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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 Sep 13. 2024

단순하고 사소하게

모닝런을 하고 좋아진 것들? 식상하지만.

모닝런을 하고 좋아진 것들을 나열해 보자면 아마 전형적인 식상하기도 한

흔한 갓생 리스트업 일 것이다.

아침에 동일 시간 기상

몇 발자국 뛰고 나면 긍정적인 생각이 가득하다

오늘 하루 망치지 말아야지 하는 의지가 생긴다

긍정 에너지와 함께 근자감이 생긴다

붓기 없는 얼굴로 하루를 시작한다 몸이 가볍다

점심을 먹을 때도 속이 편한 상태에서 먹는다

커피가 줄었다

어제 좀 많이 먹었어도 양심 가책이 덜 하다

등등

모닝런을 꾸준히 하니 아침 다섯 시 사십 분쯤이 되면 여김 없이 눈이 떠진다.

오늘처럼 비가 와서 모닝런을 가지 못하는 날에도 눈을 떠서 밖을 한번 확인하게 되는 마법의 시간, 일어나는 당시에 몸은 무거워 다섯 번 이상의 뒤척임을 매일같이 반복하지만 꾹 참고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 나가서 몇 발자국 아니 5분이라도 뛰고 나면 정말 신기하게도 긍정적인 생각들이 소리 없이 퐁퐁 떠오른다.

'아 맞아 원래 이런 느낌이었지' '그래 나오길 잘했어' '아 나온 김에 7킬로는 뛰고 가야지' 그리고 한 5킬로 이상 뛰고 나면 별 특별한 생각도 없어지면서 한결 가벼워진 몸과 함께 기분도 좋아진다.

열심히는 아니더라도 꾸역 꾸역이라도 나와서 뛰어냈다는 그 자체에서 힘을 얻어 집으로 돌아갈 땐 자연스레 오늘 하루를 멋진 하루로 만들기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이 하나 둘 떠오른다.

허기진 배도 아무렇게나 달래고 싶지가 않다. 좋은 것, 조금이라도 깨끗하고 맑은 음식으로 소중한 내 몸에 무리되지 않게 조심스레 채워 넣고 싶은 마음이다.

집으로 돌아와 뻐근해진 무릎, 허리, 발목, 찬 물에 찜질해 주면서 시원하게 샤워를 끝내고, 흠뻑 흘린 땀으로 홀딱 젖은 옷을 갈아입고 거울을 보면 새벽과는 다르게 부기가 쏙 빠진 얼굴에 기분이 상쾌하다.

왠지 화장도 잘 먹는 것 같고 오늘 좋은 일들이 많이 생길 것 같은 기분 좋은 착각에 빠진다.

모닝런을 하기 전에는 업무 시작하기 직전에 작은 잔 아메리카노 두 잔, 또는 큰 잔 아메리카노 한잔 정도로 씁쓸한 기운을 장기 구석구석으로부터 뇌까지 전달하여 온몸을 깨우곤 했는데 지금은 신기하게도 커피를 마시지 않아도 충분히 머리가 맑아서 커피 보단 차나 주스를 마시는 편이다.

저녁에 조금 많이 먹거나 저녁이 조금 늦은 날엔 아침에 평소보다 2-3킬로 정도 더 달리고 나면 독소도 빠지고 천연 소화제가 따로 없다.

 당연히 점심도 꿀맛이다.


어제는 모닝런을 하지 못했다. 새벽부터 비가 많이 내렸고 급기아 호우주의보까지 발령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그 전날부터 몸살 기운이 돌아 좀 쉬고 싶기도 했는데 아침에 뛰지 않았더니 온몸이 꿉꿉한 날씨만큼이나 무거워서 오후가 되니 좀 뛰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그래서 비가 조금 그친 듯싶을 때 흠뻑 젖을 각오하고 뛰러 나갔다. 습기가 가득해서인지 몸살기운 때문인지 한 발자국 한 발자국이 모래주머니를 차고 달리는 것 마냥 무거웠다. 입을 크게 벌리고 몰아쉬지 않으면 힘들 정도로 호흡도 어려웠다. 2.5킬로... 3킬로... 5킬로만 딱 뛰고 가자 생각했는데 6킬로 뛰고 나니 웬걸 컨디션이 좀 좋아진 것 같아서 조금 더 뛰고 싶어졌다.

한편 아직 보통 직장인들의 퇴근 시간이 되지 않은 시간이라 공원에 사람도 별로 없었고 끄물끄물한 날씨에 혼자 뛰어서 그런지 뛰는 게 새삼 지겨웠다.

늘 돌던 시계방향 말고 시계반대방향으로 틀어 보슬보슬 비를 맞으며 뛰기 시작했다.

매일매일 벌써 1년은 뛰어서 정말 익숙하다는 말도 충분하지 않을 만큼 눈과 몸에 밴 길인데 고작 방향을 틀었다는 이유 하나로 느낌이 이상했다. 어색하고, 좀 더 힘든 것 같기도 하고, 새로운 길 같기도 하고 어디에서 방향을 틀어야 하는지도 좀 헷갈리기도 하고. 고작 그 하나로...

