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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장. 아기는 제가 책임지고 키울 거예요!

by 뚜기맘



교수님 진료만 남겨놓은 상황 굶주린 배를 과자로 간단히 채우고 대기 줄이 줄어들 때까지 기다렸다. 순서가 마지막 순서였다. 때는 17시를 넘기고 있는 시각이었다. 진료실 앞으로 이동해 달라는 카톡 알림이 왔다.


교수님 진료실 앞 7번 방 앞에서 앉아 기다렸다. 교수님 만나서 진료 보는 시간이 제일 떨리고 제일 긴장되는 순간임에는 첫 진료나 두 번째 진료나 3번째 진료나 별반 다를 게 없이 어찌 한결같이 똑같은지..


한 산모가 교수님 진료실에서 문을 열고 남편분이랑 같이 나왔다. 근데 산모의 눈에서 눈물이 새어 나오는 걸 보게 됐다. 그냥 봐도 아 안 좋구나.. 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그 산모의 손에 들려있는 봉투가 그걸 말해주고 있었다. 은평 성모병원에서 전원 오신 모양이었다.


이윽고 간호사가 나와서 다음 진료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는데 협진 봐야 하는 다른 과가 여러 군데가 있었나 보다. 옆에서 들리니까 들은 거지만 내가 초진 왔을 때 그때 내 모습이 덜컥 떠올라버렸다.


얼마나 마음이 힘들고 속상할까.. 옆에 있는 남편분도 이렇다 할 아무 말도 못 하고 그렇게 두 부부는 산부인과를 빠져나갔다. 멀어지는 두 부부를 보면서 나도 마음이 아팠다. 그러면서 내 옆에서 같이 앉아계시고 같이 진료 들어가서 내가 물어보지 못하거나 하는 부분들을 옆에서 다 하나하나 세심히 물어봐 주시고 챙겨주시는 간호 선생님이 정말 고마웠다.


내가 눈물을 흘릴 때마다 간호 선생님 마음도 어떻게 해줘야 할지 몰라하셨겠지라는 생각이 들어 죄송한 마음도 같이 들었다. 그런 생각에 빠져있을 때쯤 이윽고 간호사가 내 이름을 불렀다.


어우 오늘 진료 마지막 순서.. 두근두근.. 그렇지만 난 씩씩하게 진료실로 들어갔다. 초음파실에서도 인사를 했지만 오늘 처음 뵌 것처럼 "안녕하세요." 씩씩하게 인사하면서.. 자리에 앉고 오늘 초음파 본 거에 대해서 이야기를 듣게 됐다. 태반이 두껍고, 복수가 있던 부분은 다행히도 많이 잦아들고 있어 보인다.


여전히 폐나 간은 안 좋아 보이는데 폐 같은 경우는 태어나서 당장 수술할 건 아니고 좀 키워서 그때 가서 소아과 선생님이 보고 판단하에 하게 될 것 같다. 다행히도 복부둘레가 한 주수 크게 나가는 거 빼고는 다른 데는 정상 주수에 맞게끔 성장해 나가고 있고 태동 움직임도 다 괜찮아 보인다.


복부둘레가 나가기 때문에 자연분만으로 출산은 어려울 것 같아 보인다 하셨다. 이미 첫 진료 때부터 자연분만은 생각하지도 않았다. 출산을 할 수 있을지.. 없을지 이것조차 알 수 없었던 장담할 수 없었던 시기가 있었기 때문에.. 출산을 준비하고 출산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나는 기적이라 생각했기에.


그리고 저번 진료 때 물어보셨던 보호자에 대해서도 물어보셨다. 아기 보호자는 내가 1순위가 되는 게 맞지만 지금 상태로 나의 보호자는 내가 머물고 있고 지내는 곳인 시설이 내 보호자라고 간호 선생님이 이야기해 주셨다. 교수님이 아기를 엄마가 그럼 키울 의사가 있는 건지에 대해서도 물어보셨다. 아기의 상태가 안 좋아 병원에 두고 책임 안 진다고 했던 사례들도 적지 않게 있었나 보다.


나는 당당하고 씩씩하게 이야기했다. "아기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제가 책임지고 키울 거예요." 교수님 얼굴을 바라보며 이야기드렸다. 시크하신 교수님 얼굴에서 인자한 미소가 퍼지셨다. "네 좋습니다." 뚜기 이야기만 나오면 눈물이 금세라도 차오를 것만 같았는데 다행히 잘 참아냈다.


최대한 주수를 가지고 가는 게 좋다고 말씀하시며 달력을 바라보시다 뚜기 생일 날짜를 말씀해 주셨다. "10월 21일 어떠세요?" 날짜가 정해진 것만으로도 얼떨떨했다. 생각해 놓은 날짜가 있으시면 말씀해 달라는 교수님. 나는 괜찮다고 했다. 너무 마음에 드는 날이었다. 날짜를 잡아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수술에 대해서 궁금한 게 있는지 물어보셨다. 간단히 설명을 들었고, 자세한 설명은 따로 안내를 해줄 것이니 듣고 가고 입원 관련 수속은 전달할 건데 오늘은 늦었으니 다음 진료 때 와서 그때 하라고 말씀해 주셨다.


간호 선생님이 옆에서 수술 후 있을 수 있는 일들이나, 아기에 대해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 긴급상황이 있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교수님께 꼼꼼히 물어봐 주셨다. 아기에 관해서는 소아과 교수가 담당을 하게 될 것이고 아기 치료 관련해서도 그때부터는 소아과 교수가 직접 담당하게 될 거라고 하셨다.


출산준비에 최선을 다하자고 하셨다. 산모도 이제는 좋은 생각만 하고 컨디션 조절 잘해주라고 말씀해 주셨다. "그래, 이제 운명의 주사위는 던져졌어." 수술 날짜까지 별일 없이 잘 지내자. 그렇게 다시 한번 더 굳게 마음을 먹으며 교수님 진료를 마치고 진료실을 나섰다.


막달 검사를 앞두고 정말 불안했었고 걱정 많았었고, 우리 뚜기는 괜찮을까? 무사히 출산할 수 있을까? 정말 별생각 많았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순조롭게 끝나버린 막달 검사. 그리고 생각보다 따뜻함이 많이 느껴졌던 교수님의 말씀이 그동안 불안했던 내 마음을 진정시켜 주는데 크게 한몫을 한 것 같다. 교수님이 좋아지려고 한다.


교수님이 하신 말씀처럼 컨디션 조절 잘해야지 좋은 생각만 해야지 그렇게 몇 번이고 머릿속에 되새기며.. 막달 검사가 끝이 났다. 임신기간 중 넘어야 할 산과 고비들이 많은데 마지막 산 하나를 넘은 느낌... 왠지 모를 후련함에 속이 시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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