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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영강 Aug 17. 2024

워블의 아들과 마을의 무덤 이야기

워블의 말을 들은 퓨티는 비극을 느꼈다. 그리고 그녀가 내뱉은 말이 마을의 그 무엇과도 충돌하지 않는 온전한 선이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급변하는 것은 없었다. 워블이 말을 하기 전과 같이 시간은 흘러갔다. 난간 구경을 마친 퓨티에게 워블은 미음을 나눠 주었다. 희고 검음이 적절하게 뒤섞인 죽에는 무엇인지 모를 덩어리 몇 개가 부분부분 숨어 있었다. 퓨티는 손대지 않았다. 워블도 딱히 눈치를 준다거나 하지 않았다. 이후로 식어 버린 미음처럼 영양가 없는 말들이 오갔다. 예의를 지킬 정도로만 대꾸를 하던 퓨티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워블이 본제로 들어가지 않는 것이 보다 차분하고 침착하게 자신을 덮치기 위함이라는 걸. 퓨티는 별일 아니라는 듯이 질문했다.


“…그럼, 언제부터 그만두신 거예요?”


“아이가 죽은 지 3년이 되어 갈 무렵이려나, 정말 눈이 타들어 갈 거 같은 태양과 눈이 마주친 적이 있거든요? 그때 정신이 들었죠. 나는 정말 미련한 부모구나, 라고요.”


“근데 지금도 여전히 하늘을 보시잖아요.”


“하늘을 보지만, 하늘을 보는 게 아니에요.”


워블이 웃으며 말했다.


“그럼요?”


“글쎄…, 퓨티 양은 시티 광장에 서 있을 때가 기억나요?”


“아뇨. 저는 기억이 거의 없어요. 밤이 밝다는 것만 빼고.”


그리고 퓨티는 잘못을 저지른 사람 마냥 양손을 포갰다.


“시티의 광장에는 천장마다 땅이 비치는 유리가 있어요. 이러면 또 미친년 같겠지만. 뭐, 습관이 됐나 봐요. 힘이 들 때 하늘에서 땅을 내려다보는 게.”

     

“아직도 힘드세요?”


“그럼요, 퓨티 양. 자식을 떠나보낸 부모니까요. 저는 아마 평생을 힘들어할 거예요. 하지만 이제 구름으로 아들 얼굴이나 짜 맞추진 않죠. 그건 정말 미친 짓이었어요.”


퓨티는 순간 흐릿하게 속삭이며 떠오르는 비명의 기억이 있었지만, 침울한 분위기를 이어 가기 싫어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10년이죠?”


워블이 두 눈을 힘주어 떠올리며 물었다. 자리한 내내 시체처럼 풀려 있던 눈이 처음 보이는 모습이었다. 퓨티는 지금이란 걸 대번에 알아차렸다. 퓨티는 최대한 조용히 자세를 경직되게 고쳐 앉았다. 그리고 그녀의 질문에 대답하려는 찰나, 워블이 불쑥 말했다.


“시티가 그립진 않아요?”


“…네?”


“아니다. 질문이 잘못됐네요. 퓨티 양은 시티의 기억이 거의 없다고 했으니, 반대로 시티가 궁금하지 않냐는 질문이 맞았겠어요.”


워블의 말을 들은 퓨티는 안면이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마을에서의 햇수가 쌓여 이루어진 경험이 경고하고 있었다. 보통의 순간이 아니라고, 말을 잘해야 하는 순간이라고. 퓨티의 그러한 마음이 얼굴 위로 고스란히 드러났다. 급한 상태가 지속될수록 뺨의 홍조가 짙어져 갔다. 퓨티는 이제 속으로 초까지 새기 시작했다. 그러다 중얼거리듯 외마디 말을 뱉어냈다.


“…가 보고 싶어요.”


그리고 워블이 정확히 한 음절을 빼고서 똑같이 말하였다.


“가고 싶다고요. 그래요, 저는 완전히 이해해요. 아니. 필요하다면 이유까지도 만들어 줄 수 있어요. 같은 심정이니까.”


퓨티는 워블의 바뀐 말을 못 듣지 않았다. 단지 그녀의 표현이 더욱 와닿아 반박하지 않은 것뿐이었다.


