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생의 재설정을 위해
저 회사 그만둘께요. 유럽으로 여행을 가려구요.
내 말에 팀장이 살짝 실소를 보였다. 지금 서른의 나이에, 갑자기 웬 유럽? 대학교 때 배낭여행 안 다녀왔어? 유럽에 별 거 없어. 구경하고 돌아오면 또 직장 구해야 할텐데 그게 쉬워? 그리고 한국에서는 그런 공백 만들면 재취업하기 엄청 힘들고, 경력 단절 자체가 '놀기 좋아하는 사람' 이미지가 있어서 채용되기 어렵다고.
네. 알아요 그래도 가려구요.
왜냐하면 죽을 거 같거든요. 죽기 전에 원하는 거 봐야죠. 라는 말은 속으로 꾹 꾹 눌러 담았다.
회사에 말했으니 그 다음은 부모님이었다. 부끄럽지만, 서른이 되도록 내 통장을 관리하고 계시던 부모님께 처음으로 당당하고 망설임없이 이야기했다. 제 통장 주세요. 앞으로 제가 관리할께요. 그리고, 퇴직금 받아 유럽 여행을 갈 거에요. 4개월 정도 예상은 하고 있는데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겠어요.
부모님은 예상대로 난리가 나셨다. 그야말로 집안에 두 번째 풍지박산이 난 것처럼 엄마는 울며 쓰러지고, 아빠는 온 힘을 다해 나를 협박하고 붙잡기 위해 애쓰셨다. 아, 첫번째 풍지박산은 언제였냐고?
우리 오빠가 죽었던 날, 그 이후 매일이 풍지박산이었다.
그로부터 18년 전, 나보다 13살 많던 오빠가 변사체로 집에 돌아온 날이었다. 그 날 이후로 나는 하나밖에 없는 외동딸이자, 먼저 간 오빠의 장남 역할을 등 뒤에 짊어지고, 원래 역할인 철없는 인형같은 막내 딸의 역할을 해야만 했다. 그 두 가지의 동시다발적인 역할이 얼마나 힘들었었는지, 아마 같은 상황에 처해 있는 사람이 아니면 이해하기 힘들 거다.
오빠가 죽은 후로, 나는 든든하고 믿음직한 장남 과 인형같이 말잘듣고 귀여운 막내가 동시에 되어야 했다.
그 상반된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기란 너무도 어려운 것이어서 , 나는 내 자신과 멀어지는 길을 택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을 한참 후에 알게되었다.
제가 번 돈 주세요. 아버지에게 이야기하니 아버지는 배신감을 느낀 듯, 말씀하셨다. "우리가 니 돈을 어쩌기라도 했을까봐 그러니? " 아니요, 그게 아니라, 제가 할 게 있어서 그래요. 여행을 갈 거에요. 어디로?? 회사는 어쩌고 여행을 간다는 거니, 여자 나이 서른에?!
아직 안 정했어요. 근데 유럽을 갈 거에요.
고대 문명, 지금은 스러진 그 오래된 문명이 살아 숨쉬는 그곳에 갈 거에요.
왜 유럽이었는지, 지금 생각해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첫 도착지는 터키 이스탄불이었다. 내가 모르는 가장 이색적인 곳을 찾다가 찾은 곳이 '모스크' 와 '이슬람 문화' 가 섞인 터키였던 것 같다. 가장 정보가 미미하게 없는 곳, 그리고 희한하게 기독교 성전이었다가 이슬람 성전이었다가를 반복한 '아야 소피아' 가 있는 곳.
아무리 봐도, 너무나 이국적인 터키 (지금 튀르키예) 가 내 첫 행선지로 딱 맞아 보였다.
나를 아무도 모르는 곳에, 내 언어가 통하지 않는 곳에, 가장 이국적인 곳에
그렇게 나를 떨어뜨려 놓을 작정이었다.
기독교와 이슬람의 문화가 공존하여 뒤섞인 곳.
고대 문화가 현재처럼 숨쉬는 곳.
나의 언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들로 가득한 곳.
그림과 상징들이 가득한 명화로 가득한 곳.
그리스 로마 신화의 무대가 되는 곳.
문자보다 상징이 살아 숨쉬는 곳.
왜 유럽이었을까. 생각해보니 , 바로 그랬다.
내가 다시 상징의 세계로 돌아갈 수 있는 곳.
그들의 언어를 몰라, 사람들과 바디랭귀지를 통해 소통해야만 하고,
내가 이제껏 살아온 삶과는 아주 다른, 철저히 이국적인 곳.
내가 새로 태어나는 느낌으로,
다시 한 번 '아기' 가 될 수 있는 세상.
그 곳이 그 때는 '유럽', 특히 터키의 이스탄불이었다.
그렇게, 나는 다시 태어나기로 결심하고 , 모든 사람들의 만류와 적극적인 훼방에도 불구하고 끝이 정해지지 않은 나만의 첫 여행을 계획하기 시작했다. 다시, 아기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세계여행기
#유럽여행기
#자유여행기
#퇴사여행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