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도 다양한 세계가 존재한다
나는 올해 마지막 요가 배움의 여정으로 인 요가 과정을 신청했다. 내게 인 요가라는 것은 막연히 정적이고, 느리고, 좀 오래 자세를 유지하는 요가였다. 사실이긴 하지만 뭔가 근본적인 것이 빠져있다란 느낌이 있었다. 그리고 항상 궁금했다. 막연히 인 요가라는 건 조용하고 차분한 느낌의 요가를 의미하는가? 그런데 나는 빈야사 요가만 했을 때보다 인 요가와 같이 수련을 했을 때 나의 몸이 훨씬 부드럽고 탄성이 생김을 몸소 체험했다.
이 신비로운 현상을 어떻게 단순히 겉으로 느끼고 바라보는 것에만 해석을 둘 수 있겠는가. 좀 더 배워보고 싶었다. 그리고 나의 요가적 배움에 더욱 깊이를 더해서 나의 주변인들에게 요가의 기쁨을 나누고 싶었다. 이러한 마음이 생겨났다. 인 요가 과정엔 인 요가 철학과 더불어 해부학적인 내용도 함께 있었기 때문에 좀 더 상세히 몸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더욱 유익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인 요가 과정을 밟기 시작했다.
세상 만물은 음과 양이 존재한다. 양이 태양이라면 음은 달, 양이 에너지가 흐르는 활기라면 음은 고요하고 정적인 흐름일 것이며 양은 따뜻하고 음은 차갑다. 음과 양의 조화를 통해 세상은 더욱 풍요롭고 살기 좋아진다. 요가에서도 음과 양이 있다. 그리고 그 음과 양은 상대적이기도 하다. 보통 사람들은 근육의 움직임을 많이 쓰고 역동적인 하타, 빈야사, 아쉬탕가 요가를 많이 수련한다. 그러나 한 동작을 몇 분이나 유지하며 가만히 있는 정적인 인 요가를 수련한다는 사람은 별로 본 적이 없다.
내가 인 요가를 처음 접했던 때는 내가 요가를 처음 접했던 때였다. 내 생애 첫 요가원에서는 빈야사도 가르쳤지만, 인 요가 시간도 많았다. 그래서 나는 여러 요가의 스타일을 두루 체험할 수 있었다. 흐름에 몸을 맡기고 동작이 수시로 바뀌는 빈야사와 달리 인 요가는 매우 평온했다. 몸을 기울이고서 5분, 10분 유지한다. 그리고 계속 호흡을 한다. 그 낯섦에 나는 쉽게 잠이 들기 일쑤였고 다른 사람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내게 인 요가란 그런 존재였다.
그리고 요가 지도자 과정을 통해 계속 수련하는 현재의 요가원에서 만난 인 요가는 왠지 모르게 전에 접했던 익숙함과 동시에 새로운 감각이 깨어나는 느낌이 들었다. 몇 분씩 한 동작을 유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움직이지 않고 자신의 몸의 변화를 직접 알아차려야 한다. 호흡을 통해. 천천히. 천천히. 들숨과 날숨 그리고 멈춤의 호흡까지도 알아차려야 한다. 그래서 어쩔 땐 빈야사 플로우보다 인 요가가 훨씬 힘들기도 했다.
아마도 이런 정적이고 고요한 분위기의 요가여서 인지 대중성이 있다고 생각이 들진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좀 더 동적인 요가를 선호하는 것도 이해가 된다. 하지만 너무나 바쁘고 수시로 바뀌는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은 너무나 빠르게 변화를 맞이하고 있고 때론 그 속도에 버겁기도 하다. 그 속에서 잠시 쉬어갈 쉼표가 되어주는 요가가 인 요가라 생각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같은 동작이라 할지라도 그 느낌은 확연히 달라진다. 불편한 감정도, 느낌도 시간이 지나면서 사라지기도 하고 그러면서 나의 몸이 더욱 이완되고 풀어짐이 느껴진다. 그리고 좀 더 깊은 동작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것을 나는 '몸의 초대'라고 인 요가 시간 때 배웠다. 우리가 억지로 그 동작을 하는 것이 아니라 몸이 우리에게 초대를 하는 것이라고. 그렇다. 우리는 그런 자연스러움의 음적인 에너지를 배울 수 있게 된다.
요가엔 다양한 요가가 존재하며 무수히 많은 세계가 존재한다. 자꾸자꾸 알면 알 수록 너무나 신비롭고 광활하여 때로는 황홀하기도, 때로는 무섭기도 하다. 점점 깊이 있게 알려고 하면 더 많은 것들이 다가온다. 이전엔 내가 알려고도 하지 않았고 알 수도 없던 것들이다. 하지만 이제 용기 있게 한 발짝씩 내디뎌본다. 이미 나의 요가적 여정은 시작했고 지도자 과정을 밟고서 지도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음과 양의 조화를 이루는 것을 통해 삶이 더욱 풍요로워지는 것처럼, 양의 빈야사 요가와 음의 인 요가를 계속 양립하며 나의 요가 수련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가겠다. 이것은 나의 다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