“피크 씨도 알고 계시는 일인가요?”


“반대예요. 그 사람만은 알면 안 되는 일이죠. 다른 집은 모르겠어요. 이런 말을 어떻게 받아 줄지. 중요한 건 내 가장 가까운 사람은 절대 이해해 주지 않으리란 거예요.”


“7년이나 그리워했는데 조금은 눈치채고 있지 않으실까요? 저라면 그랬을 거 같아요.”


“이런 나를 처음부터 웃음거리로 만든 사람이 그이예요. 아들을 짜 맞추던 처음 3년간, 마을 사람 모두가 알도록 소문을 낸 것도 그이고요. 자기 딴에는 그게 치료로 이어질 줄 알았나 봐요. 차라리 동정이 나았을 텐데 말이죠.”


말을 하는 워블은 그대로였다. 목소리, 몸짓, 분위기, 어디에나 말을 하기 전 사람과 동일한 모습이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퓨티는 잠시 고민했다. 본인은 어디까지를 드러내 보일 것이며, 또 어디까지를 생각할 수 있는지를. 워블이 대답을 기다리며 눈을 깜빡이고 있었다.


“…그렇죠. 피크 씨는 원체 강경하신 분이니까. 그래도 오래전과 비교하면 많이 부드러워지신 것 같아요.”


“음. 그 말은 반만 맞아요. 같이 사는 내겐 보이거든요. 매일 아침 난간으로 나와 있는 저의 뒤로 말을 걸러 올 때마다 얼마나 많은 화를 억누르고 접근하는지가 말이죠. 그래도 뭐, 처음과 비교하면 달라지긴 했어요.”


“한번 말해 보는 건 어떠세요?”


퓨티는 부탁하듯 고개를 살짝 비틀며 말했다.


“시티로 돌아가고 싶다고요? 세상에. 퓨티 양. 그럼, 아마 마을이 태어난 이후 처음으로 분가하는 부부를 볼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정말 모르고 있는 것 같아 말해 주는데, 우린 돌아갈 수 없어요. 라이선스도 없거니와 반역자로 등록까지 되어 있을 테니까.”


친절한 설명 뒤로 퓨티는 빠르게 대꾸를 이어 붙였다.


“라이선스를 위조하면요?”


그리고 퓨티는 워블이 일순 빙긋 미소를 띠어 보이자 황급히 몸을 뒤로 뺐다. 퓨티가 앉은 나무 의자의 다리가 밀리며 식탁 위로 불쾌한 소리를 올려보냈다. 그리고 워블이 말했다.


“존재에 위배돼요. 음…, 그러니까 지킴이들의 존재예요. 이것까지 말해주는 건 좋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오늘은 뭔가 이것저것 말을 잔뜩 하고 싶은 날이네요. 좋아요. 좀 더 말해 줄게요.”


퓨티는 말없이 고개를 위아래로 움직였다.


“시대가 좀 변했어요. 막연히 도망치던 우리들 이야기와는 조금 달라요. 그리고 지킴이 이름을 꺼낸 건 그들이 본인들 목숨을 걸고 마을을 지키고 있기 때문이에요. 시티엔 두 부류가 있다고 들었어요. 우리 마을을 인정하는 쪽과 무시하는 쪽, 이렇게요. 퓨티 양은 머리가 좋으니 알고 있었을 거예요. ‘센터’는 우리 마을에 대해 아무런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요. 우리를 봐주는 건 빈곤한 삶을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이에요. 참으로 역설적이죠.”


말을 끊은 워블은 눈으로 설명하듯이 주변 환경을 둘러봤다. 그리고 뒷말을 마저 이었다.


“크게 다르지 않은 삶일 텐데, 안 그래요?”


퓨티는 대답하는 데 잠시 시간이 걸렸다. 생각이 많은 것도 이유였고, 형식적 대꾸가 하고 싶지 않은 것도 이유였다.


“정말 다르지 않나요?”


말을 들은 워블이 손으로 황급히 입을 가리는 시늉을 보였다.


