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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영강 Sep 10. 2024

인형사 작전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아. 사람 불안하게.”


가현이 전화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로 말했다. 반쯤 열린 차량 창문에서 들어오는 바람에 그녀의 긴 머리가 뒤로 휘날렸다.


“누구 때문에 그러는 거예요?”


기성은 고개를 살짝 돌려 가현에게 물었다.


“우리 집 집사요. 아, 처음 듣는 거겠구나.”


“저희가 만난 지 하루가 채 안 됐으니까요.”


“갈 길이 멀어 슬슬 졸음이 몰려오려던 참인데, 그분 이야기나 좀 들려줄 수 있어요? 자기 집이 아닌, 남의 집 일을 거드는 사람. 특별하다면 특별한 직업이잖아요.”


그 말에 가현은 열어 놓았던 창문을 마저 닫고는 휴대전화를 뒷좌석으로 휙 내던지며 대답했다.


“그럴까요? 그 사람에 관한 이야기라면 발가락 사이사이가 퉁퉁 부을 만큼이나 발에 차이는 게 많아요.”


가현은 팔짱을 끼며 몸을 기성 쪽으로 웅크렸다. 그리고 가현은 기성이 힐끗힐끗 자신을 향해 눈을 돌려오는 걸 가만히 보다, 기성의 눈길이 제자리로 돌아간 그때, 입을 열었다.


“그쪽이 아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엄마가 없어요.”


“나를 낳음과 동시에 쇼크사로 돌아가셨거든요. 그 당시 뉴스에까지 보도되었다고도 그러던데, 아무튼 저는 어머니 얼굴을 보지도 못한 거죠, 그러니까.”


“안타까운 얘기네요.”


“해서 아빠가 들여온 사람이 지금에 있는 집사예요. 그 덕에 어머니가 없는 유년 시절도 큰 외로움 없이 자랄 수 있었죠. 남들의 눈에는 특별한 것 없는 평범한 집사로 보일 뿐이겠지만, 저한테는 아니에요. 그녀의 존재가 제법 컸어요.”


“엄마 같은 존재군요.”


“맞아요. 저한테는 엄마, 아니, 그 이상을 해 준 사람이죠. 그래서 그녀가 친어머니가 아니란 걸 스스로 자각하는 때면 슬픔이 몰려오곤 해요.”


말을 잇던 가현은 하던 말을 멈추었다가, 끝맺었다.


“모순이죠.”


“어렵게도 산다. 뭣 하러 그런 쓸데없는 자각을 해서 스스로 고통을 자처해요. 그냥 인생의 인연이구나, 하고 그치면 될 일을.”


“아니에요. ‘나한테 이렇게까지 해 주는 사람이 정말 내 어머니가 아니라고?’ 이 같은 생각이 머릿속을 휘어잡는 순간이 있거든요? 말 그대로 절정이죠. 그때만큼은 저로서도 냉정을 유지하기가 어렵더라고요. 정말로…”


말을 마친 가현은 창문을 다시 반쯤 열어, 바깥 공기를 안으로 들였다. 그리고 열린 창밖으로 몸을 돌리며 말했다.


“바람을 다시 쐬어야겠어요. 열이 식으면 닫을게요. 그동안 그쪽도 표정 좀 어떻게 해요. 보기 이상하니까.”


오후의 고속도로. 차디찬 겨울바람은 계속해서 차 안으로 불어 들어왔다. 둘의 침묵은 꽤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그들은 침묵을 깰 생각이 없는 사람들처럼 행동했다. 가현의 말을 들은 이래, 기성은 그녀에게로 조금의 눈길조차 건네지 않았고, 그에게로 말을 건넸던 가현 역시 그러긴 매한가지였다. 두 사람이 올라 있는 노란색 차는 멈춤 없이 도로를 내달렸다. 둘의 침묵이 어느새 십여 분 지나가고 있었다. 가현의 오른뺨이 칼바람에 베여 붉게 물들고, 그녀에게만 매달려 있던 오한이 기성에게로 옮겨붙을 무렵, 드디어 소리가 일었다.


“춥다고 먼저 좀 말해 주면 안 돼요?”


“열 식힌다고 창문 연 사람은 그쪽 아니에요? 누가 들으면 내가 억지로 고문이라도 시킨 줄 알겠어요. 나도 얼마나 추웠는데.”


그에 가현은 조수석 위에 달린 거울을 내리며 기성을 향해 바락바락 소리쳤다.


“춥기는 개뿔이!! 새하얗거든요. 그쪽은. 나 봐요. 여기! 또 여기! 얼마나 시뻘건데. 감각이 없어요, 감각이.”


“그쪽 되게 혼자서 잘 삐치네요. 하나 알았어요.”


“삐친 게 아니라 화내는 건데요!!”


“화를 왜 내요, 화낼 일이 아닌데.”


