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oun Sep 05. 2024

잔잔바리 모닝런 = 지극한 평범함

모닝런을 챌린지라고 하는 이유

평범하다는 건 어떤 걸까,

어느샌가부터 아니 어려서부터 우리는 평범하기를 암묵적으로 거부해야 하는 분위기 속에 자라나고 성숙하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평범하다고 느끼면

스스로 작아지기도 하고

내 안의 불안이 가 콩콩 뛰어오르기도 하고

색다른 특이한 무언가는 못 되어도 그래도 나는 나다!라는 색 정도는 있어야 할 것 같은 분위기 속에서

성인이 되어 회사에서

 이제는 퇴직만 바라보는 직급이 될 때까지 살아간다.

'평범하다 : 뛰어나거나 색다른 점이 없이 보통이다.'

평범한 것이, 뛰어나거나 색다른 점 없이 보통인 것이 좋지 않은 걸까?  


코로나의 시작과 더불어 앱과 언텍트 문화가 크기 시작하면서 이제는 자연스러운 문화로 자리 잡은 만나본 적 없는 사람들과 함께 모여 시작하는 갓생 챌린지들.

정말 기발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다양한 챌린지들이 많다.

한 달 안에 몇 킬로 감량하기, 2주간 몇 시에 일어나기, 얼마간 푸시업을 몇 개씩하고 인증 찍어 올리기, 심지어 한 달 안에 다리 찢기 등등. 그중에서도 유난히 눈에 띄게 많은 챌린지는 모닝런, 아침 달리기.이다.

아침에 일어나는 게 어려워 챌린지이기도 하겠지만

꾸준히 뛰다 보니

모닝런이 챌린지인 이유는 '지극한 평범함'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내가 뛰는 아침 달리기는 그렇다.

사람들이 아주 많이 나와서 같이 기록을 만들어 가는 경쟁 심리를 자극시키는 러닝도 아니고, 하루 종일 움직인 덕분에 몸이 다 풀려 있는 상태인 저녁만큼 잘 뛰어지는 러닝도 아니다. 딱히 색다르긴 어려운 시간이 아침이다. 자고 막 일어나서 고양이 세수 하고 머리 질끈 묶어 올리고 대충 선크림만 덕지덕지 바른 채 나와서 삐걱 거리는 몸을 풀어가면서 아주 천천히부터 시작해야 안전할 수 있는, 비교적 느린 모닝런.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아직 일어나지 않은 시간에 조용히 혼자 뛰는 모닝런,

그저 지극히 평범한 달리기 일 뿐이다.

그렇게 조용하기 때문에 저녁보단 함께할 사람도 적고 보이지 않기 때문에

나와의 약속도 더 잘 지켜지기가 어려울 수도 있고,

 눈에 띄지 않는 많은 것들이 그저 그렇게만 보일 수도 있다.

정말 대부분의 것들이 나만 알 수 있는

마법 같은 시간이니까.


나 또한 태어나기를 이기고자 하는 승부욕이 아주 강한 성향으로 태어났다. 중고등학교 때 고작 체육시간에 재미로 하던 피구 게임마저 이기지 못하면 분해서 하루종일 생각이 나던 때가 있었다.

그런 내 모습들이 싫어 자연스레 점점 더 혼자 하는 운동들을 좋아하게 된 것 같다.

혼자 하는 운동 중 하나인 달리기. 내가 러닝을 시작한 건 앞서 말했지만 정말 더 강한 체력이 필요해서였다.


체력을 증진하기 위해 달리기를 시작했는데 막상 크루에 들어오니 이 대회 저 대회 준비하는 찐 마라토너 분들이 많아서 같이 뛰면서 대회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또 내 안의 불안이 가 올라오면서 '아 나도 여기 참가해봐야 하나, 저렇게 해야 실력이 오르는구나' 등 꼭 기록 단축 기차에 지금 올라타지 않으면 뒤처질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많았다.