“어머. 내가 환상 깨는 말을 해 버렸네요. 하지만 그게 진실이에요. 같은 향수를 가진 사람끼리라도 솔직한 게 좋겠죠. 퓨티 양이 느끼는 불편함은 뭐예요? 이 마을에서요.”


그리고 워블은 1초도 기다려 주지 않았다. 물음을 건넨 뒤, 당사자 쪽이 오히려 안절부절못했다. 퓨티는 그 즉시 떠오르는 몇 가지가 있었지만, 입술을 쉬이 떼지 못한 것은 툭 하고 말할 수 있는 것보다 부끄럽게 말해야 하는 것의 가짓수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저는 밤의 불빛이 너무 보고 싶어요. 야경 보며 듣는 클래식을 그렇게 좋아했거든요. 아이의 태교도 거의 그런 식으로 했어요. 시티의 빛은 중심부로 들어갈수록 휘황찬란해지죠. 그래서 외곽에 자리한 우리 집이 마음에 들었어요. 구석진 집에서 보이는 빛은 한정적이지만, 눈 아플 일은 없거든요. 단순해서 더욱 좋죠.”


그리고 워블은 무안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아, 미안해요. 오랜만의 대화라 내가 들떴나 봐요. 혼자 너무 말이 많았죠?”


퓨티는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대답했다.


“아니요, 전혀요. 너무 재밌는걸요. 까먹었던 동화를 다시 듣는 기분이에요. 그리고 워블 씨와 제가 이렇게 대화하고 있다는 거 자체가 신기하기도 하고요.”


“말을 참 예쁘게도 하네요. 나도 덕분이에요. 늘 밝기만 하던 퓨티 양이 집 앞에서 그러고 있는 걸 보니 부르지 않을 수가 없더라고요. 사실은 그 얘기를 하려고 부른 거였어요. 무슨 기분 안 좋은 일이 있나 싶어서요.”


퓨티는 순간 눈앞이 아득해짐을 느꼈다. 그리고 또한 모르는 이야기를 듣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흐려져 있던 기억이었다. 불과 몇 시간 전의 이야기임에도 그랬다. 뿔뿔이 흩어져 있던 장면들이 신경이 곤두섬과 동시에 다시 일렬로 줄을 서고 나타났다. 그런 한편 퓨티는 속으로 생각했다. 숨길 필요도 없는 일이야.


“아시다시피 오전엔 마을이 비로 덮였었어요.”


퓨티는 머리를 헝클이며 말을 뱉어냈다. 워블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마을에 새로 들어온 사람이 있거든요. 홈 씨라고. 이름이 특이하죠?”


“아. 이름은 처음 듣지만, 알고 있어요. 얼마 전이었죠? 그이가 환영식을 해야 한다며 오후 늦게 집을 나서는 걸 봤어요.”


“네네, 맞아요. 그 자리였어요. 사람들이 많이 모인 자리였는데, 우연히 홈 씨와 단둘이 이야기를 나누게 됐어요. 저흰 서로 나이가 같은 걸 알게 됐고, 비슷한 관심사를 가지고 있단 걸 알게 되었죠. 워블 씨만큼이나 대화가 잘 되는 사람이었어요.”


그에 워블이 짧게 소리 냈다.


“어머.”


퓨티는 빙긋 웃었다가 말을 계속 이어 나갔다.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가 컸지만, 저희는 저희대로 대화를 이어 갔어요. 궁금한 게 많았던지라 목소리가 자주 부딪히긴 했지만요.”


그리고 퓨티는 다음에 뱉을 말을 머릿속으로 잘 정리했다. 최대한 워블에게 폐가 가지 않게끔 문장을 다듬고, 또 다듬었다.


“저는 시티를 물었고, 홈 씨는 마을을 궁금해했어요. …음, 그러던 중에 나온 이야기였어요.”


마지막으로 퓨티는 문장을 내뱉기 전, 워블의 얼굴을 바라봤다. 나 자신도 그랬을까, 라는 감흥을 느낄 정도로 워블의 눈은 빛나고 있었다. 망설이면 그만큼 힘들어질 걸 알았기에, 퓨티는 단숨에 말하였다.


“마을의 무덤 이야기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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