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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영강 Nov 10. 2024

파스타

“미생 씨 오셨습니다-”


직원 카드를 찍자마자 팀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팀장을 보기에 앞서 사장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는 돋보기를 무척이나 내려쓰는데, 그 때문에 눈동자가 안경테에 가려 눈빛이 여간 무섭게 보이는 것이 아니었다. 사장이 나를 보며 고개를 까딱거렸다. 그를 본 나는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나는 가방을 책상에 놓으며 팀장의 눈치를 살폈다.


“3일 병가맨치고는 너무 늦게 출근한 거 아니에요?”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남들보다 한 시간 일찍 출근하도록 해요.”


“네, 알겠습니다.”


나는 가죽가방의 지퍼를 차례로 열었다. 제트스트림 3색 볼펜을 먼저 꺼내고, 몽블랑 연락처 수첩을 꺼내고, 인공눈물을 꺼내고, 마지막으로 브랜드 이름이 지워진 보조배터리를 꺼냈다. 그리고 나는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한 움큼의 수분도 남아 있지 않은 가습기를 정수기로 데려갔다.


“미생 씨.”


팀장이 날 불렀다.


“간 김에 나 커피 한 잔만.”


“설탕 넣어 드려요?”


“설탕?”


“죄송합니다.”


커피를 가져가니 팀장의 얇실한 손동작이 나를 반겼다. 나는 책상에 잔을 살포시 놓으며 지시를 기다렸다.


“물이 많은 것 같네요, 미생 씨?”


“아니요, 보통 때와 다르지 않습니다.”


“기분 탓인가, 그럼? 뭐, 맛을 보면 알겠지.”


팀장은 김이 피어오르는 잔에 코를 가져가 냄새를 맡고는 소량을 입에 머금어 호로록 소리를 냈다. 인스턴트커피를 저렇게 마시는 사람은 지구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정량 맞네. 미안.”


“네, 그럼.”


나는 자리로 돌아와 의자에 몸을 앉혔다. 돌아온다고 표현해 봐야, 팀장 자리 바로 옆이지만.


“팀장님.”


“네-”


“혹시 여기 있던 서류철들 못 보셨어요?”


“서류? 모르겠는데? 누구 쉴 때 누가 일을 더 했나 보죠.”


어제 우리 집에 온 사람이 이 사람이 맞나.


“이따가 성민 씨 오면 감사 표하는 거 잊지 마요.”


“알겠습니다.”


“말로만 알겠다고 하지 말고, 물질적으로. 그게 예의예요.”


“예, 알겠습니다.”


팀장은 그 뒤로도 시비 아닌 시비를 내게 걸어 왔는데, 나중에 물어야 할 일이겠지만, 나는 알겠다고만 하며 그녀가 시키는 일을 착착 진행해 나갔다. 그리고 어느덧 시간이 흘러, 점심이 되었다. 우리 회사는 절대 점심을 같이 먹지 않는다. 첫 입사 때 환영회조차 없었다. 회식은 물론이다. 이토록 훌륭하게 늙은 사장이 세상 어디 있겠는가 싶다. 나는 보통 회사 오피스텔 건너편에 있는 고깃집에서 끼니를 해결하는 편이다. 적당한 반찬 수, 짜지 않은 된장찌개, 친절한 미소를 곁들인 이모님까지. 완벽한 집이다.


“식사하고 오시죠, 사장님.”


무심한 말투가 날아왔다.


“먹고 오세요.”


“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팀장의 목소리가 울렸다.


“저도 다녀올게요.”


팀장의 구두 소리가 등 뒤에서 그림자처럼 따라왔다. 내 예상이 맞는다면 저 구두 소리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나를 덮칠 것이다.


“미생 씨.”


“네, 팀장님.”


“오늘은 말 잘 듣네?”


“원래도 말은 잘 들었던 것 같은데요.”


“어제는 말 안 들었잖아.”


“그건 다른 말 아닌가요.”


“같은 말인데, 미생 씨가 너무 빠진 거야.”


“제가 어디에 빠졌나요?"


그리고 팀장은 주변을 살피지도 않고서 내 뺨에 키스했다.


“나한테.”


나는 뺨을 닦지 않으며 말했다.


“누가 보면 어떡하시려고.”


