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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겪는 모든 고통과 시련의 시초는 분별에서 온다.

by 태연

분별한다는 것은 나와 타인과의 구분을 의미한다.

분별한다는 것은 나 그리고 타인과 삶을 세상에게 주입된 기준으로 평가한다는 것이다.

'좋고, 싫다'로 나누지 않는 것,

'옳고, 그름'으로 나누지 않는 것,

이것이 분별하지 않는 것이다.


분별을 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는

좋은 것은 붙잡으려 하고, 싫은 것은 저항함으로써 삶의 흐름을 막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

존재의 순수성을 보지 못하기에 드러나있는 아름다움을 마주할 수 없으며 오히려 왜곡하여 인식하기 때문이다. 분별하지 않고 있음을 그대로 바라보면, 있음을 그대로 인정해 주면 고통은 일어나지 않는 다. 이해도, 억지성 노력도, 인정도, 가짜 가면도 필요치 않다. 분별로 인한 장애물들을 만들지 않기 때문에 모든 것들이 자연스럽게 펼쳐지고 물 흐르듯 나아간다.


살면서 겪는 모든 고통과 시련의 시초는 결국엔 분별에서 오는 것이다.

그대가 자신에게 조금의 쉼도 허락하지 않으며, 아무것도 이뤄내지 못했다 자신에게 하는 비난을 보면 그 고통의 뿌리가 뚜렷하게 드러난다. 지금 자신의 상황을 나쁘다 판단하지 않는 다면, 그저 폭우가 내려 개미집이 쓸려 갔더라도 개미가 그것에 대해 한탄하지 않고 더 나은 곳에 더 견고한 집을 다시 짓는 것처럼 살아간다면, 우리에겐 고통은, 시련은 있을 수가 없다. 사소한 일상의 문제와 엉킴들이 있을 때 예를 들어 지인과의 사이가 틀어졌다면 무얼 하려 하지 말고 그 상황을 싫다 밀어내지 말고 그저 인정하고 수용함에 흘러가게 두어라. 내가 의도치 않는 기적 같은 방법들로 저절로 풀려 나갈 것이다. 그리고 그 문제들을 결국엔 내가 만든 환상임을 알게 될 것이다.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분별의 기준은 사랑과 자유 그리고 자비와는 반대되는 것들의 신념들로 세워졌다.

세상이 나에게 심어놓은 제한된 규칙과 날개를 펼치지 못하도록 묶어놓은 신념들은 평화와 안전을 위해, 우리들의 행복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닌, 자신들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자들이 자신들만의 세계를 짓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니 자연을 그저 흘러가도록 두는 것처럼 우리의 삶도 그저 흘러가도록 두어야 한다. 사계절이 저마다의 개성을 내세우며 조화로울 수 있는 이유는, 우리에게 단조로움 없이 변화의 빼어남을 선사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는 그것들을 판단 없이 수용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분별하지 말라.

그저 있는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맛보아라.



지구별에 오기 전,

무조건 적인 사랑이었던 기억을 잃은 영혼이 자신이라는 것을 기억해 내시길...

그대는 그저 사랑과 자비만이 가득한 존재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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