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버리고, 또 버리자...
빈 가슴 부여안고...
현관을 들어서다 구석에 수북이 쌓인 책들을 보았다. 며칠 전, 아내가 책장 정리를 한다며 보지도 않는 책들은 버리는 게 어떠냐고 물었다. 언젠가 시간을 내어서 한번 정리해야지 생각하고 있던 터라 책들을 하나하나 훑으며 버릴 것들을 골라보았다.
일 년이 넘도록 한 번도 빼 보지 않았던 책들이 대부분이었다. 이 책은 나중에 다시 읽어볼 거고, 저 책은 다음에 꼭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버릴 책을 가리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렇게 갈무리한 책들에다 또다시 많은 책이 추가되어 책장은 종이 한 장 끼울 틈도 없이 가득 차버리곤 했다.
책장 앞에 쪼그리고 앉아 버릴까 말까 망설이고 있던 내게 아내는 장식용 책 위에 나의 게으름이 먼지가 되어 덕지덕지 쌓였다며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괜히 책을 장식용 소품으로 만들어버린 것 같아 뒷덜미가 근질거렸다. 몇 개월 동안 손도 대지 않았던 책들을 골라 다 버리라고 말하고는 도망가듯 자리를 피했다.
고등학교 다닐 때였다. 교문 앞에서 월부책 장수가 한국대표단편소설전집 팸플릿을 늘어놓고 학생들에게 책 선전을 하고 있었다. 친구와 함께 학생들 틈에 끼어 구경하다가 친구가 사는 것을 보고 나도 덜컥 계약하고 말았다.
당시 학생으로서는 감히 엄두도 못 낼 만큼 큰 액수였다. 책은 당장에라도 배달되니 돈은 일 년 동안 나누어내면 된다는 말에 저도 모르게 혹 한 것이다. 다음날 배달되어온 책 상자를 보고 어머니는 입을 다물지 못한 채 내 얼굴만 쳐다보았다. 전부 40권이나 되었다.
검은색 비로도 양장으로 꾸며진 책은 책장 한가운데 나란히 진열되었다. 검은 바탕에 금빛 나는 글씨들이 방 주인의 교양과 지성을 말해주는 것 같아 가슴이 뿌듯하였다. 이후, 월부책 값 갚느라 내 주머니는 언제나 텅텅 비어 궁하게 살아야 했다. 그래도 나는 배고픈 소크라테스라 자위하며 은근한 눈길로 책을 들여다보았다.
문제는 월부책 값 다 갚을 동안 몇 권 읽어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번쩍거리고 화려한 책은 내 눈에 충만한 기쁨을 주었고, 기분을 만족하게 해주었을 뿐이었다. 아무것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른 느낌은 주린 배에 헛된 욕망의 가스가 가득 차서 그렇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깨달았다.
이사를 할 때마다 그 책들은 무거운 짐이 되어 나를 괴롭혔다. 결혼할 때까지 정리하지 못하며 이고 지고 다녀야 했지만, 쉽사리 처분하지 못했다. 그 책을 버리려고 작심을 하며 다시 한번 들여다보았을 때, 이미 누렇게 퇴색되어버린 종이가 머릿속 깊숙이 고여서 썩은 내 의식처럼 느껴졌다.
사람들은 버리라고 말한다. 버리지 않으면 비워지지 않아서 다시 채울 수가 없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내게 들어온 물건이나 구입한 것들을 쉽게 버리지 못한다. 고등학생 때 녹음한 음악 테이프, 청게천 벼룩시장을 뒤져 샀던 복사판 LP 음반들은 낡고 닳아서 이제는 음악 소리보다 잡음이 더 크게 들릴 정도가 되었지만, 세월 속에 너덜너덜해지고 아내가 쓰레기라고 말하는 그것들을 나는 여전히 움켜쥐고 있다.
비단 그뿐만 아니다. 책, 가방, 신발, 옷가지들 등등 이미 내게 익숙해진 소지품들은 대부분 마찬가지다. 만일 그것들을 버린다면 내 지난날들도 함께 사라지지 않을까, 하늘에서 갑자기 낯선 땅으로 뚝 떨어진 별처럼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면 너무 지나친 비약일까?
지구상에 인간이 생겨난 이후로 끊임없이 물건들을 만들어왔다. 의식주에 필요한 물건들은 물론이요 기호품이나 자신을 과시하기 위한 것들까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이도 생산하고 있다. 그 양이 많아질수록 사람들은 서로 경계하고 경쟁적으로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고 서로 다투며 살아왔다. 더 큰 것을 가지려고 다른 사람을 짓밟고, 더 많은 것을 채우려고 자신만의 창고를 지었다. 심지어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으려 비밀창고까지 두기도 한다. 그들은 창고 안에 그득히 쌓인 것들을 보며 배를 두드리고 있겠지. 배가 부른 만큼 머리와 가슴은 텅텅 비어가는 것도 모른 체 말이다.
작금의 내 모습이 혹여 그네들과 별다르지 않을까, 비아냥거리면서도 그것들을 부러워하고 있지는 않을까, 중이 제 머리 만져 확인하듯이 가끔 자신의 정체성을 다시 한번 되돌아본다.
산에 가면 허리에 걸린 구름을 보게 된다.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수증기를 잔뜩 끌어모아 몸이 비대해진 먹구름은 눈앞에 가로막힌 산등성이를 넘지 못한다. 구름이 고갯마루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결국 자신이 끌어안고 있는 빗물을 다 쏟아버려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몸이 하얗게 가벼워진 구름이 되어 푸른 하늘을 두둥실 날아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몸이든 마음이든 가벼워진다는 것은 어디라도 오를 수 있고,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닐까? 구름조차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는데 지구상에서 제일 똑똑하다는 우리는 아직도 모르고 있을까. 아니, 너무나 잘 알고는 있어도 실천하지 못한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그러고보면 자연은 확실히 인간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음이 분명하다.
버리고 버리고 또 버리자. 비우고 비우고 또 비우며 사는 연습을 하자. 마음을 비우는데, 욕심을 버리는 데는 지정된 쓰레기봉투가 필요 없다. 그냥 아무 데나 슬쩍 남몰래 내버려도 벌금을 물지 않는다. 아마 개도 안 물어갈 것이다. 다시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내 손은 아무것도 쥐고 있지 않아야 한다. 지금 이 순간 아직도 버리지 못하고 움켜쥐고 있는 것은 없을까 내 가슴 속을 찬찬히 들여다본다. 쉽사리 보이지는 않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