뛰다 보니 생각이 났다.

시계 방향으로 돌 때마다 나도 힘들고 같이 뛰던 사람들도 늘 난코스라고 하던 오르막 길은 반대로 뛰어보니 아주 쉽지만 무릎을 조심해야 하는 내리막 길이 되어 있었고

늘 별생각 없이 뛰던 내리막 길은 기나긴 오르막 길이 되어있었다.

코너링을 할 때도 장애물의 위치가 반대로 있어 몸이 기억하는 그대로 본능에 맡기고 돌면 다칠 수 있었고 도착지까지 가는 길이 정말 다르게 느껴졌다.


이번에는 달리기와는 아주 다른 요가 이야기를 덤으로 해 본다.

  나는 요즘 본업과 부업으로 요가를 하고 있는 중이다. 취미였다가 부업이었다가 이제 본업의 어느 부분까지 차지하는 자리가 커질 만큼 요가를 좋아하는 요기라 매일 요가 수련을 한다.

이번 주 내내 몸 컨디션이 별로 좋지 않아서 그런지 러닝을 하고 와서도 효능이 좋다는 마스크 팩을 하고 와서도 도무지 피부에 생기가 돌지 않는 것 같았다. 아마 여름 내내 많이 그을린 탓이 제일 클 것이다.

계속 거슬려서 평소에 잘 보지도 않는 거울을 수십 번 들여다보고 한숨 한번 내 쉬고 핸드폰을 만질 때마다 웹서핑을 할 때마다 피부 관련 시술을 찾아보기도 하고 제품을 찾아보기도 하고 몇 시간을 소모했는지 모른다. 평소에 시술이랑 받아보지도 않은 내가 요즘 피부과 시술 메뉴판?을 본다고 해서 단번에 이해할 리가 없고

어려운 이름들과 수많은 브랜드들이 있는 피부관리 제품들을 단번에 알아채서 떡 하니 구매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결국 몇 번을 찾아보고 장바구니에 담고 저장해 두고 하다가

눈도 아프고 머리도 아파 냅다 요가 매트를 펴고 거꾸로 서기를 했다.

'피부가 쳐진 것 같은데 피부 쳐진 건 땅에서 끌어내리는 힘 중력 때문이 아닌가. 그렇다면 거꾸로 서 있으면 피부가 위로 처지지 않을까? 할 수 있는 만큼 오래 거꾸로 서서 버텨보자.'

아주 단순하고 무식한 생각이라고 할 수 있지만 기분 탓인지 거꾸로 서기를 한 20분 하고 나서 거울을 보니 왠지 혈색도 괜찮아진 것 같고 볼살도 좀 올라간 듯해서 혼자 식 웃었다.


느껴보지 못한 기분을 느껴보기도 하고 기대하지 못한 만족감을 느껴볼 수도 있는 것 같다.

그게 아주 잠깐의 순간일지라도. 

힘들고 지겨운 순간에 뛰는 방향을 거꾸로 바꿨더니 어렵기만 하던 오르막 길은 내리막 길이 되어 허망하지만 우습게 느껴졌고 어렵게 느껴본 적도 없어 항상 먹고 가는 구간이라고 생각했던 내리막 길은 끝나지 않는 오르막 길이 되어 나에게 다시 도전장을 던졌다.

거울도 보고 세수도 다시 해 보고 마스크팩도 해 보고 여러 가지 어려운 시술과 제품들을 찾아봤지만 썩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냅다 거꾸로 서고 나니 얼굴이 후끈후끈하면서 혈색이 돌고 리프팅 효과도 좀 있는 것 같아 몇 날 며칠을 불평 가득 웹서핑만 하던 나를 잠깐이나마 웃게 했다.

모닝런도 아주 단순하다.

잠깐의 순간을 넘기고 냅다 달리고 나면 좋은 것들이 더 많다. 오후엔 아침에 일찍 깬 연고로 졸음도 올 수도 있고 다리가 뻐근한 게 온몸에 근육통이 있을 수도 있지만 그렇지만 모닝런을 뛰고 나면 나도 모르게 가슴 가득 만족감을 느끼고 좋은 것들이 많은 그런 것.


힘들거나 지치거나 아니면 그저 지루할 때라도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지 않더라도 각도를 틀어 보는 것

매일 바쁘게 몰아쳐서 그냥 사는 하루지만 단순하게 조금만 일찍 일어나서 다리를 움직여 보는 것

그 작은 것만으로도 생각지 못한 소소한 즐거움이나 크게는 색다른 변화가 있을 수도 있으니

앞으로도 그렇게 단순하고 사소하게 재미를 즐기며 깨달음을 느끼며 달리면 좋을 것 같다.


조금이라도 특별할 수 있는 아침이라는 시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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