덜 떨며 허공에서 팔을 휘적였다. 그러다 문득, 가녀리고 기다란 손가락이 나의 손을 감싸 왔다. 따뜻하고, 푸근한 손을 가진 사람이었구나. 속에서 올라오던 그을음이 아래로 내려가는 게 느껴졌다. 이렇게만 흘러가면 내가 생각하던 최악은 없던 미래로 점철되는 것이 아닐까.


“음! 맛있네.”


“괜찮죠?”


“응. 이거 어디서 산 거야?”


“전에 멕시코에 갔을 때 사둔 거예요. 향기도 향기지만, 눈에 특히 좋다고 해서 왕창 사 왔어요.”


“그렇구나- 향도 좋은데, 뭔가 아련한 달콤함이 느껴져.”


“아련한 달콤함이 뭐죠?”


“달콤함이 아련하다고. 뭐야, 미생 씨. 운치 없는 사람이었어? 여자가 이런 말을 하면 감탄을 보여야지.”


“팀장님이 회사에서 여간 깐깐하셔야죠. 사실, 오늘 아침에 전화 받고 놀랐어요. 게다가 저를 위해 연차까지 쓰시고.”


“미생 씨 때문에 연차 쓴 거 아닌데? 그냥 오늘따라 생리통이 심해서 쓴 거야. 앞서나가지 마.”


“제 집까지 찾아온 걸 보면, 앞서나가지 않을 수가 없는데요.”


앞이 보이지 않지만, 팀장이 그윽한 미소를 몰래 훔치고 있다는 걸 나는 알 수 있었다. 나는 뭘 해야 할지 몰라, 찻잔을 들고 가만히 서 있었다. 그리고, 팀장의 인기척을 놓치려는 무렵, 말소리가 들려왔다.


“담배 피워도 돼?”


“피우세요. 공기 순환기 있어서 괜찮아요. 저 또한 흡연자이기도 하고.”


“고마워.”


‘핑-’


“듀퐁 쓰시네요?”


“응. 보너스 모아서 하나 질렀지, 뭐야. 고르는 데 두 시간이나 걸렸어. 클래식 모델이랑 이거저거 있었는데, 난 그냥 소리 큰 게 맘에 들더라고.”


그리고 팀장이 말했다.


“한 대 피울래?”


“캡슐은 안 피워요.”


“캡슐 아니야. 아로마 향이 배어 있어서 그래.”


“무슨 담배인데요?”


“다비도프 블루.”


“아, 뭔지 알아요. 영화에 자주 나오잖아요, 그거.”


“그래? 난 영화를 잘 안 봐서.”


“아무튼 영화계에선 유명한 담배예요.”


팀장은 콧소리를 내더니 나의 손에 한 개비를 쥐여 주었다. 한 모금. 나쁘지 않다.


“눈은 심각한 거야?”


“이제야 물어보는 거예요?”


“적기라고 생각했어. 차도 대접 받았겠다. 담배도 나눴겠다. 사실 처음부터 궁금하긴 했는데, 계속 눈을 감고 있길래 나도 모르게 조심스러워져 버려서.”


“내일이면 멀쩡해져요. 오늘 하루가 문제인 거지.”


“병명이 뭔데?”


“벌이요.”


“벌?”


“여하튼 벌이라고 생각해요.”


“한번 보자. 눈 떠 봐.”


“됐어요.”


“아니, 그냥 보기만 할게. 그 뒤론 입 다무는 걸로. 약속해.”


여기구나. 신이 이 여자를 초대한 이유가 담긴 단락이.


“놀랄 텐데, 괜찮겠어요?”


“어. 아무 내색 안 해. 진심이야.”


나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들숨에서 서늘한 공기가 느껴졌다. 따뜻한 방임에도 서늘함이 느껴진다는 건, 아마도 내 감정이 저 바닥 깊숙한 곳에서부터 공포를 마주하고 있다는 뜻이겠지. 나는 숨을 최대한 폐에 머금은 뒤에 천천히 뱉어냈다. 숨이 곧장 나의 얼굴로 튕겨 나오는 걸 보니, 팀장이 코앞까지 다가와 있는 모양이다. 내가 이 여자에게 눈을 보여 줄 결심을 한 것은 절대 한 인간을 향한 신뢰 때문이 아니다.


해방, 해방을 위해서다.


