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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엽시계 Jul 07. 2022

혹시 나도 리플리 증후군 환자?

화차

가끔 다른 사람의 인생이 부러울 때가 있다.

가진 재산이 많은 이가 부럽고, 외모가 출중한 이가 부럽고, 그의 천재성이 부러울 때가 있다.

하지만 제일 부러운 건 그가 태어날 때부터 그의 의사와 무관하게 가지게 되는 것.

바로 그의 가문, 즉 그의 부모님이 이루어 놓은 재력이다.     


나와 비슷한 환경에서 자라나 성공한 이를 부러워한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부러움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시기의 대상에 가까웠던 같다.

성공한 그를 만나면 앞에서는 축하해 주면서도 시기 어린 마음이 들기도 한다.

속으로 말하기도 한다.

“내가 학생 때는 저 녀석보다 공부도 잘하고 잘 나갔는데..”     




재력을 지닌 부모님을 천부적 재능(?)으로 얻게 된 이는 정말 부러움의 대상이 됐다.

거기다 외동이라면 더할 나위 없지.

가끔은 내가 저 집의 아들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 적도 있다.

나의 부모님은 평범했기에 아니 어찌 보면 가난했기에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그 친구가 질투 나면서도 부러웠던 것은 비단 나뿐일까?     


부잣집 아이만 부러운 것은 아닐 것이다.

부모님이 맨날 사네 못 사네 하면서 싸우는 집의 아이들은 화목하게 사는 부모님을 가진 친구들이 부러웠을 것이고 형제 없이 자라 외로운 아이는 형. 누나가 있는 친구가 부러웠을 것이고 고아로 자라는 아이는 가족이 있는 친구를 부러워하겠지.     



부러움은 상대적이기에 부러움의 대상도 사람마다 다르게 마련이다.

가진 것은 많지만 병마에 시달리는 사람은 모든 재산을 주고서라도 건강한 몸을 소원하는 것처럼 말이다.     

누군가를 부러워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좋은 현상이다.

그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여 그 자리에 올라갈 수 있다면 건강한 삶의 원천일 테니까.     


부러움과 시기심은 같은 마음이다.

부러움은 긍정적, 시기심은 부정적 마음이라고 할 수 있겠지

그런데 이 부러워하는 마음이 정도를 벗어나 시기심으로 발전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부러움의 대상은 내가 이루고 싶은 목표가 되지만 시기의 대상은 내가 타도해야 할 적으로 착각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런 이들은 자신이 이 모양 이 꼴로 사는 것은 내가 못나서가 아니라 이 세상이 미쳐 돌아가기 때문이고 나쁜 놈들이 내 것을 뺏어갔기에 이렇게 사는 것이라는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한 착각이 분노로 표출된다면 정말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떤 이들은 부러움과 시기심이 지나쳐 자신을 전혀 다른 인격체로 만들기도 한다.

누군가가 부러워 그 사람 흉내를 내는 사람들,

흉내 내는 것으로 그친다면 애교로 봐줄 수 있지만 정도를 지나쳐 자신이 그 사람인양 사칭한다면 안될 일이지만 그런 사람들의 소식은 뉴스에 심심치 않게 보도된다.

그런 사람을 보면 측은한 마음이 먼저 들기도 한다.     


내가 되고 싶은 또는 부러워하는 사람을 흉내 내거나 사칭하다가 나중에는 자신이 그 사람이라고 믿게 되는 현상.

그러한 사람들의 심리를 의학 용어로는 리플리 증후군이라고 한다지?

입원 치료가 필요한 정도는 아니어도 경증의 리플리 증후군 환자는 내 주위에도 한 두 명은 있을 것 같다.   

  



리플리 증후군 현상을 소재로 한 “화차란 영화가 생각난다.

암울하고 천박했던 자신의 과거를 지우고 자신이 원했던 모습이 되기 위해 살인을 행한 후 자신이 살해한 사람으로 살아가다 정체가 발각 날 위기에 처하자 다른 곳으로 떠난 후 다시 같은 행동을 하며 다른 이의 모습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여주인공 선영.     


그녀의 모습이 비단 영화 속의 이야기로만 느껴지지 않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정치계에서나 학계에서 끊이지 않는 학력 위조. 경력 위조, 논문 표절, 작품 베끼기 등등..

자신이 것이 아닌 걸 자신의 것 인양 포장하고 베끼고, 걸려도 위조가 아니라고 당당하게 변명하는 이들.

이들의 모습이 영화 속 선영과 무엇이 다를까?

반성조차 하지 않고 당당하게 변명하는 그들이야말로 리플리 증후군 환자는 아닐까?

그나마 영화 속 선영은 자신의 범죄를 인정하며 외쳤다.

“그래 나 악마야”     


지금 부러움의 대상을 시기 어린 열등감에 사로잡힌 눈으로 보고 계시지는 않나요?

그렇다면 지금 당신은 악마가 되기 위한 과정 중 제1단계에 접어드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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