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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엽시계 Aug 03. 2022

분노조절 장애 현상에 대한 보고서

와이키키 브라더스

세상은 너무나 복잡하고 빠르게 변하고 있다.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나도 변해가야 하는 데 따라가기에 너무나 버겁다.

제때 따라가지 못하니 스트레스받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괜히 화가 치민다. 누군가에게 화풀이를 하고 싶기도 하다.

급기야 자신의 울분을 참지 못하고 괜히 애먼 사람에게 분노를 폭발시키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급하게 목적지를 향해 운전을 하는데 다른 이가 양보를 안 한다.

“너 따위가 감히 내 앞을 가로막아?” 

열받는다. 용서할 수 없다.

가고자 하는 목적지는 이제 그 차가 가는 곳이 된다.

끝까지 쫓아가 그 차 앞을 가로막고 욕설을 하고 위협한다.

이른바 보복운전.     


매장에서 물건을 사는데 점원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어? 이게 감히 나를 무시해?” 괜히 트집을 잡는다.

손님의 위세를 앞세워 죄 없는 점원을 잡는다.

점원은 사과를 하지만 나를 놀리는 것처럼 보인다.

급기야 점원의 따귀를 걷어 부치고 무릎을 꿇린다.

이른바 갑질이다.     


자신의 행동이 도를 넘어 사회적 지탄을 받을 때야 그들은 마지못해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면서 변명이라고 늘어놓는 말이 있다.

“분노 조절 장애”가 있다고 말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이들의 분노조절 장애는 이상하게 자신보다 신체적으로 약해 보이는 사람이나 사회적으로 약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만 나타난다는 것이다.     


조폭이 보복 운전을 당했다는 이야기는 들어 본 적이 없다.

대기업 회장님이 갑질을 당했다는 기사 역시 아직 본 적이 없다.     


그래! 분노조절 장애가 맞다. 자신보다 약한 상대에게만 발산는 '선택적 분노조절 장애'.

자신의 화를 풀고는 싶은데 강자에게는 얻어터질까 봐 감히 어찌할 수 없으니 자신보다 약해 보이는 사람에게만 선택적으로 분노를 표출하는 졸렬한 작자의 행동일 뿐이다.     


조금만 마음을 가라앉히고 입장 바꿔 생각해보면 그렇게 화낼 일도 아니다.

그런데 그 순간 자신이 무시를 당했다고 확신을 해버린다.

상대가 나보다 못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천박한 계급의식의 발로다.       

                  



선택적 분노조절 장애 환자들과 정반대 성격의 인물을 다룬 영화가 하나 있다.

바로 한국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


나이트클럽을 전전하는 삼류 밴드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리더 성우의 고난한 삶의 이야기가 주제다.

영화 속의 성우는 도대체 분노를 표출할 줄 모른다.

룸살롱에서 연주하면서 손님한테 옷이 벗겨지는 수모를 당해도 그는 무표정이다.

자신이 음악을 가르쳤던 제자에게 자신의 일 자리를 빼앗겼는데도 배은망덕한 제자에게 화를 내지도 않고 클럽을 떠난다.

친구가 손을 못쓸 정도로 다쳐서 찾아왔는데도 큰 동요 없이 마치 어린아이 다쳤을 때 빨간약을 발라 주듯이 대처한다.

밴드 해체 위기에 나타난 옛 연인의 등장으로 밴드를 다시 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의 표정은 큰 기쁨의 표현 없이 일상의 표정만을 짓는다.

영화 속의 영상 역시 주인공의 표정처럼 큰 요동 없이 잔잔하게 흐른다.     




과잉 행동 장애 증후군 환자처럼 자신의 화를 억제하지 못하고 폭발시키는 선택적 분노조절 장애 환자들도 많지만 정작 화를 내야 하는 상황에서도 화를 내지 않고 영화 속 주인공 성우처럼 감정 표현을 하지 못하는 분노조절 장애 환자들도 있다.     


분명 화를 내고 쌍욕을 하면서 길길이 뛰어야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그는 미동도 하지 않고 분노를 표출하지도 않는다.

그냥 아무런 일도 없다는 듯이 일상의 생활을 이어간다.

뇌에서 화를 조절하는 기능에 문제가 생긴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약자한테 갑질을 일삼는 사람이 넘치는 세상이지만 분노를 표현할 줄 모르고 늘 그래 왔던 것처럼 그는 그렇게 살아간다.     




그의 뇌 기능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니다.

화를 낼 줄 몰라서 안 내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처한 삶에 지쳐, 아무리 분노를 표출해도 변하는 것이 없다는 것을 잘 알기에 그는 나름의 방식으로 분노를 표출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눈에만 그냥 아무 일도 없듯이 지나가는 사람으로 보일 뿐이다.     


그들도 화를 내고 분개하고 분노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외쳤었다.

회사의 부조리를 알리기 위해 내부 고발을 했지만 돌아온 건 해고장과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었다.

사회의 부당함에 저항하며 거리로 나섰지만 가진 자들의 권력에 의해 무참히 짓밟히고 말았다.

사는 게 너무 힘들어 불합리한 국가 정책을 성토하면 “네가 못나서 그런 걸 왜 국가 탓을 하냐”는 핀잔을 들었다.


이제 그들은 세상을 향한 분노를 멈춘다.

그들이 화를 내지 않는 것은 이 사회가, 가진 자들이 그들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눌러 온 것이다.

아무리 외쳐도 안된다는 것을 알았기에 이제 그들은 세상을 위한 정의로운 외침마저 침묵하기로 한 것이다.     



세상의 가진 자들은 소외된 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위정자들은 가진 자들의 목소리에만 신경 쓸 뿐 없는 자들의 목소리에는 관심이 없다.

그들에게 없는 자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자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삶에 지쳐 분노하지 않는 사람들, 이제 그들이 마음 놓고 화내고 분노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정신 나간 미친놈이 아닌 한 소외된 자들의 분노는 사회의 부조리를 알리는 소리 없는 함성이다.

그들의 분노와 함성에 귀 기울이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우리 사회가 없는 자들을 정말 없는 사람 취급해서 그들의 분노의 함성을 외면한다면.

그들을 열등감에 빠져 불평불만이나 일삼는 집단으로 매도한다면 그들은 정말 분노조절 장애 환자가 되어 나와 나의 가족을 향해 분노의 칼을 휘두를 수도 있다.  

불특정 다수를 향해 저질러지는 묻지마 범죄 중 상당수가 사회에 대한 분노에 기인한 경우를 접하지 않았는가.


국가와 집단의 외면그들을 분노조절 장애 환자로 만들 수 도  다.     

그들을 외면하지 말고 마음껏 분노하게 만들어 주는 사회, 그들에게 나는 당신 편이라고 말해 주는 우리가 된다면 그가 분노조절 장애 환자가 되어 충격적인 뉴스의 주인공이 되지는 않겠지.     


“소외된 자들의 목소리를 외면하는 순간이
잠재적인 범죄자가 탄생되는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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