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잠든 심야였다. 우람한 진동에 가지 속 숨죽여 있던 동물들이 놀라며 달아났다. 네 개의 커다란 바퀴가 울퉁불퉁한 바위를 타고 덜컹거리며 떨어질 때마다 그 아래로 숨지 못한 나무뿌리들이 아픈 소리를 냈다. 바퀴의 앞을 비추는 양 갈래의 빛이 점점 더 촘촘한, 덤불과도 같은 곳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안자락에 파묻혀 그 빛이 아주 미약하게 보이는 때에 진동이 그쳐 들었다. 잠잠해진 이후로도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그 주변은 무섭도록 고요했다. 안쪽에서 사람들의 목소리가 피어난 것은 인공적인 노란빛이 숲의 일부분이 된 것처럼 동화되어 보이는 때였다.
“씨발. 너무 깊게 주차한 거 아니야?”
뒷좌석에 누워 다리를 찢다시피 벌린 매드가 널따란 팔을 운전석을 향해 뻗으며 항의하듯 말했다. 그에 페리는 운전대에서 손을 놓으며 신경질적으로 대꾸했다.
“그럼, 네가 운전하든가?! 내가 아직 길을 잘 모른다고 했지? 피곤하다고 내뺀 건 너야.”
강하게 나오는 페리에 매드도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더 강하게 보이려는 듯이 자신의 짧게 깎은 머리에 손을 올리며 반박했다.
“썅년이 말대꾸는. 그럴 힘 아꼈다가 노력에 써. 경험이 부족하면 연습을 하라고. 재수 좋게 지킴이가 됐다고 으스대지 말란 말이야. 민트였으면 진즉에 도착하고도 남았어.”
그 말에 페리는 왼손을 들어 강하게 핸들을 내리쳤다. 손목뼈가 조금만 옆으로 갔었더라면 클락슨 소리가 사방에 울렸을 것이다. 조수석에서 둘의 다툼을 가만히 듣고 있던 키가 입을 연 것도 그 장면이었다.
“어이, 어이. 손 조심해.”
키가 운전대에 남아 있는 페리의 오른팔을 자신의 앞으로 당기며 말했다. 그에 페리는 곧장 사과했다.
“죄송해요. 실수였어요.”
“변명을 하든, 사과를 하든 하나만 하면 덧나나?”
말을 들은 매드가 빈정거렸다. 키가 얼음장 같은 눈으로 자신을 꼬나보자, 그제야 매드는 헛기침을 하며 차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차량 위에 손을 올린 매드는 운전석을 쏘아보며, 선 상태 그대로 허리에 힘을 실어 문을 강하게 닫았다. 그의 힘에 차량이 순간 좌우로 뒤흔들렸다. 페리는 감정이 차올라 질끈 눈을 감아 버렸다.
“너무 마음 쓰지 마. 힘쓴다는 놈들 대부분은 저랬으니까.”
키는 페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다음엔 더 잘하리라 믿어. 우리도 이만 내리지.”
“네, 죄송합니다.”
매드는 트럭 뒤에 덮인 그물을 짐승처럼 걷어 내고 있었다. 트럭은 4인승이었는데, 개량을 하여 아래를 좀 더 파내고, 내려놓은 탓에 보통의 것보다 짐이 조금 더 실리는 형태였다. 여기저기 무언가의 진액이 들러붙어 있었으며, 불쾌한 냄새를 풍겼다. 타이어 또한 그들과 결을 같이 하길 바라듯이 공기가 적당히 충전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맥없어 보였다. 내연기관 차는 시티 하층민들의 상징과도 같은 물건이었다. 그들은 따로 존재하는 남루한 전용 도로 위로 차를 올려야 했고, 행여 그 사실을 숨기고서 얼룩 없는 길 한 자리에 기름방울이라도 흘리는 날에는 가더에게 끌려가 환경 보호법 교육 수려와 함께 위법에 따른 벌금형에 처해졌다. 다시 말해, 지킴이들이 절도를 일삼으러 나가는 곳은 시티의 중산층들이 머무는 구역이 아니었다. 하층민들의 구역이었다.
“이봐, 그렇게 서두르지 않아도 돼. 아직은 시간이 있어.”
키가 급하게 움직이는 매드를 향해 말했다.
“시계탑의 시간을 봤습니까?”
매드가 물었다.
“그래, 지금 길어 봐야 30분 정도 밀린 정도일 거야. 해가 뜨려면 아직 멀었어.”
