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화 씨.”
사장이 팀장을 불렀다.
“이거 출판사에서 컨택이 왔는데 한번 볼래요?”
“출판사요?”
“쭉 봤는데 이상한 데는 아니에요. 이쪽도 우리랑 같은 신생이야. 특이한 게 있다면 출판사라는 점이고.”
“출판사가 우리에게서 공급받을 게 뭐가 있죠?”
“글쎄. 일단 메일을 보내 놨는데, 아직 답장은 없어요.”
“전화가 빠르지 않을까요?”
“오늘 오전부터 했어요. 아마 스무 통은 넘었을 거야. 보니까 완전 병아리 출판사 같은데, 아직 서툴러서 그런 거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어요. 앞으로 협업하게 되면 이런 일은 없도록 해야겠지.”
“우리 사장님, 급하셨나 보네요?”
“당장에 우리도 발 걸칠 데가 필요하니까요. 게다가 출판사면 등쳐먹을 사람들은 아닐 테니.”
“어머, 그건 모르는 말씀이세요. 출판사도 사람이 모인 집단에 불과한걸요.”
“일단 나는 잠시 나갔다가 들어올 테니 이쪽에 계속 연락을 넣어 봐요. 답장 오면 곧장 내게 연락하고.”
“네, 알겠습니다.”
팀장은 사장의 뒤통수에 대고 인사를 한 뒤, 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의자를 빙그르르 돌리며 나를 불렀다.
“미생 씨.”
“네.”
“사장님이 보낸 메일 그대로 전달해 줄 테니까 이쪽은 미생 씨가 좀 맡아 줄래요? 나는 따로 할 일이 있어서. 성민 씨도 그렇고.”
“주세요.”
“아, 그러고 보니 미생 씨 예전에 글 썼다고 하지 않았나?”
“아직 세상 물정 모르던 코흘리개 시절에 잠시 했을 뿐이에요.”
“그럼, 출판사 쪽 시장도 잘 알겠네.”
“거기는 뭐, 망한 거나 다름없죠. 지금 같은 시대엔 더더욱.”
그에 팀장이 의자를 뒤로 빼며 물었다.
“왜?”
“책 읽는 사람이 없잖아요. 말마따나 신문도 안 읽는 나라인데.”
“난 신문 읽어. 아침마다.”
“제가 장담컨대 이 동네 사람들 다 합쳐도 열 부 안 될걸요.”
“부탁 좀 할게요-”
메일을 열어 보니 정말 신생 출판사였다. 세 굴레 출판사라…, 이름이 특이하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주소지를 재빨리 택시 도착지에 등록했다. 다음으로는 회사 꼭대기에 앉아 있는 우두머리들을 검색.
대표자명. 이건희, 변용찬.
공동 운영이었다. 친구? 학교 선후배? 뭐, 뭐가 됐든 연결만 시키면 되니 저 둘의 사이 따위는 내 알 바가 아니다. 그러나 샤프한 내 직감이, 오래전 습작의 기억이, 내가 어떤 길로 가야 하는지 말해 주고 있었다. 고전 명작 ET에서도 설명해 주지 않았던가. 접촉은 직접적으로 하여야 비로소 그 진가가 진정으로 드러나는 것이라고. 나는 팀장이 일에 집중하는 사이, 조용히 컴퓨터를 끄고, 슬리퍼에서 구두로 발을 옮겼다. 그녀는 워낙에 철칙을 중요시하는 사람인지라, 지금 나의 급발진을 이해하지 못할 게 뻔하다. 조급하다고 생각하거나, 급진적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속기사와도 같은 성민의 타자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팀장을 흘겨봤다. 그리고, 성민의 손이 문뜩 멈추는 그 찰나의 순간, 가죽가방 손잡이를 번쩍 들며 크게 말했다.
“나갔다 오겠습니다!”
성민의 침묵은 예상했고, 팀장의 ‘어디가!!!’라는 고함은 예상하지 못했다. 엘리베이터를 닫으니 웃음이 났다. 휴대전화에 진동이 울리는 걸 보니, 기사가 도착한 모양이었다. 1층에 내려와 보니, 오피스텔 깊숙이도 들어와 있었다. 나는 손을 들었고, 기사는 나를 힐끔 보더니 비상등을 껐다. 차에 오르자, 기사가 대뜸 나를 보며 물었다.
“택시비 봤어요?”
“네?”
“28,000원이 나오더라고.”
나는 그제야 전화기의 액정을 켜, 결제내역을 확인했다.
“괜찮습니다.”
“내비 따라 가면 되죠?”
“네.”
기사는 말이 없는 사람이었다. 거울을 보니 인상이 좋았다. 적어도 지난번 택시에서 들었던 꼰대의 반말이나, 초록색 물병을 마시는 꼴은 보지 않아도 될 것 같아 안도감이 들었다. 대교를 지나고, 뒤이어 부산대 명판이 보였다. 돈이 없어서 못 간 대학…, 은 아니고. 공부를 지독하게 못 했었다. 서른 중반을 바라보는 지금도 그때를 가끔 회상하곤 한다. 눈이 멀기 시작하고부터는 더욱 그랬다. 왜인지는 몰라도 미래보다는 과거가 떠올랐다. 등록금을 내고 일주일 뒤, 자퇴서를 낼 때 들었던 말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여자였는데, 웃는 상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우리 대학이 그렇게 마음에 안 들어요?’
