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은 간단했다. 현실은 예상외였다.
등산로 입구에서 만난 검은 고양이 한쌍, 쌍둥이일까?
오늘 아침, 일정 때문에 북한산 정상까지 등산은 무리라고 판단했다. “그냥 중턱만 찍고 내려오자”는 소박한 계획으로 등산화 끈을 동여맸다. 어차피 중간에서 돌아올 거니까 새로운 외국인 친구들과의 만남 같은 건 기대하지도 않았다. 보통 그런 인연들은 정상에서, 땀 흘리며 쉬는 그 순간에 생기는 법이니까.
그런데 인생이란 참 묘하다. 계획대로 되지 않을 때가 더 재미있는 법.
내려오는 길에 눈에 띈 것은 유독 밝은 미소를 짓고 있는 젊은 청년들이었다. 지나가는 말로 “어디서 오셨어요? (교환학생 같아 보여서) 혹시 교환학생이세요?“라고 물어보니, 맞단다.
“어느 학교로 왔어요?”
“연세대학교요!”
잠깐, 뭐라고? 게임 오버… 아니, 게임 시작이다!
내가 바로 연세대학교 졸업생이 아닌가. 이보다 더 완벽한 아이스브레이커가 어디 있겠는가?
산을 좋아한다길래 내가 썼던 북한산-도봉산-소요산 소개 글을 보내주겠다고 약속하고 헤어졌다.
내려오는 길에 또 다른 만남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번엔 체코에서 온 친구들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진짜 하이라이트가 시작된다.
기럭지와 늘씬한 몸매가 예사롭지 않길래 뭐 하시는 분들이냐고 물었더니 모델들이란다.
시간이 없어 인사만 하고 하산했다.
그런데 갑자기 나타난 고양이 한 마리. 어디론가 달려간다.
그리고 그 뒤에 또 다른 냥이가 어슬렁 거린다.
내 오라를 느꼈나?
교감을 나눠볼까 싶어서 접근.
이 녀석, 확실히 암컷이다. (어떻게 아냐고? 그냥 안다. 냥이 전문가의 직감이란 게 있다.)
천천히 다가가 머리를 쓰다듬어주니 신기하게도 가만히 있다.
동물들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인간의 오라를 본다고 하던데, 아마도 내 오라가 괜찮았나 보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다른 등산객이 “카악!” 하고 가래 끓는 소리를 크게 내는 바람에 냥이가 깜짝 놀랐고, 나도 순간 놀랐다…
아, 이렇게 오라장이 깨지는 건가?
아쉽긴 하지만 어쨌든 감응 능력 +20 포인트 상승이다!
현재까지의 성과를 정리해 보자면:
✅ 도봉산 냥이: (누워있던 냥이) 감응 성공
✅ 북한산 냥이: (움직이던 냥이) 감응 성공 (오늘 달성!)
⏳ 소요산 예린이: (숨어있는 삵-탐사추적 필요)
마지막 남은 것은 우리의 소요산 요린이와의 만남이다. 다음번엔 반드시 우리 요린이와 교감을 나눠야겠다.
미션 임파서블 → 미션 컴플리트 예정!
오전 일정 때문에 간단하게 다녀오려던 북한산이 이렇게 풍성한 하루가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연세대 교환학생들과의 즉석 네트워킹,
체코 친구들과의 만남,
그리고 북한산 냥이와의 교감까지.
때로는 큰 계획보다 작은 우연들이 더 큰 선물을 가져다주는 법이다.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었다.
다음 미션: 소요산 요린이, 기다려라!
P.S. 등산객 여러분, 냥이들 앞에서는 조용히 해주세요. 오라장 깨지는 소리 정말 무섭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