그에 매드는 옆에 선 페리를 노려보며 대답했다.
“젠장. 30분이면 서둘러야 합니다. 민트 씨와 갔을 때와는 달리, 해가 길어질 시기예요.”
“호오. 네가 그렇게 계절에 밝아? 내가 다음에 마토 씨를 소개시켜 줄게. 그 사람도 너처럼 예민하니까 서로 잘 맞을 거야.”
어둠에 가려 표정이 잘 보이지 않자, 키는 내릴 때 쥐었던 램프의 불을 켜, 매드의 얼굴 앞으로 내밀었다. 그리곤 아주 능청스럽게 그 앞에서 불에 비친 매드의 얼굴을 기웃거리며 입꼬리를 올리고 내렸다. 매드는 그물의 줄을 연이어 잡는 척하다가 이내 트럭의 반대편으로 가 버렸다. 말 그대로 도망치는 꼴이었다. 매드가 어둠 뒤로 사라지자, 키가 페리를 향해 조용히 속삭였다.
“궁지에 몰릴 때면 마토를 들먹여 봐. 아주 유용하니까.”
페리는 물었다.
“이유가 있나요?”
“글쎄. 이유보단 양심의 문제일 테지.”
그에 페리가 입을 벙긋거리려는 순간, 그물 걷기를 마친 매드가 불빛 속으로 그림자를 띄워 신호했다. 키는 한 손으로 트럭 모서리를 눌러 몸을 띄운 다음, 반대편 손에 있는 램프를 짐칸의 정중앙에다 올려놓았다. 그런 다음, 모서리의 윗면을 두드리며 말했다.
“수레들 내려. 캔 하나라도 흘렸다간 내 손에 죽을 줄 알아.”
흙바닥에 내려진 세 사람의 수레는 녹이 슬었다는 것을 제외하면 바닥을 포함한 5면이 촘촘한 철망으로 이루어진 일반적인 형태였다. 키와 매드의 손이 먼저 선두에서 움직이기 시작했고, 뒤따라 페리가 느지막이 그 둘을 흉내 내듯 따라 했다. 짐칸의 주를 이루는 것은 통조림류였다. 캔은 램프의 비스듬한 면과 부닥쳐 각이 많은 아우라를 형성했다. 그곳 주위에 비치는 것만 해도 종류가 상당했다. 대부분의 것들이 조리가 안 된 생것의 곡식류였다. 소형 통조림 아래로 그 같은 몸집 네댓 개를 붙인 듯한 대형 통조림의 머리가 보였다.
“이런, 젠장!”
긴 모서리 맞은편에 있던 키의 그림자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중앙의 램프가 사라진 순간, 셋의 손은 자연히 멈췄고, 키는 소리를 지른 매드의 옆으로 어느새 건너가 그의 눈길 그대로 고개를 아래로 내려 있었다. 매드의 손에 들린 건 조금 낯선 색, 그뿐이었다.
“호들갑 떨지 마. 건어물 통조림이 뭐 어쨌다고. 묻으면 돼. 중요한 일도 아니야.”
매드는 손을 떨고 있었다. 키는 집채만 한 그의 등짝을 소리 나게 내려치며 페리의 귀엔 들리지 않을 정도의 목소리로 한마디를 건넨 뒤,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젠장.”
매드의 욕설과 함께 다시 트럭 중앙에 거미줄 같은 빛이 드리웠다. 세 사람은 없는 것과도 같은 그 한 줄기 빛에 기대어 작업을 이어 나갔다. 셋 중에서 특히 페리가 가장 힘들어했다. 빛을 보고 날아든 벌레들 때문이었다. 끊임없이 날아드는 벌레들, 특히 나방 종류에 속하는 것들이 말썽을 크게 부렸다. 흥분한 자기들끼리 부딪혀 인분을 날리기도 하고, 세 사람의 팔과 얼굴 주변부에 달라붙어 죽은 척을 하는 놈들도 있었다. 무리가 점점 늘어나자, 키가 손을 멈추고서 둘에게 말했다.
“그냥 고개를 흔들기만 해. 그리고 절대 손으로 눈을 비비지 마. 지금은 독나방이 없는 계절이지만, 그래도 병균을 흘렸을 수도 있으니까.”
“병균이요?”
페리가 질색하는 얼굴로 말했다.
“그래, 균. 지금의 시티에선 구경도 못 할 거리인가?”
그리고 키가 말을 하자마자 매드가 빈정거렸다.
“쳇. 그놈의 시티, 시티.”