“…….”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눈앞은 언제나처럼 칠흑과 같았고. 팀장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정말로 나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 걸까. 그게 아니면 목소리조차 내지 못할 만큼 놀란 나머지,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는 걸까. 나는 몹시나 궁금했다. 팀장보다 먼저 입을 열어, 내 사연을 몽땅 쏟아 내고 싶었다. 그와 같은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 차, 의미 없는 두통이 느껴질 때쯤 팀장이 입을 열었다.


“하얀색 눈동자도 아름답네.”


“아름답다고요?”


“응. 조금 가여운 사람처럼 보이긴 하지만.”


“그게 다예요?”


“뭐가?”


“감상.”


“어.”


“왜 묻지 않으세요?”


“내가 뭘 물어야 하는데?”


“언제, 왜, 무엇 때문에 이렇게 된 건지. 물을 게 너무도 많은걸요.”


“내가 그걸 안다고 한들, 미생 씨의 눈을 고쳐 줄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 그렇지 않아?”


“몰랐어요. 그렇게 계산적인 사람이신 줄.”


“난 내가 할 수 있는 데까지만 하는 사람이야. 나머지는 하늘에 맡겨. 원래 인생이 그렇더라고. 나만 불행한 줄 알았는데, 하나같이 가까이에서 보면 왜들 그리 불쌍한지. 미생 씨는 이런 생각해 본 적 없어?”


“당연히 있죠.”


“그래- 나도 그런 거야. 그러니까 내 태도에 너무 상처받지 마.”


상처라니. 나는 감사를 느꼈는데.


“전혀 상처받지 않았어요.”


그리고 나는 다 피운 담배를 싱크대 쪽으로 튕겼다.


“골인이야. 정확히 안으로 들어갔어.”


팀장이 말했다.


“눈, 감아도 될까요?”


나는 뜸을 들여 말했다.


“맘대로 해- 자기 눈 자기 마음대로 하는 거지-”


“고마워요.”


“뭐가?”


“여러모로요.”


“걱정했구나?”


따뜻한 콧바람과 함께 립스틱 향기가 났다.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죄인의 눈을 감춘 채 그녀의 입술을 받아들이는 거겠지. 나는 말없이 고개를 앞으로 살짝 내밀었다. 촉촉한 앵두를 입에 넣은 것 같다. 여자와의 첫 키스는 어설픈 게 당연한 건데, 팀장과의 키스는 오래도록 사귄 여자처럼 능숙하게 흘러갔다. 나는 입술에 들어간 힘을 풀어, 혀를 살며시 꺼냈다. 유연하고 매끈한 느낌이 기분 좋게 들어온다. 그 뒤로 나는 칼을 핥는 늑대처럼 정신을 놓고서 그녀의 입술을 탐했다.


“오늘은 봐주세요.”


바지 속으로 들어오는 팀장의 손을 붙잡으며 나는 말했다.


“못 멈춰.”


“제발요.”


“안 돼.”


“불공평해요.”


“속박 플레이한다고 생각해. 짜릿하잖아?”


“아프다면서요?”


팀장은 킥하고 웃었다.


“뻥인데, 그거.”


“너무하시네요.”


기어코 팀장은 내 바지를 벗겼다. 내 것을 붙잡은 그녀의 손과 입술이 닿을 때마다 나는 감전이 된 것처럼 소름이 돋았다. 처음엔 그저 색다른 흥분감에 이끌려 취한 듯 몸을 맡겼지만, 그녀의 혀 놀림이 격렬해질수록 나는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는 걸 무의식으로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하였다.


“팀장님.”


“응?”


“저 못 버티겠어요.”


“괜찮아, 싸도 돼.”


“아뇨. 그런 게 아니라…, 무서워요.”


“아, 정말? 힘들어?”


“네.”


그제야 팀장은 내 물건에서 손과 입을 떼어 냈다. 나는 크게 숨을 내쉬며 차올라 있는 감정을 천천히 흩뜨렸다.


“진작 말하지.”


“기분 좋았거든요.”


그에 팀장은 내 것을 손으로 콱 붙들며 말했다.


“좋았어?”


나는 서둘러 바지를 추슬렀다. 어디가 앞이고 어디가 뒤인지 도통 감이 잡히지 않았지만, 모쪼록 바지를 올리는 데까지는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오른쪽에서 입을 헹구는 소리가 들려왔다.


“좀 어때?”


팀장이 물었다.


“아직은 심장이 터질 것 같아요.”


“그건 나도 마찬가진데?”


“아…”


“미생 씨, 나 오늘 자고 가도 돼?”


“마음대로 하세요. 현관 번호도 이따 적어 드릴게요.”


“날 너무 믿는 거 아니야?”


“죽을 때까지만 믿어 보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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