그때는 어려서 그냥 웃고 말았지만, 지금에 그 말을 들으면 이렇게 대답할 것 같다.
‘학비만 더럽게 비싸고, 애새끼들은 죄다 병신들이고, 교수는 공무원 안 할 거면 때려치우라고 해서요.’
50분이 지나고, 출판사로 보이는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외관은 예쁜 카페를 보는 듯했다.
“감사합니다.”
기사가 내 말에 작게 대답했다.
“조심히 가세요.”
나는 품에서 명함 지갑을 꺼내, 손에 쥐고서 건물로 걸어갔다. 가까이에서 본 첫 느낌은 ‘나도 이런 곳에서 일하고 싶다.’였다. 문을 열자, 사람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저들 사이로 말을 건넬 수 있을까. 나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벽에다 대고 노크했다. 다행히 한 번에 누군가가 나를 발견해 주었다. 동네 미용실에서 볶은 듯한 머리와 귀여운 안경을 끼고 있는 여자였다. 그녀의 눈에 나는 불청객이었던 모양이다.
“뭐예요?”
나는 대답 대신 회사 명함을 그녀에게 건넸다. 긴장을 했는지 두 장이 딸려 갔지만, 그녀는 둘 모두를 가져갔다.
“아! 안녕하세요!”
나는 속으로 다행이라고 속삭이며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이렇게 바쁘신 줄 알았으면 다음을 기약하는 건데.”
“아녜요! 그렇지 않아도 오전에 전화가 울리는 걸 들었어요. 선생님 회사 맞죠? 지금 저희 꼬라지가, 아니, 상태가 이래서 받을 수가 없었네요. 죄송해요.”
그리고 그녀는 상자를 내려놓고서 내게 손을 내밀었다.
“조성희입니다. 편집자고요.”
“반갑습니다.”
“편집자는 저 포함해서 총 4명이에요. 편집장님은 지금 발품 팔러 나가셨고. 대충 이야기 들으셔서 아시겠지만, 저희가 지금 공장이 좀 필요하거든요.”
전혀 못 들은 이야기인데.
“공장이요?”
“네네. 책 찍어 낼 공장.”
“어…, 번지수를 잘못 찾으신 것 같은데. 저희는 작은 부지를 가지고 있을 뿐이지 공장을 가지고 있진 않거든요.”
“알고 있어요! 거기에 출판 공장을 좀 만들고 싶어서요.”
“그것보다 전문으로 책을 찍어 내는 공장을 수선하는 게 빠르지 않나요?”
“비용이 문제죠, 뭐. 이거 다 대출이에요. 확실한 건, 저를 포함한 여기 모두가 종이책에 진심이라는 거?”
“실례지만, 예산은 가지고 계시는지…”
“네. 꽉 채워서 대출받아 놓으셨어요. 저희 편집장님이.”
“편집장님은 언제 돌아오시나요? 그분하고 이야기를 해 봐야 할 것 같은데.”
성희는 손목을 내려다보고는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어……”
“오늘이 아니어도 괜찮아요. 다음에 또 방문하면 되니까.”
그리고 나는 덧붙였다.
“택시비 28,000원만 보태 주신다면.”
“택시요? 여기까지 택시 타고 오셨어요?”
“그렇게 됐어요. 좀 급하게 오느라고요. 이럴 줄 알았으면 차를 몰고 와도 됐을 뻔했네요.”
“잠시만요. 제가 지금 현금이…”
“아뇨, 아뇨. 농담이에요. 오늘 안에는 오시죠?”
“글쎄요. 워낙에 열정적인 분이라서. 어디까지 찍고 오실지 모르겠네요. 일단 잠시 앉아 계실래요?”
“네.”
“커피? 물?”
“괜찮습니다.”
“진짜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제가 금방 전화 때리고, 아니, 전화하고 말씀드릴게요.”
“천천히 하세요. 저는 없다고 생각하시고.”
