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직을 했다.
다시 교실 문을 열고, 3월 첫 수업에 들어간다.
덩치는 커다란 아이들이 까만 교복을 입고, 흰 마스크를 모두 쓴 채 나를 쳐다본다.
코로나로 마스크를 끼고 있어, 눈만 볼 수 있지만 일 년 동안 수업시간에 만날 선생님이 궁금해서 초롱초롱 쳐다본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이 짜릿함이 참 좋다.
올 해부터 내 과목은 선택을 받아 오는 아이들로, 학생들이 자신의 선택에 맞춰서 교실을 찾아온다.
출석을 한참 부르다 보니 자신의 이름이 없다며 앞으로 나오다가 핸드폰을 쓱 확인하더니 씩 웃으며 잘 못 찾아왔단다.
교실은 한바탕 웃음바다다.
이런 모습은 사실, 내가 대학교 때 볼 수 있었던 모습인데 말이다. 시대가 많이 변하고 있나 보다 정말 잘 변하지 않는 학교가 변하고 있으니 말이다.
내가 처음으로 고3 담임을 했을 때, 지금으로 부터 십 년도 전의 일이다. 그때 수시로 대학 입학이 진행되면서 한 명의 아이가 대학 원서를 여러 개 낼 수 있었고, 대학교마다 교사 추천서를 써야 했다. 양식도 모두 달랐고, 38명이 되는 아이들의 추천서를 쓴다고 나는 토요일도 일요일도 출근했었던 기억이 난다.
대대적인 생활기록부의 변화, 교사의 추천서가 생활기록부 행동발달상황으로 대체되고 생활기록부에 쓰이더라도 반영되지 않는 것이 많아진다.
입시가 변화하니, 앞으로 학교는 더 변화할 것이다.
수업을 진행하다 보니 한 명의 학생이 눈에 띈다. 운동부다. (지금 근무하고 있는 학교에는 야구부, 검도부, 양궁부가 있다.) 운동부 학생임을 가만하고 질문을 하려고, "친구, 너 운동부지?" 라고 물었더니, 머리를 긁적이며 "어제까지는 맞았지만, 오늘부터는 아닙니다." 이렇게 말하며 눈치를 살핀다. 아! 운동을 그만두었구나.
내가 지금 가르치는 아이들은 고등학고 2학년 18세이다. 18년이라는 세월이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다. 그 나이보다도 한 번 더 그 나이를 살아보니 정말 18세는 얼마 안 된 나이 맞다. 마흔이 넘은 나도 내가 누구인지 아직도 고민하는데 고작 18년 살아오면서 자신이 운동을 잘한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길이 운동이다라고 생각하고 살아오다가 그 길이 아니다는 생각이 든다면 삶의 방향을 바꿀 수도 있을 것이다.
문득, 어찌 보면 우리들은 애벌레들이 아닐까?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몰라서 한 치 앞도 모르는 그런 애벌레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애벌레가 계속 애벌레로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애벌레로 살아가면서 방황도 하지만 그 시기를 잘 보내고 나면 번데기가 된다. 그 번데기 속에서 고뇌하고 인내하는 시간을 보내야만 나비가 되어 날아갈 수 있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각자의 삶 시기는 다 다를 수 있지 않을까? 각자의 그 시기에 맞게 같이 기다려주고 인내해주고 격려해준다면 번데기 시기를 잘 이겨내고 나비가 되리라 믿는다.
다른 사람들이 먼저 나비가 되어 날아가고 있다고 선급해하지 말자. 우리 모두가 나비라는 사실만을 인지하고 각자의 번데기 시기를 잘 인내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