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보세요 어 엄마
- 네 생일인데 뭐 좀 해서 보내줄까?
- 아니야 괜찮아. 엄마는 뭐 필요한 거 없고?
- 응 나는 너희 밥 잘 먹고 잘 지내면 돼
5월 8일, 어버이날은 내 생일이다. 그래서 매해 어버이날이 돌아올 때마다 전화로 듣는 말이다. 어버이날은 부모가 자식들에게 그나마 대접받는 귀중한 날이다. 그런 이유로 평소에 효도와는 거리가 먼 자식들도 이날만은 부모님께 용돈 또는 선물을 하거나 ‘사랑한다, 낳아줘서 고맙다'라는 등의 낯간지러운 말을 하는 날이기도 하다.
그런데 엄마는 일 년에 고작 하루 있는 날도 마음 편히 어버이 혜택을 누리지 못한다. 오히려 뭘 더 해주지 못해서 고민이고 걱정일 뿐이다. 그 원인 제공자는 말했듯이 나다.
나라는 아이를 낳고부터 5월 8일은 어버이에 대한 감사를 받는 날이라기보다 아들 생일 케익을 사줘야 하는 날이었던 거다. 그리고 오히려 뭘 더 해주지 못해 항상 고민이고 걱정인 날이 되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내 잘못은 아니긴 하다. 내가 고른 날이 아니었고, 내 의지와는 무관했다. 그러나 내 잘못은 커서도 5월 8일이라는 날을 떠올릴 때, 어버이날에 엄마에게 무얼 해줘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여전히 ‘내 생일 벌써 다가왔구나'라는 생각을 한다는 점이다.
내 머릿속 사고 흐름이 어느순간부터 [5월 8일 = 어버이날 ⇒ 내 생일]이라는 식으로 자연스럽게 성립됐던 것이다. 심지어 엄마의 사고 흐름도 나와 같다는 점이다. 어버이날이라는 날에 의미를 두는 것보다는 내가 태어난 날에 더 큰 의미를 둔다. 그래서 오히려 내가 어버이날에 전화하기 며칠 전부터 전화를 걸어 ‘곧 생일인데 뭐 좀 해서 보내줄까?’ 하는 식의 말을 한다.
좋은데 슬프다. 갈수록 미안하고. 못난 아들이라는 느낌이 드는 건 이조차도 내 체면을 먼저 생각하는 이기적인 생각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의도치 않게 불효자가 된 기분에 약간은 억울하다고도 말할 수 있겠지만 지금은 부족한 아들임을 스스로 인정한다.
가족 단톡방에 엄마가 사진을 한 장 보냈다. 안마기를 매형한테 선물 받으신 모양이다. 그 사진에 대한 답으로 매형이 말씀하신다. “현금 드리면 안 쓰고 모아만 놓으실 것 같아서 일부러 물품으로 골랐어요ㅎ”라고.
또 한 대 맞은 느낌이다. 현금을 줘봤자 자신한테 안 쓰고 모으기만 하는 걸 나도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좋아할 만한 걸 사줄 생각은 안 하고 돈으로 드릴 생각만 했다.
자식들보다도 엄마를 잘 챙겨주시는 매형이 있어 다행이다. 감사한 마음과 함께 아직 난 멀었다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난 언제쯤 5월 8일이 돌아오면 나보다 엄마를 더 생각할 수 있을까. 그보다 엄마는 언제쯤 어버이날에 나보다 자신을 더 생각하는 날이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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