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먼저 세상을 등진 동생이 갑자기 떠올라 글을 쓴 이후 녀석이 잠든 곳에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11월 바빴던 개인일정을 마치고올해가 가기 전동생을 만나러 가기 위해작은아버지께 연락을 드렸다. 지방에 계신 작은아버지는 아들이 묻혀있는 인천에서 멀리 떨어져 지내 자주 가보지도 못하였는데 조카가 갑자기 찾아가겠다고 하니 미안함과 고마운 마음이 동시에 드는 듯했다. 그렇게 동생이 잠들어 있는 곳의 주소를 받아 오늘 아침 인천의 한 가족공원으로 향했다.
서울에서 인천 부평까지 차로는 1시간 거리. 멀지도 않은 곳을 동생이 떠나간 후 한 번도 찾지 않은 나를 자책했다. 동생이 떠나갈 때 즈음 내 나이 30살 무렵 첫 직장에서 성공에 목말라 모든 것을 바치던 때였다. 세상에 매일같이 부딪히며 나를 시험해 가는 동안 동생은 군 제대 후 급성 백혈병에 걸려 무균실에서 1년이 넘도록 병마와 싸웠다. 단 한 번 병문안을 갔을 때도 무균실에서 인공호흡기를 꽂은 채 나를 잘 알아보지 못했던 동생이 문득 떠올라 마음이 무거워졌다. 쌀쌀한 날씨를 뚫고 차가 가족공원에 거의 다 달았을 때 멀리서 누군가가 무언가를 흔들며 나를 반겼다.
가족공원 초입 추운 입김을 뿜어내며 두 손에 예쁜 꽃다발을 거세게 흔드는 꽃집 아주머니 무리를 지나 가족공원에 도착했다. 봉안당은 살면서 처음 가보는 거라 좀 낯설었지만 주차를 하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가장 먼저 키오스크가 나를 반겨준다. 봉안당에 키오스크라니 어울리지 않는 걸 하는 생각도 잠시 고인의 위치를 알려주는 기기였다. 고인의 이름을 입력하면 같은 이름의 사람들이 뜨고 그중 생년월일과 사용권자의 이름을 보고 해당 고인을 클릭하면 정확한 위치를 알려준다. 위치를 확인한 후 동생의 자리를 천천히 찾아 걸어갔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함께 잠들어 있었는데 동생은 봉안당 한 벽면의 우측 하단 마지막 모서리에 자리 잡고 있었다.
작은 공간 안에 놓인 액자 속 동생은 앳된 중학생 혹은 고등학생의 모습이었다. 그 모습이 내가 기억하는 동생의 마지막 얼굴이다. 동생에게 '안녕, 오랜만이야'라고 어색한 인사를 건넨 후 가지고 간 두유와 간단한 먹을 것들을 꺼내었다. 두유 입구를 터 동생의 앞에 두고 무슨 말을 할지 몰라 그냥 넌지시 바라보았다. 조금 전 그 사진 속 이제는 남이 되어버린 작은아버지와 작은어머니 사이 동생의 모습에는 웃음 끼는 보이지 않았다. 그때 다행스럽게도 바로 옆 큰 창으로 들어오는 햇빛이 동생의 자리를 비추기 시작했다. '창이 가까워서 바깥을 볼 수 있어 좋겠네'라며 말도 안 되는 너스레를 떨고 창에 기대어 잠시 동안 동생을 바라보았다. 문득 내 안부를 전하고 싶어 나의 결혼과 아내와 딸 이야기를 하며 핸드폰 속 사진을 보여주었다. 이런저런 넋두리 같은 이야기를 조금 더 건넨 후 주변을 둘러보니 군데군데 꽃들이 붙어있었다. 동생의 자리엔 빛바랜 조그마한 조화만 있었는데 화사한 꽃을 붙여주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다시 봉안당을 나가 내 차를 바라보며 세차게 꽃을 흔들던 가족공원 초입의 꽃집으로 다시 갔다. 5천 원짜리 작은 생화를 한 송이 사들고 돌아가 동생의 자리에 붙여주고 나니 그래도 삭막한 겨울에 화사한 느낌이 들어 보기가 좋았다. 동생에게 그동안 와보지 못해 미안하다고 전한 후 다시 또 오겠다는 작별인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오늘 동생의 생일을 처음 알았다. 동생은 1988년생 올림픽 베이비였다. 내 먼 기억 속 동생은 떠나버린 엄마를 그리워하던 여섯 살 아이였는데... 그래서인지 너무 어리게만 느껴져 최소 10살 차이는 날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살아있다면 30대 중후반이었을 동생이다. 동생이 살아있었다면 그래도 가까운 거리에 있는 동생과 가끔은 만났을까? 동생의 고민을 술 한잔 주고받으며 들어줄 수 있었으려나? 여러 생각이 든다. 다시 한번 너무 일찍 하늘로 떠나 버린 동생이 안쓰럽고 야속하다.
고맙고 수고했네 형이 찾아주어 흡족했겠지 거센 소나기앞에 평온을 잃지 않은 것은 곧 지나가리라 느끼기 때문이라 생각하네 고마운을 마음에 두겓네 수고했네
동생은 잘 있다고 걱정 마시라며 작은 아버지께 메시지를 보냈다. 작은 아버지는 서툰 타자로 나에게 답을 하셨다. 뭐가 그렇게 고맙고, 수고했다 하시는 걸까. 동생을 떠나보낸 사촌형의 무심한 시간들이 너무 부끄러워 뭐라 다시 답할 수 없었다. 고향에서 택시 운전을 하고 계신 작은 아버지의 하루가 오늘 어땠을지 궁금하다. 아들을 먼저 보낸 작은 아버지는 얼마나 거센 소나기를 맞으며 하루하루를 살아오셨을까 생각을 해본다. 그럼에도 곧 지나가리니. 혹은 이미 지나갔거나 지나가고 있으니 평온하시길 빌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