“내 말이 맞으니까요!!!”


가현은 양손에 주먹을 꽉 쥐고서 기성의 얼굴 가까이 힘껏 고성을 퍼부었다. 기성은 늦게나마 한 손으로 오른쪽 귀를 틀어막았지만, 소리는 이미 스며든 뒤였다.


“아!! 진짜!!! 거, 예고는 좀 하고 지릅시다. 가뜩이나 운전 중인 사람한테. …아이! 저거 또 열려고 그러네. 춥다니까.”


“저거? 이야, 이젠 호칭도 아주 자기 멋대로네요?”


“아, 진짜. 미안합니다. 미안해요.”


“제대로 사과한 거 맞아요?”


“맞아요.”


“잠 다 깼죠?”


“잠이고 뭐고, 있던 건 모조리 다 깬 것 같아요.”


“잘됐네요. 이제 얼마 남았어요? 말하고픈 게 아직 더 있는데.”


“아직 좀 남았죠. 기차 탔으면 벌써 도착했을 텐데.”


“이렇게 연락이 안 될 줄은 몰랐죠. 그리고 기차는 한 번 타 봤으니 됐어요. 승차감이 별로더라고요. 답답하기만 하고.”


“그래요. 집사 얘기 계속할 거예요?”


“그럼요. 먼저 관심 보인 건 그쪽이잖아요?”


가현의 말에 기성은 한 손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그거야 그렇긴 한데…, 그럼, 뭐 달리 좀 재미난 에피소드 같은 건 없을까요? 눈물샘 자극하는 그런 계열의 이야기들 말고.”


“있어요!”


“지금 얘기는 아니고, 제가 이십 대 초중반 때의 이야기예요. 집사가 엄마 같댔죠? 진짜 그게 좋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집착처럼 느껴질 때가 있단 말이에요. 그날은 정말 반항심이 하늘 끝까지 치솟은 날이었어요. 아니, 진짜, 이십 대 중반 나이면 새벽까지 놀다가 해 뜨는 거 보고 나서야 들어가는 게 일상이잖아요?”


“그렇다고 칩시다.”


“그래서 하루는 요령을 부렸다, 이거예요.”


“어떤 요령요?”


“이름하여, 인형사 작전.”


가현은 눈을 게슴츠레 뜨고서는 검지를 세워, 허공의 세 구간을 차례로 짚어 나가며 말했다.


“작명 참…”


“저 말 그대로 대타 한 명을 고용했어요. 저와 키도 비슷하고 몸매도 비슷한 그런 친구로. 저택에 그런 사람이 있을까 싶었는데, 있더라고요.”


“그래, 찾아서 뭘 했는데요?”


“이름이 시안이었나, 그래서 물었더니 본인이 막내래요. 얼굴만 봐도 알겠더라고요. 너무 앳되어서.”


그에 기성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작게 말했다.


“월권을 저질러도 하필이면 막내를 갖다가…, 너무했다.”


“아, 월권이고 뭐고. 여하튼 간에 그러고 나서, 그날 오전에 그 애를 조용히 불렀어요. 부르니까 오더라고요.”


“당연히 오죠. 안 가면 모가진데.”


“닥치고 들어봐요. 방으로 들어오길래 딱 눈을 봤죠. 꼬드기면 넘어올 눈인 거예요. 눈망울이. 그래서 딱 힘주어 말했죠. 저택에 불이 꺼진 새벽녘, 내 방으로 들어가 침대 안에서 가만히 웅크려만 있어 달라고.”


가현의 말에 기성이 입술을 실룩였다.


“간다는 거 없이 그냥 명령할 사람은 아니잖아요? 그쪽이 또.”


“아, 당연히. 무슨 소원이든 하나는 꼭 들어주겠다고 약속했죠.”


소원이란 단어에 기성의 고개가 커진 그의 눈과 함께 오른쪽으로 돌아갔다.


“아니, 집안 막내한테 그렇게까지 해서 누릴 게 뭐가 있는데요? 집에서 빠져나간다고 했을 때 정해둔 행보가 있을 거 아니에요.”


“그걸 질문이라고 해요? 집 나가면 당연히 클럽이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답을 해 오는 가현에 기성은 틀었던 고개를 다시금 되돌리며 입술을 움직였다.


“정말이지 야무지게도 미쳤다.”


“뭐라고요?!”


기성이 한 손을 다시 오른 귀로 가져가려다가 행로를 옮겨 가현의 머리통 위로 손을 얹어 놓았다. 그러고는 그녀의 머리칼을 잔뜩 헝클어뜨리며 말했다.


“야무지게도 산다고요.”


그러자 가현은 기성의 오른손을 양팔로 겨우겨우 떼어 내며 소리쳤다.


“이런 미친! 저리 안 치워요?! 나이도 나보다 어린 게.”


기성이 물었다.


“근데, 그날 성공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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