성희는 내려놓은 상자를 집어 들고는 부리나케 고개를 꾸벅였다. 기다리는 동안 나는 내부를 구경했다. 가만히 있어도 기가 빨리는 우리 회사에 비하면 정말이지 알록달록했다. 아이들의 놀이터만 같달까. 늘 거절 메일만 받았던 ‘출판사’라는 곳을 천천히 음미해 나가다 보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나의 청춘이 담겨 있는 곳. 서점에 들어설 때와 같은 냄새가 피어나는 곳. 여기저기 있는 꾀죄죄한 택배들은 아마도 누군가의 투고작들이겠지. 나는 피식 웃음이 났다. 나의 청춘은 저렇게까지 절실했었던가. 신생 출판사까지 알아보며 내 습작을 아껴 주었었나. 아니. 나는 늘 큰물에서 놀고 싶어 했었다. 내 글은 언제나 서점에 전시된 베스트셀러를 젖힐 최고의 글이고, 출간만 하면 성공할 거란 확신을 품고 있었으니. 그런 허상을 가지고 매일 글을 끄적거렸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사람들 사이에 자연스레 뒤섞이어 홀로 춤을 추듯 빙글빙글 돌았다. 아무도 내게 눈치 주지 않았다. 나는 출판사의 문을 열고 들어온 한 마리의 나비였으며, 이리저리 눈길을 갈망하는 과거의 시간이었다. 나비는 멈출 줄 몰랐고, 계속해서 빙글빙글 돌았다. 그러다 얼마 지나지 않아, 투명한 유리판 위에 살포시 몸을 앉혔다.
“이건 뭐예요?”
나는 성희에게 물었다.
“아! 그거 비싼 건데.”
“안 건드릴게요.”
“그거, 그거예요. 그…, 오타 검열할 때 쓰는 장비.”
“제대로네요.”
성희는 안경을 매만지며 대답했다.
“그럼요. 저희 절대 대기업에 뒤처지지 않을 거거든요. 저기도 보세요. 벌써 투고하는 사람들이 넘쳐나요!”
“그렇지 않아도 봤어요. 옛 생각이 나더라고요.”
“어? 뭐야, 미생 씨도 글쟁이였어요?”
“그런 건 아니고요. 젊은 날의 객기 같은…”
“장르가 뭔데요? 소설? 에세이? 시? 자기 계발?! 경제 경영?!!”
“소설요.”
“우와. 우와와. 어떤 책이었는데요? 주제는? 쪽수는? 출간은 했어요?”
“‘식물인간’이라는 제목의 소설이었는데, 출간은 못 했어요. 워낙에 글이 쓰레기여서.”
그때, 성희가 물었다.
“원고 가지고 있으세요?”
“그걸 어떻게 버리겠어요. 그래 봬도 제 이십 대가 담겨 있는 녀석인데.”
“혹시 한번 볼 수 있을까요? 제가 가지치기 전문이거든요. 단락도 깔끔하게 잘 나누고. 그리고 저기 뿔테안경 끼고 있는 막내가 디자이너인데, 책 디자인을 아주 기깔나게, 아니, 예쁘게 잘해요.”
“아니요. 신생 출판사에 그런 누를 끼치긴 싫어요. 말씀드렸잖아요. 쓰레기 소설이라고.”
“아뇨! 그건 어디까지나 옛날 일이죠! 지금 보면 느낌이 또 다를걸요? 돕고 싶어서 그래요! 상상해 보세요! 젊을 때 심어 놓은 글이 세월이 무르익어 책으로 변하는 것을!”
“제 글은…”
“일단 볼게요! 보고, 그때 말해요!”
제대로 걸린 기분이 들었다. 혼자 앞서나가고, 혼자 부풀리고, 혼자 신이 나서는, 끝에 가서 혼자 지쳐 버리는. 그런 여자에게.
“알겠습니다. 한번 찾아볼게요.”
나는 마지못해 대답했다.
“근데 너무 기대하지 마세요. 정말 쓰레기거든요.”
성희는 활짝 웃으며 금가루를 손에 쥔 듯이 껑충 뛰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 한 명의 이방인이 되어, 구석 쪽 의자에서 가만히 숨을 쉬었다. 출판사의 소음은 전혀 거슬리지 않았다. 오가는 말들도 그랬다. 그러던 나는 어느 순간 잠에 들었다. 짧은 꿈에서 나는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데, 그의 말소리가 점점 줄어들더니 완전히 들리지 않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가슴이 철렁했다. 꿈속에서 나는 생각했다. 눈 다음으로는 귀가 머는 거구나. 그래, 내 생각이 짧았어. 눈에 국한된 저주가 아니었던 거야. 귀 다음은 어디지? 귀가 멀면, 눈은? 아니, 눈과 귀가 같이 머는 거라면? 그 뒤로도 또 다른 결핍이 찾아오는 거라면? 그 무렵부터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저 몸이 축축하다는 것과 목젖까지 공포가 차올라 있다는 점. 둘을 번갈아 느끼며 나는 극한까지 내몰렸다. 그리고 더 이상 몸이 버틸 수 없다고 소리를 지르려는 무렵, 다수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어왔다.
“미생 씨! 미생 씨!!”
“에구- 많이 피곤하셨나 보네.”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눈을 뜨니 정글과도 같은 빽빽한 수염이 입 앞에 다가와 있었다. 본능이었다. 나는 눈앞의 털을 강하게 밀었고, 수염은 금세 바닥에 널브러졌다. 문제는…
“편집장님!”
일 중이던 직원들 모두가 순식간에 나와 그의 주위를 둘러쌌다. 그리고 나는 분명하고, 선명한 목소리로 말했다.
“좆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