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모든 계절은 그 끝에서 가장 강하게 다가온다. 봄이 끝나면, 여름이 찾아오듯, 여름의 끝자락에서 가을은 갑자기 고요하게 내 발 밑에 내려앉는다. 그런 날이 있다. 공기가 차갑고, 하늘은 여전히 푸른데, 그 속에 뭔가 낯선 무게가 느껴지는 날. 계절의 끝자락에서 나는 언제나 더 많이 생각한다. 아마도 모든 끝은 그렇게 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끝을 알지 못하고, 끝을 준비하지 못한 채 다가오는 그때.
가을은 그렇게 시작된다. 매년 가을은 다르게 시작되는 듯하다. 첫 번째 바람이 지나가고, 나무들이 점차 황금색으로 변해가는 그 순간, 나는 그 안에 숨겨진 다른 의미를 찾으려 애쓴다. 그 때마다 나는 잃어버린 것들에 대해 생각한다. 아마 계절은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시간이 흐르고, 우리는 계속 잃어가지만, 그것을 알아차리기까지는 언제나 너무 늦는다. 가을의 끝자락에서 나는 그런 무언가를 놓친 듯한 기분이 든다.
그래서 나는 가을을 그렇게 사랑하는 것 같다. 가을은 그저 나를 잃게 만들지 않는다. 그 대신, 나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길게 늘어진 그림자의 끝에서 나는 나를 바라보며 가끔은 멈춰 선다. 그렇게 잠시 멈추어서는, 지나온 길을 돌아본다. 지나간 시간들이 내 안에서 무엇을 남겼는지,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내가 어떻게 끌어안고 살아갈지에 대해 생각한다. 가을은 묵묵히 그 질문을 내게 던진다. "너는 그때, 진짜로 살았던 걸까?"
하지만 여름은 언제나 다르다. 여름이 지나가면 나도 더 이상 여름을 기다리지 않는다. 여름의 끝자락은 언제나 너무 아쉽고, 그 아쉬움 속에서 나는 조금 더 괴로워진다. 여름이 지나가면, 나는 다시 한번 자신에게 묻는다. 왜 여름은 그렇게 빨리 지나갔을까? 그리고 왜 나는 여름이 끝날 때마다, 마지막 순간을 놓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걸까? 아마 그 답을 알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여름은 내가 놓친 시간을, 다시 찾아올 수 없음을 절실히 깨닫게 한다.
겨울은 그때 가면 또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겨울은 언제나 모든 것을 감추려고 한다. 눈이 내리면, 그 안에 내가 지나온 발자국도, 나의 모든 흔적도 사라진다. 겨울은 내게 물어본다. "너는 무엇을 남기고 싶니?" 그 질문 앞에서 나는 대답할 수 없을 때가 많다. 나는 그저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추위 속에서 내가 한 번도 따뜻하지 않았던 이유를 생각한다. 겨울은 내게 그것을 고요히 묻는다. "너는 따뜻하지 않았던 기억을 어떻게 끌어안고 살아갈 것이냐?"
모든 계절이 지나가고, 다시 봄이 온다. 봄은 언제나 새로움을 약속하지만, 그 새로움이 주는 감동이 조금씩 무뎌지는 걸 알게 된다. 봄은 아무것도 묻지 않고,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다. 봄은 그저, 지나간 모든 것을 다시 돌아보게 만드는 시간일 뿐이다. 그래서 봄은 무섭다. 나는 그 봄 속에서 다시 내가 잃어버린 것들을 바라보게 된다.
계절은 그렇게, 반복된다. 끝에서 끝으로, 끝을 준비하며 계속해서 돌아온다. 나는 그 끝자락에서 매번 새로운 질문을 받는다. "너는 지금, 무엇을 기다리고 있니?"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나는 언제나 그저, 지나간 계절들의 끝자락에서 자신을 찾으려 한다. 계절은 변하지만, 그 안에서 나는 여전히 내가 무엇을 잃었고,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지 고민한다.
그리고, 그 끝자락에서 나는 다시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