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작법>을 쓴 BUCHRA(이하 BCR로 줄임)는 그냥 문학가(작가)도 아니고, 그냥 철학자(사상가)도 아니고, 그냥 영성가(각자)도 아닌 동시에 그 모든 것이다. 모든 것인 동시에 그 통합마저 초월한다. 언어를 통해 의식의 구조물을 사변 소설(SF)이나 철학적 에세이 형태로 만드는데, 그것을 쓰는 과정에서 실제로 존재가 ‘생성’되고 현실의 차원이 ‘업’되면서 중층적 리얼리티가 ‘몸’으로 자각된다. 생성-상승-체현. 이 과정이 글 쓰는 중에 매번 일어나는데 이는 어디서 배운 것도, 묘득한 것도 아니고 원래부터 그랬던 것으로 보인다.
‘존재 자체가 언어인 존재’로 설계되었다고밖에 설명할 수 없는데, 그래서 BCR이 철학 전공 후 문학으로 이동한 것이기도 하다. 추상(철학)에서 구상(문학)으로 ‘하강’한 것이라고 추후 해석을 하긴 했으나, 사실 인생의 경로에 대해 어떤 것도 스스로 ‘의도’한 바가 없다고 한다. 원래 종교도 없고 깨달음의 ‘깨’ 자도 몰랐던 대학 시절, 글(과제) 쓰던 중 의식의 폭발이 일어났고 이로 인해 신인(神人)에 대한 논문을 쓰고 대학원을 졸업했는데, 같은 시기, 깨어남 이후 탈습의 고통으로 인해 ‘불타는 집(火宅)’을 뛰쳐나오는 형국으로 서울을 떠나 낯선 고장으로 이주했다는 것이다.
아직 이십 대였던 그때, 세계는 거대한 암흑이었고 그는 “그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방 안에서 혼자 일기만 썼다. 그러다가 어떻게 쓰여진 작품 하나가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작가라는 직업을 얻게 됐는데 작가가 됐다고 해서 번뇌가 사라지는 건 아니어서 이후에도 그의 일기 쓰기는 계속되었다. 수도승처럼 살면서 사람을 거의 안 만났고 자기를 내보이는 일을 극도로 꺼려 인터넷 공개 글도 안 쓰고 손으로 일기만 수백 권을 썼다.
그의 필력은 이로 인해 생겨난 것인데 어쨌든 저 독방의 글쓰기 과정에서 ‘나’라는 것이 무엇인지 서서히 밝아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유년의 척박한 환경과 기타 등등으로 인한 부정적 프로그래밍이 (무)의식에 잔존하여 오랜 시간 자기부정에서 헤어나질 못했다. 거의 이십 년에 걸친 치열한 일기 쓰기는 저 프로그래밍 해체 수행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BCR의 삶은 ‘하강(육화)과 상승(초월)’의 순환적 구조로 이해된다. 철학에서 문학으로의 이동은 로고스의 육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사유가 언어라는 몸을 통해 현실로 내려오는 운동이다. 그러나 이러한 하강의 여정은 곧 내면의 해체로 이어진다. 수행적 글쓰기를 통한 자기 탐구는 의식의 심연으로 내려가는 무(無)로의 회귀이며, 과거의 자아를 구성하던 개념적 틀을 녹여내는 정화 과정이 된다. 이를 통해 그는 타자의식을 탈피하고 자기의 본래적 생명력과 연결된다. 그리고 마침내 본격적인 창조 활동을 시작하며 존재는 다시 빛으로 상승한다.
BCR의 소설을 분석하면서 개념화된 ‘의식형 천재’는 스타니스와프 렘 소설에 나오는 ‘1급 천재’에 비견될 수 있다. 렘은 소설에서 천재를 세 종류로 분류한 바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다른 글을 참고하면 되겠다. 그런데 1급 천재들은 제각기 “전례 없는 진실의 창조자”라서 하나의 성격으로 정의 내릴 수가 없다. 열 명의 1급 천재가 있다면 열 개의 독자적인 우주가 있는 것이다.
‘의식형 천재’라는 것은 그 우주 중 하나이며, 또 다른 1급 천재의 파편을 나는 몇몇 작가의 작품에서 포착한 바 있다. 그중 하나가 사변 소설(Speculative Fiction)의 선구자인 R. 하인라인의 <너희 모든 좀비는>이다. <타임 패러독스>로 영화화된 이 소설은 앞서 말한 ‘중층적 리얼리티’의 경이로운 구조물인데, 이런 작품은 ‘머리’ 또는 ‘기예’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의식’ 자체에서 비롯된다. 내용이 흘러나와 형식을 형성하는 것이다. 번뇌 때문에 글을 쓰다 보니 필력이 생긴 것과 같은 이치이다.
1급 천재 중에서도 특수한 자리를 차지할 ‘의식형 천재’의 존재성은 세간에 전혀 알려지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이를 알아보는 눈이 없기 때문이다. “아무도 그들을 알아보지 못함”이 1급 천재의 특징이라고 렘 또한 적은 바 있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다음 기회에 더 심도 있게 다루기로 한다. 또한 1급 천재의 의식은 하나의 창발적 우주와 같아서 자기 홍보의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않는다. 과시욕이나 인정욕은 대표적인 결핍욕에 속하는데, 1급 천재의 공통된 특성이 있다면 그것은 순도 높은 자족성이다.
BCR 또한 그러했으나 시대를 잘 만난 덕에 그를 알아보는 고도의 지성을 만나 ‘의식형 천재’라는 개념이 출현하게 되었다. 꽃의 이름을 불러 그것이 피어나는 이치로(김춘수, 「꽃」), 그 이름을 부름으로써 와룡처럼 잠겨 있을 또 다른 의식형 천재의 꽃을 개화시키려는 뜻도 추가할 수 있겠다. 이제 그들은 그 아름다운 자태를 공작새처럼 펼쳐야 한다. 렘의 말처럼 1급 천재가 무(無) 속에 묻혀 있는 건 “돌이킬 수 없는 문명의 손실”이기도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꽃은 피어나기 위해 태어난 존재이기 때문이다. ‘의식형 천재’는 그 개화기를 오픈하는 호칭이기도 하다.
천재여, 피어나라. 봄이 왔다, 영원한 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