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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이 산은 그들을 품을 수 있는가

by 법의 풍경
삵과 너구리


지금까지의 흔적은 둘 중 한 종이 아니라,

두 종 모두의 가능성을 시사했다.

그리고 그 둘이 같은 장소에 배설을 했다는 사실은,

단순한 우연을 넘는다.

이제 우리가 확인해야 할 것은 이거다:

소요산은 삵과 너구리
모두에게 적합한 서식지인가?


이를 확인하기 위해,

나는 세 가지 측면에서 소요산을 분석하기로 했다:

1. 지형적 조건

2. 생태적 다양성(먹이·은신처·물)

3. 공식 기록 및 비공식 목격 사례들



1. 지형적 조건:

숨어 살기에 적합한 산인가?


소요산은 동두천시 북단에 위치한 해발 587m의 중저산성 산지다. 정상은 평탄한 바위지대이고, 아래로 갈수록 계곡, 암벽, 혼효림이 밀도 있게 형성되어 있다.


✅ 암반 지대 + 깊은 그늘 + 다층적 수풀

→ 삵이 낮에 은신하기에 매우 유리한 조건

✅ 사람 통행이 적은 구간, 비가 오면 통제되는 야생 구역 → 사실상의 야생 보호지대


또한 인접한 마차산, 왕방산, 포천 연계 산줄기까지 고려하면, 삵이 단일 산이 아니라 넓은 활동권을 돌며 살아가는 데 적합한 거점 중 하나가 된다.


너구리의 경우는 더 유리하다.

적응력이 매우 강하고, 중저산지부터 농경지 인접 구간까지 폭넓게 서식한다. 실제 중랑천변으로 내려오는 일도 잦고, 나도 직접 목격한 적이 있다. 생각보다 귀엽지 않고, 짐승의 육체성이 강하게 느껴지는 동물이다.

2025. 2. 27. 저녁 중랑천변으로 먹잇감을 찾아온 너구리 2마리, © 설운(設韵). CC BY 4.0. 출처 표기 필수
2025. 6. 28. 저녁 9:17 중랑천 산책로에 나타난 어린 너구리 2마리. 확실히 성체와 달리 귀엽다.

2. 생태적 조건: 먹이, 물, 은신처


(1) 먹이

삵: 설치류, 작은 조류, 때때로 열매

소요산엔 들쥐·청설모·꿩·개구리 등 풍부

가을엔 산딸기, 머루 등 열매류도 많음


(2) 물

원효폭포·청량폭포·옥류폭포·선녀폭포·선녀탕 등

계곡 수계가 전체 산지에 퍼져 있음


(3) 은신처

큰 바위 그늘, 나무뿌리 주변, 접근 어려운 경사면 등

사람 눈에 띄지 않는 지형적 깊이 존재


너구리는 말할 것도 없다.

먹이는 더 다양하게 섭취하고, 은신처 선택 폭도 더 넓다.


✅ 결론: 삵도 생존 가능한 지역이다.

단, 개체 수는 낮고 단속적, 경계적 영역 활용 가능성이 높다.



3. 기록 및 목격 사례


소요산 자체에서 삵을 명확히 포착한 공식 보고서는 적지만, 간접 사례 다수:

2022년 포천 무인센서에 삵 포착

연천 민통선, 철원, 가평 등지에서 삵 잇단 목격

동두천 개발계획 보고서에 삵·수달 서식 고려 항목

2019년 이후 블로그·탐방기에서 “삵 출몰” 추정 보고 다수

"소요산엔 담비와 삵도 출몰한다고 하던데요”

일부 야간 배설 흔적, 고양잇과 발자국 사진 등장


* 2023년 환경부 발표:

수도권 동북부 산지에서 삵 분포가 서서히 확대 중

포천–동두천–연천–철원 연결축 한복판에 위치한 소요산은 핵심 통과 축



4. 결론: 이 산은 그들을 품을 수 있다


지형, 먹이, 물, 사람 밀도, 인접 산지 연결성—모든 조건은 삵이 실제 서식하거나, 통과하거나, 일부 영역화할 수 있는 충분한 환경이다.


- 너구리는 말할 것도 없이 상시 거주 가능성

- 삵은 부분적 거주 또는 순환 활동 영역 가능성


우리는 단순히 똥 하나에서 시작했지만,

이제 이 산을 하나의 활동 지도로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장소는,

그 지도 위에서 하나의 흔적이 아니라 하나의 좌표다.


다음 장에선, 이 흔적에 이름을 붙이는 문제로 들어간다. 그건 단순한 작명 행위가 아니라,

기호를 부여하는 의미의 작용이다.




보론: 그 똥은 누구의 것인가

— 기호로서의 배설물


현장에서 발견된 배설물은 육안으로도 두 가지 색과 질감으로 구분되었다.


이제 우리는 그 배설물이 어떤 동물의 것인지에 대한 형태학적 비교 분석을 수행할 필요가 있다.


이는 해당 장소가 단지 똥을 싸고 간 곳이 아니라,

삵과 너구리가 모두 접근 가능한

반야생–야생 전이 구간일 수 있음을 암시한다.


이 배설물들은 단순한 배설의 결과물이 아니라,

하나의 해석 가능한 기호이며,

그 자체로 생태적 메시지였다.


최근 본 다큐 중에 가장 아름다우며 살 떨리는

한국 삵에 대한 EBS다큐(약 15분)


삵의 서식가능성에 대한 상세 분석보고서는 아래 링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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