“안 걸려. 사장은 맨날 마누라가 주는 도시락 먹고, 성민 씨는 오늘 늦게 출근한다고 하니까. 내가 그렇게 생각 없이 들이대는 사람 같아? 안 그래-”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우리는 숨 쉴 새도 없이 서로의 입술을 과격하게 물어뜯었다. 누군가 우리의 모습을 보았더라면, 아마도 포르노를 촬영 중인 배우들로 알았을 게 분명하다. 그렇게 우리는 1층에 도착할 때까지 혀를 섞었고, 문이 열릴 때는 아무 일도 없었던 사람인 듯 한 손으로 입술을 슬며시 닦을 뿐이었다.


“뭐 먹을래?”


“저는 늘 가는 식당이 있어요.”


그에 팀장은 손가락으로 길 건너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 집이지?”


“네, 맞아요.”


“지겹지도 않아?”


“이제는 맛으로 먹는다기보다 정에 가깝죠. 귀찮게 다른 음식점을 찾아가기도 귀찮고.”


“그 기분 뭔지 알아. 하루라도 거르면 왠지 친절하던 사람들이 차갑게 변할 것 같은, 그런 거 맞지?”


“정확해요.”


“나는 실제로 겪어 봤어. 요 골목 뒤에 3년간 가던 백반집이 있었거든? 사정이 있어서 한 달쯤 못 가게 됐는데, 글쎄. 알바생 하나 바뀌었다고 나를 완전 처음 보는 사람처럼 대하는 거야. 나는 나 나름대로 내적 친밀감을 엄청나게 쌓아 놓았다고 생각했었는데 말이지. 그런 거 보면 사람 참 간사해. 그 식당을 깎아내리는 건 아니고, 정말이지 사람 속내를 모르겠달까. 그럼, 그 3년간의 친절은 뭐였던 거지? 하는. 내가 별난 거야?”


“아뇨. 충분히 이해해요. 팀장님이 별난 것도 아니고요. 그래서 저는 애초에 오래 다니겠다 싶은 곳은 처음부터 벽을 쌓아 버려요. 조금도 친해질 생각을 안 하는 거죠. 결국엔 혼자 상처받을 걸 아니까.”


“그래- 네가 똑똑하다. 내가 너무 외롭나 봐. 못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어 하는 걸 보면.”


“3년간 다닌 곳을 못났다고 하면 안 되죠.”


“아니…, 뭐, 딱히 그곳을 지정해서 이야기하는 건 아니고.”


“저희 그러면 오늘은 멀리 가 볼래요?”


“어디?”


“한 20분 거리 떨어진 곳?”


“점심시간 맞추려면 10분 안에 다 먹어야 하는데?”


팀장의 말에 나는 웃으며 덧붙였다.


“자신 없으면 말고요.”


“빨리 먹기라면 자신 있어. 얕보지 마.”


“오케이. 정해졌네요.”


“누구 차로 가. 내 차? 네 차?”


“운전도 자신 있으세요?”


나는 조수석 창문을 끝까지 내려 승자의 얼굴로 바깥 풍경을 만끽했다. 썩 괜찮은 날씨다. 눈이 보이는 첫날이면 나는 가능한 자연을 보려고 노력한다. 때마침 오른 대교에서 태양을 살짝 가린 하늘이 보였는데, 이어지던 빛줄기가 구름과 함께 부서지어 여러 가닥의 실이 되는 풍경이 참으로 아름다웠다. 운전대를 잡은 팀장은 말을 하지 않았다.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분위기가 달라진 기분이 들었다. 나는 행여나 눈 이야기를 불쑥 꺼내면 어떡하나 걱정했지만, 다행히 그런 질문이 날아들진 않았다. 이런 생각을 이어가던 중, 우리는 식당에 도착했다. 굉장히 북적이는 곳이었다. 온갖 직장인들의 아지트 같았다.


“10분 안에 먹을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팀장이 안전벨트를 풀며 내게 물었다.


“무난한 건 초밥 아닐까요? 슬쩍 보니 저쪽 모퉁이에 코너가 있던데.”


“난 날것 안 먹어.”


“아…, 몰랐어요.”


“사람 혀를 씹는 것 같거든.”


“달걀이나, 고기 초밥을 먹으면 되죠.”


팀장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리고, 결심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팀장님도 결국 여자셨네요.”


나는 새하얀 파스타 면 위로 휴대전화가 떨어지기를 기도하며 말했다.


“그럼, 내가 빨았지. 네가 빨았어?”


하마터면 미친년아, 라고 소리칠 뻔했다.


“잘 먹겠습니다.”


팀장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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