그러던 와중 같이 뛰고 집에 가는 길에

귀여운 동생 두 명이 본인들을 소개하면

'언니 우리는 이 크루의 잔잔바리들이야'라고 하던

멋진 저녁이 있었다.

누가 봐도 거의 탑 순위권으로 잘 뛰고 오래 뛰고 꾸준히 뛰는 그런 친구였다. 말도 많이 하지 않고 화려한 차림으로 뛰지도 않고 조용히 꾸준히 뛰어서 멋있다고 나도 저만큼 뛰고 싶다고 생각하던 그런 친구였는데

 '잔잔바리'라고 하니

너무 귀엽기도 하고 순간 좀 파격적이기도 했다.

'잔잔바리'가 이렇게 멋진 단어였나?

'잔잔하다' + 구역(縄 張 り, 줄을 던져 닿을 수 있는 거리 즉, 자기 영역이라는 뜻)

=> '잔잔하고 눈에 잘 어울 지 않게 조금씩 일을 진행한다'

정확하게 그날 이후로 나는 '잔잔바리'라는 단어를 아주 좋아하게 되었다.

버텨내는 느낌만 있는 '잔디'는 싫은데

'잔잔바리'는 왜인지 '누가 뭐라든 어디서든 난 내 갈 길 간다!' 이렇게 쿨하게 들려졌다.


모닝런이 '하루 이벤트' 이거나 뭔가 이걸 하면 이렇게 있습니다 빠밤! 하는 것이 있다면 챌린지가 아닌 마냥 큰 즐거움이 수도 있을지 모른다.

예를 들어 내가 모닝런이라는 거사를 치르고 뿌듯한 마음으로 준비를 하고 출근을 했는데 회사 동료들이 매일같이 크게 박수라도 쳐주고 대단하다고 칭찬이라도 준다면?

 그것만으로도 모닝런은 특별할 것이다. 

누군가 알아주고 인정받고 있다고 생각하면

괜히 으쓱하기도 하니까.

하지만 모닝런은 MBTI로 따지자면 I에 가까운 친구가 아닐까 생각이 든다. 조용히 하는 그런 친구.


그래서 '잔잔바리 모닝런'이 챌린지 인 이유는

 어려운 만큼 큰 힘이 있는 이유는

아마 '지극한 평범함'인 것 같다.

티도 안나는 같은 시간에 꾸준히 나와서

 그 자리에서 나만 알게 뛰지만

알게 모르게 나 혼자 느낄 수 있는 변화들이

아침 달리기를 한 그날에도 그리고 며칠을 뛰고 난 후에도 그리고 장기간을 봤을 때도 분명히 존재하니까.

잔잔하게 눈에 잘 보이지는 않지만 그리고 특출 난 색도 특이한 점도 없는

지극히 평범한 아침의 똑같은 행위일 뿐일 수도 있지만 스스로가 느낄 정도론 앞으로 가고 있으니까.

지극히 평범하면 안 될 것만 같은 분위기 속에 늘 생활해 온 우리가 모닝런은

지극히 평범한 꾸준함을 품은 도전이기에

누구나 한 번쯤은 시도해 보고 싶은 챌린지 일 것이다.


나는 수수하다 못해 부스스한 민낯으로 나와 땀을 흠뻑 흘리고 유유히 들어가는 모닝러닝을 하면서

'지극한 평범함'에 중독되었다.

그리고 '잔잔바리'라는

재미있지만 힘이 있는 단어를 다시 보게 된 후

잔잔하고 평범한 많은 것들에 대한 위대함을

새삼 조금씩 하나씩 깨달아가는 중이다.


그리고 '꾸준한'사람이 되고 '잔잔바리'가 되려고 하다 보니 세상에 많은 일들이 좀 수월해지는 느낌이 있다.

모닝런 처럼

수수하고 담백하면서 평범하게 오래오래 뛰는 사람,

내 인생에서도 '주특기:롱런 잔잔바리'이고 싶다.


제일 어려운 것, 평범함. 그리고 꾸준함.

잔잔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것.

참 이상적인 멋진 사람이다.


이전 05화 모닝런은 무엇이관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