한 방을 바라는 듯한 페리의 눈이 키를 향해 갔지만, 키는 넘어가 줬다. 그리고 키는 시선을 페리에게 옮기며 말했다.
“이쪽도 끝이야. 페리, 너만 남았어.”
페리의 수레는 아주 조금 공간이 남아 있었다. 매드가 정중앙의 램프를 페리의 앞으로 밀치며 말했다.
“빨리빨리 좀 해. 아니면, 벌레 무리에 둘러싸여 있는 게 기분이 좋은가 보지?”
“개소리 마. 이제 겨우 다섯 개 남았어. 말할 시간 있으면 좀 돕든가. 힘으로 뽑힌 자리면, 네가 일을 더 해야 하는 거 아니야?”
페리가 마지막 통조림을 줍자, 키가 램프를 챙겨 들며 말했다.
“이제는 가야 돼. 시간이 아슬아슬하겠어.”
길은 어둠으로 가득했고, 평지를 알아볼 수 없었다. 발을 내딛는 곳 모두 그랬다. 셋의 걸음은 일렬로 통했다. 앞장선 키가 방패 역할을 했다. 키의 수레가 휘청이면 그다음 차례인 페리는 눈치껏 발아래를 조심했다. 맨 뒤에 선 매드는 문제없었다. 그는 아래가 파이든 말든 개의치 않고, 힘으로써 둘을 뒤따랐다. 한 번, 키가 수레 위에 올려놓은 램프를 옆으로 떨어뜨렸을 때를 제외하고는 셋의 걸음이 멈추는 경우는 없었다. 무엇보다 눈이 밝은 키의 존재가 굳건했다. 세 사람의 시작지는 우측 마을 출입구 영역 중에서도 제일 윗부분, 몰래 차량을 수용하는 게 가능한 한계지점이었다. 마을의 식량창고는 추녀 자매가 머무는 12시 인근에 배치돼 있었다. 그러니까, 지킴이 셋이 움직일 거리는 마을 둘레의 5분의 1쯤 되었다. 10분이 조금 되지 않는 거리였다. 키가 마을의 출입문이 시야에 들어오자, 걸음을 멈추고는 뒤의 두 사람을 향해 말했다.
“어때.”
그에 페리는 대꾸했다.
“뭐가요?”
“저기 활짝 열린 문 말이야. 나는 참 오래도록 봤지만, 볼 때마다 뭔갈 훔치러 들어가는 기분이 들거든.”
그리고 뒷말을 이어 붙였다.
“도둑질은 이미 하고 왔는데도 말이야.”
매드는 대꾸하지 않았고, 페리는 이때의 물음을 등 뒤의 출입구의 문이 소리 나게 닫히는 걸 듣고 나서야 받았다.
“늦게라도 사람이 올라올 수 있지 않나요?”
키는 수레에서 손을 떼지 않고 그에 대답했다.
“별종이 아닌 이상, 수면제 세 알과 맞서려는 놈은 없을 거야.”
“수면제? 이곳에도 바륨이 있어요?”
“필요한가? 필요하면 몇 알 구해 주지.”
“저는 괜찮아요. 마을에서 약물 이름을 들을 줄은 몰랐거든요.”
“아, 의사가 있다고 했나요?”
“그래. 수의사긴 하지만, 인간이나 동물이나 매한가지니까 안 될 것도 없지. 내 장담하건대, 마을 내에 발정 난 수컷 중에서 가장 괜찮은 놈은 그놈이야. 자빠뜨릴 거면 그놈으로 해, 페리.”
“노력해 볼게요. 근데 조금 추악하네요. 분기별로 사람들을 억지로 재우는 거잖아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 지금껏 사람들을 속일 수 있었던 것도 약이 역할을 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보거든. 실제로 약을 탄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야.”
그리고 그때, 줄곧 대화에 끼지 않고 뒤에 서 있던 매드가 아주 조용한 목소리로 말을 내뱉었다.
“그 약에 맞서려는 놈이 있는 거 같은데요.”
매드의 그 말과 동시에 인기척을 인지한 키는 생각보다는 본능적인 행동을 먼저 내세웠다. 키는 아주 재빨랐다. 자신의 등 뒤로 페리를 밀친 키는 빠르게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붙든 램프를 높이 들어, 앞으로 내밀었다. 어두운 물체는 가만히 있었다. 램프 앞으로 눈동자 크기의 동그란 빛 조각 두 개가 불을 따라 흔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