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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버지 Dec 17. 2024

반가워 동생아

그리고 미안해

  https://brunch.co.kr/@swoopapa/54


  지난 10월 먼저 세상을 등진 동생이 갑자기 떠올라 글을 쓴 이후 녀석이 잠든 곳에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11월 바빴던 개인일정을 마치고 올해가 가기 전 동생을 만나러 가기 위해 작은아버지께 연락을 드렸다. 지방에 계신 작은아버지는 아들이 묻혀있는 인천에서 멀리 떨어져 지 자주 가보지도 못하였는데 조카가 갑자기 찾아가겠다고 하니 미안함과 고마운 마음이 동시에 드는 듯했다. 그렇게 동생이 잠들어 있는 곳의 주소를 받아 오늘 아침 인천의 한 가족공원으로 향했다.


  서울에서 인천 부평까지 차로는 1시간 거리. 멀지도 않은 곳을 동생이 떠나간 후 한 번도 찾지 않은 나를 자책했다. 동생이 떠나갈 때 즈음 내 나이 30살 무렵 첫 직장에서 성공에 목말라 모든 것을 바치던 때였다. 세상에 매일같이 부딪히며 나를 시험해 가는 동안 동생은 군 제대 후 급성 백혈병에 걸려 무균실에서 1년이 넘도록 병마와 싸웠다. 단 한 번 병문안을 갔을 때도 무균실에서 인공호흡기를 꽂은 채 나를 잘 알아보지 못했던 동생이 문득 떠올라 마음이 무거워졌다. 쌀쌀한 날씨를 뚫고 차가 가족공원에 거의 다 달았을 때 멀리서 누군가가 무언가를 흔들며 나를 반겼다.


  가족공원 초입 추운 입김을 뿜어내며 두 손에 예쁜 꽃다발을 거세게 흔드는 꽃집 아주머니 무리를 지나 가족공원에 도착했다. 봉안당은 살면서 처음 가보는 거라 좀 낯설었지만 주차를 하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가장 먼저 키오스크가 나를 반겨준다. 봉안당에 키오스크라니 어울리지 않는 걸 하는 생각도 잠시 고인의 위치를 알려주는 기기였다. 고인의 이름을 입력하면 같은 이름의 사람들이 뜨고 그중 생년월일과 사용권자의 이름을 보고 해당 고인을 클릭하면 정확한 위치를 알려준다. 위치를 확인한 후 동생의 자리를 천천히 찾아 걸어갔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함께 잠들어 있었는데 동생은 봉안당 한 벽면의 우측 하단 마지막 모서리에 자리 잡고 있었다.


  작은 공간 안에 놓인 액자 속 동생은 앳된 중학생 혹은 고등학생의 모습이었다. 그 모습이 내가 기억하는 동생의 마지막 얼굴이다. 동생에게 '안녕, 오랜만이야'라고 어색한 인사를 건넨 후 가지고 간 두유와 간단한 먹을 것들을 꺼내었다. 두유 입구를 터 동생의 앞에 두고 무슨 말을 할지 몰라 그냥 넌지시 바라보았다. 조금 전 그 사진 속 이제는 남이 되어버린 작은아버지와 작은어머니 사이 동생의 모습에는 웃음 끼는 보이지 않았다. 그때 다행스럽게도 바로 옆 큰 창으로 들어오는 햇빛이 동생의 자리를 비추기 시작했다. '창이 가까워서 바깥을 볼 수 있어 좋겠네'라며 말도 안 되는 너스레를 떨고 창에 기대어 잠시 동안 동생을 바라보았다. 문득 내 안부를 전하고 싶어 나의 결혼과 아내와 딸 이야기를 하며 핸드폰 속 사진을 보여주었다. 이런저런 넋두리 같은 이야기를 조금 더 건넨 후 주변을 둘러보니 군데군데 꽃들이 붙어있었다. 동생의 자리엔 빛바랜 조그마한 조화만 있었는데 화사한 꽃을 붙여주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다시 봉안당을 나가 내 차를 바라보며 세차게 꽃을 흔들던 가족공원 초입의 꽃집으로 다시 갔다. 5천 원짜리 작은 생화를 한 송이 사들고 돌아가 동생의 자리에 붙여주고 나니 그래도 삭막한 겨울에 화사한 느낌이 들어 보기가 좋았다. 동생에게 그동안 와보지 못해 미안하다고 전한 후 다시 또 오겠다는 작별인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오늘 동생의 생일을 처음 알았다. 동생은 1988년생 올림픽 베이비였다. 내 먼 기억 속 동생은 떠나버린 엄마를 그리워하던 여섯 살 아이였는데... 그래서인지 너무 어리게만 느껴져 최소 10살 차이는 날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살아있다면 30대 중후반이었을 동생이다. 동생이 살아있었다면 그래도 가까운 거리에 있는 동생과 가끔은 만났을까? 동생의 고민을 술 한잔 주고받으며 들어줄 수 있었으려나? 여러 생각이 든다. 다시 한번 너무 일찍 하늘로 떠나 버린 동생이 안쓰럽고 야속하다.


고맙고 수고했네 형이 찾아주어 흡족했겠지
거센 소나기앞에 평온을 잃지 않은 것은 곧 지나가리라 느끼기 때문이라 생각하네 고마운을 마음에 두겓네 수고했네

  동생은 잘 있다고 걱정 마시라며 작은 아버지께 메시지를 보냈다. 작은 아버지는 서툰 타자로 나에게 답을 하셨다. 뭐가 그렇게 고맙고, 수고했다 하시는 걸까. 동생을 떠나보낸 사촌형의 무심한 시간들이 너무 부끄러워 뭐라 다시 답할 수 없었다. 고향에서 택시 운전을 하고 계신 작은 아버지의 하루가 오늘 어땠을지 궁금하다. 아들을 먼저 보낸 작은 아버지는 얼마나 거센 소나기를 맞으며 하루하루를 살아오셨을까 생각을 해본다. 그럼에도 곧 지나가리니. 혹은 이미 지나갔거나 지나가고 있으니 평온하시길 빌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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