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람을 보는 새들과, 새를 본 나’
중랑천 산책로는 약간 S자로 휘어 있다.
며칠 전 아침, 나는 그 S의 밑에서 올라가고 있었다.
비가 살짝 오고 있었고, 나는 우비를 입고 장화를 신은 채, 바람을 맞으며 걷고 있었고,
갑자기 눈앞에 스무 마리쯤 되는 가마우지 무리가 나를 향해 서 있는 것을 보았다.
“이건 거의 ‘일동 차렷~’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이 정도면 산책로 MVP 아닌가.
가마우지조차 내 아우라에 반응하는 이 도시, 이 감성.
이렇게 착각했던 건, 지난달 초 뉴 무라바 포럼의 점심시간에 내 테이블 앞으로 수백 마리의 가마우지가 몰려왔기 때문이다(그 장관은 이 글 참조).
그런데 몇 걸음 더 올라가 보니,
그들이 바라보던 건 내가 아니라 그저 남쪽이었다.
나는 길의 휘어짐에 속았고,
그들의 방향 감각은 내 것보다 훨씬 정확했다.
S자로 휘어진 길 위에선,
방향 착각이 자아도취로 발전한다.
그들은 말이 없고, 눈빛도 없고, 회의도 없었다.
하지만 모두 같은 방향을 향해 서 있었다.
처음엔 집단 명상인가 싶었다.
혹은 동물계에서 유일하게 “단체사진 컨셉”을 아는 종인가?
하지만 바람이 문제였다.
그날 중랑천엔 제법 바람이 불고 있었고,
가마우지들의 깃털은 바람에 약한 쪽을 피하기 위해 정렬돼 있었다.
여기서 생기는 질문들:
누가 먼저 돌았을까?
회의라도 했을까?
“형이 남쪽을 보길래 나도 그냥…“이었을까?
이건 마치 팀 회의에서 누군가 슬쩍 고개를 끄덕이면
모두가 “좋습니다” 하고 따라가는, 회사 생활의 정수 같았다.
혹은,
누가 먼저 방향을 정한 것이 아니라,
바람이 먼저였던 것.
아니면 여전히 팀장 눈치를 보고 있는가?
가마우지들은 위계가 없다.
명찰도 없고, 직급도 없고, 누구 보고 PT 잘했다고 박수치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들은 바람이 바뀌면 함께 방향을 바꾼다.
그건 명령에 따른 행동이 아니라, 감각에 따른 정렬이다.
이게 바로 내가 중랑천에서 얻은 두 번째 교훈이다:
리더십은 앞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먼저 바람을 감지하는 것이다.
조직도 이와 같다면 어떨까.
직함 대신 민감도로 정렬되는 팀.
보고서 대신 산업환경의 흐름을 읽는 회의.
그건 단순한 효율이 아니라, 자기조직화의 아름다움이다.
바람은 가르치지 않지만, 새들은 안다. 감각으로.
그날 아침 나는 내가 그 새들을 관찰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들이 내 관점을 바꾸고 있었다.
나는 내가 이끄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은 먼저 감지한 이들을 조용히 따라 걷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중랑천의 바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단지 새의 감각이 모두 같은 방향을 바라보게 만들 뿐이다.”
그리고 나는 그날 처음,
리더 없이도 정렬되는 존재들을 이해하게 되었다.
자아도취는 방향 착각을 부른다.
리더는 명령이 아니라 감각으로 존재한다.
환경을 읽는 감각의 민감도는 미래 조직의 핵심 KPI다.
바람을 먼저 읽은 자는, 말 없이 리더가 된다.
AI를 비롯한 급속한 환경변화가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우리의 리더들은 민감하게 이 바람을 읽고, 타고 있는가?
여러분의 팀이 서 있는 방향은 누군가의 지시에 의한 것인가,
아니면 바람의 신호를 감지한 결과인가?
참고: GPT생태관찰보고서(Deep Research) - 제가 민물가마우지를 쇠물닭으로 잘못 알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