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한지.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땅, 생명의 흔적이 희미해지는 계절.
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스치면 마음까지 얼어붙는 것 같아도, 나는 그 속에서 멈출 수 없는 이야기를 본다. 얼어붙은 들판에 서서 문득 떠오르는 건, 삶이란 얼마나 견고한가에 대한 생각이었다.
나무는 잎을 떨구고, 흙은 얼어붙어 있지만, 그 뿌리는 여전히 땅속에서 물을 찾는다. 아무리 혹독한 추위가 닥쳐와도 생명은 멈추지 않고, 겨울 속에서도 새로운 봄을 준비한다.
설한지를 가만히 바라보면, 우리는 어쩌면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이 겨울을 견디는 일인지도 모른다는 깨달음에 닿는다. 누군가는 따뜻한 방 안에서 겨울을 피해 지내지만, 또 누군가는 이 차가운 공기를 마시며 새로운 길을 만들어간다. 내게 겨울은 그런 계절이다. 멈추고 싶을 때마다 내 안의 뿌리를 들여다보게 만드는 시간.
나는 설한지가 품고 있는 고요를 사랑한다. 바람 소리와 나뭇가지가 부딪히는 소리 외에는 모든 것이 멈춘 듯한 침묵 속에서, 나는 비로소 내 마음의 목소리를 듣는다. 그동안 숨기고, 잊고, 지나쳤던 감정들이 하얀 눈밭 위에 드러나고, 나는 그것들을 하나씩 들여다보며 마음을 정리한다.
눈이 내린 길을 걸을 때마다 생각한다. 삶의 겨울도 이와 같지 않을까. 발자국 하나하나가 힘들게 남겨질지라도, 그 끝엔 언젠가 새싹이 돋고, 꽃이 피어나리라는 희망을 품게 되는 계절.
설한지는 차갑고 고된 시간처럼 느껴지지만, 사실은 모든 것을 쉬게 하고, 새롭게 시작할 준비를 하게 해주는 계절이다. 나를 돌아보게 하고, 다시 시작할 용기를 주는 그런 시간.
그래서 나는 설한지를 사랑한다. 그 침묵 속에서 다시 태어나는 나를 만나기 위해 언제나 그렇듯, 이 겨울도 지나고 나면 더 단단한 내가 되어 있을 것을 믿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