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된 내가 더 소중해졌기에 사표를 냈다

intro

by 유이배
더 버티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결국 그 생각까지 하게 됐던 날, 저는 퇴사를 결심했습니다. 퇴사가 유행이 돼버렸다는 말들도 난무하지만 저는 모든 이들의 퇴사를 한낱 철 없음으로 쉽게 평가절하 할 수가 없네요.


제가 마침내 사직서를 결심한 그 날이 오기까지는 스스로에게서 무력감을 느꼈던 날들이 쌓이고 쌓였습니다. 한숨과 눈물이 습관이 되었고 미간의 찡그림은 어느 새 제 표정이 돼버렸습니다. 우울이 일상이 됐죠.


그 시절 제가 겪은 일들을 타인의 경험담으로 들었더라면, '그런 일도 있구나' 하며 무심히 흘려들었을 지도 모릅니다. 신문기사에 나올 만큼 호들갑 떨만한 일들은 아니었거든요. 그러나 막상 '내가' 겪고보니 달랐습니다. 결국 퇴사 즈음의 저는 많이 망가져버려 흔하디 흔한 사소한 빈정거림에도 털썩 주저앉게 됐습니다. 지난 10년간의 커리어를 물거품으로 만들었던 결정적인 말이 고작 "애 엄마라서 예민한가봐" 였으니까요.


십대의 저도, 이십대의 저도, 삼십 중반 즈음에는 당당한 커리어우먼으로 자리잡고 있을 거라 확신했습니다. 열심히 공부했고 자주 좋은 성적을 냈으며 괜찮은 대학을 나와 유학까지 다녀왔는데, 고작 대학 졸업 후 10년 만에 도망치듯 퇴사하게 될 것이란 생각을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요.



그러나 그 땐, 그 허망함을 매만지며 하루를 더 버티기보다는 망가진 나를 얼른 끌고 나와 '충분히 열심히 했으니 괜찮다'라고 달래주는 것이 더 급했습니다.


나를 위해 더 이상 버티지 않기로 결심하고 몇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지금도 그 선택을 후회하지 않지만, 가끔 이런 이야기를 듣기도 합니다.


부모가 됐으면 더 참고 버텼어야지



그러나 어쩐 일인지 저는 엄마가 되고 나서 더 참을 수 없게 됐습니다. 참고 버티며 꾸역꾸역 살아내는 삶을 아이 앞에서 보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누군가의 엄마가 된 내가 나는 참 소중했기 때문입니다.


비록 누군가는 '애 엄마'라는 이유로 나를 빈정거렸고, 회사는 내가 '애 엄마'가 됐다는 이유로 평가절하했지만 저는 엄마가 된 뒤의 저를 더 사랑하게 됐습니다. 그랬기에 용기를 내어 새로운 삶을 살겠다는 용기를 마음 먹을 수 있었습니다. 서른 중반에. 말입니다.



글. Sophia B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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