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를 발견하는 유쾌한 그래픽 디자이너
「덕화맨숀」을 가본 적이 있습니다. 약 10년 전 무더운 여름날 건국대학교 인근 골목이었습니다. 시간이 묻은 작은 공동주택은 아름다운 식물들에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조밀한 식물 사이로 보이는 2층 집, 푸른 잎 사이로 드는 볕은 편안함을 만들었습니다. 작은 풍경을 보며 도심 속 낙원을 만난 것 같은 심상을 느끼낄수 있었습니다.
「덕화맨숀」이라는 이름을 다시 만난 건 2019년 SNS에서였습니다. 피드엔 을지로에서 봄직한 글씨체로 디자인된 이미지들이 채워져 있었습니다. 반가웠습니다. 을지로 길목에서 마주쳤던 글씨가 반가웠고, 화양동에서 만났던 작은 낙원이 떠올라서 반가웠습니다.
'덕화 德化'라는 말은 '하늘의 덕으로 옳지 못한 것을 감화해 바꿔낸다'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화양동에 위치한 「덕화맨숀」도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각기 다른 모습으로 모여 살며 갈등이 있을지라도 결국엔 서로에게 모범이 되어주고 조화롭고 아름답게 살길 바라는 마음에서 지어진 이름일 것입니다.
동명을 쓰는 「덕화맨숀」의 그래픽 작업을 보고 있자면 그와 맥을 같이 한다는 것이 느껴집니다. 빛이 바랜 글자를 발견해 그 안에 담겨 있던 가치를 새롭게 만들어냅니다. 새로움은 우리의 일상으로 다시 들어오게 됩니다. 덕분에 글자는 낡았다는 이유로 사라지지 않습니다. 지난 시간 간직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맞이하게 됩니다.
오래된 글자를 모티브로 작업하는 이유를 물은 적이 있습니다. 그는 "재미있어서."라는 명쾌하고 짧은 답을 주었습니다. 자신이 어떤 일을 좋아하는지를 알고, 그 일을 통해 타인과 나눌 수 있는 '재미'를 만들어 냅니다. 그렇게 쌓인 재미는 귀하지 않았던 것들까지 귀하게 만듭니다. 자신으로 시작해 우리가 되는 최동준 디자이너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목차
최동준 이야기
작업 이야기
공간 이야기
내일 이야기
최동준 이야기
저는 을지로에서 한글을 기반으로 디자인 작업과 개인 작업을 하고 있는 최동준입니다. 그래픽 스튜디오 ‘덕화맨숀'을 운영 중입니다.
그래픽 디자이너로 탄탄하게 기반을 다지고 계신 것 같습니다. 지나오신 과정이 궁금합니다.
저는 지금 그래픽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지만 미대 입시를 거쳐 디자이너가 되지 않았어요. 그래서 그림 보다 글자를 좋아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원래는 충주대에서 경영학과를 전공하고 있었어요. 1년 정도 공부를 하다 ‘나는 디자이너의 길을 가야겠어!’하며 때려친 스토리가 나오는 서사이면 좋겠지만, 저의 경우는 매형의 추천으로 디자인 공부를 하기 시작했어요. 당시 매형은 김해에서 디자인 회사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저에게 디자이너로의 삶을 제안했고, 부산에 있는 학교를 가게 되었습니다. 당시 공부할 수 있도록 매형과 큰누나가 많은 지원을 해주었었어요.
학교를 다니게 되면서 많은 변화가 생기게 되었어요. 그중 디자인이 재밌다는 것을 알게 된 것과 지지해 주시는 교수님을 만났다는 것이었어요. 그렇게 학교를 다니며 매형 회사에서 1년 정도 일을 하다가 더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교수님의 도움으로 서울로 오게 되었고, 디자인 대학원도 다니게 되었어요. 이후 디자인 스튜디오도 만들고 새로운 작업들도 하게 되었어요.
가업이라 하시면 집안 전체가 다지인을 업으로 삼고 계신 걸까요?
아니요. 그렇진 않아요. 매형은 일을 함께 해줄 사람이 필요한 상황이었어요. 그래서 제게 하고 있는 사업을 함께 하는 걸 제안해 줬었어요. 당시 전 뭔가를 하고 싶다는 게 명확하지 않았던 상황이었어요. 미래에 대해 불투명하기도 했었고, 디자인이라는 것이 재밌어 보이기도 해서 시작했던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해 보면 무모했죠. 이 넓디넓은 디자인 세계를 생각해 보면 참 겁이 없었네요.
서울에 올라오신 것이 디자인 공부를 하게 된 것만큼 큰 변곡점이 된 것 같아요. 어떻게 올라오게 되신 거예요?
첫 학기엔 낮엔 회사를 다녔고 밤엔 대학원을 다녔어요. 학교도 다니고 돈도 벌고. 그렇게 한 학기를 하고 '도저히 이렇겐 못하겠다' 싶어서 디자인 스튜디오를 만들면서 학교를 다녔어요. 처음엔 일도 많이 없었고 수업도 밤에 해서 어디든 많이 배우러 다녔어요. 주간에 듣고 싶은 대학 수업이 있어서 교수님께 메일을 써서 같이 듣기도 하고, 디자인 혹은 다양한 분야의 워크숍이 있다고 하면 어디든 찾아갔었어요. 어떤 걸 배우는 거에 고팠던 시기였어요. 아마 제가 입시미술 과정을 거치지 않고 중간에 디자인을 공부하다 보니 배움의 욕구가 더욱 컸던 게 아닐까 해요. 제가 다녔던 학교 특성상 2년 안에 전문적인 디자이너를 양성하는 것이 학교의 목표라서 다양한 스펙트럼의 생각과 디자인에 대한 깊이 있는 고민을 더 하고 싶었어요.
저 스스로에게 그 자세를 가지고 있는 게 좀 좋아 보여요. 계속 뭔가를 배우려 하는 욕심이 생겨나는 지점이요. 그게 삶을 계속 더 나은 디자이너가 될 수 있도록 나아가게 하는 동력이 되어주는 것 같아요.
‘배운다’는 것이 여러 가지가 있잖아요. 기술적인 것, 철학적인 것 다양할 텐데요. 스스로가 생각하는 더 나은 디자이너가 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저는 정체되지 않는 디자이너라고 생각해요. 디자이너는 계속해서 ‘그들이 원하는 것’ 혹은 디자이너로서 ‘표현할 수 있는 다양성’에 대해 계속 고민하고 연구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예전에 읽었던 글 중에 '1) 디자이너가 진부한 아이디어를 평범한 이미지로 해석하거나, 2) 형태와 내용을 결합시키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거나, 3) 주어진 공간에서 문제를 2차원적 구성으로 해석하지 못했을 때 디자이너는 자신의 시각적 이미지에서 자기 눈으로 본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암시할 수 있는 가능성을 빼앗게 된다'는 글이 있었어요.
하나에 갇혀 있지 않고 유연한 상황에서 생각하고 다양한 방면에서 고찰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 계속 배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내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있어야 나오는 것들도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작업이야기
작년(2022) DDP에서 열렸던 ‘0toX(제로투엑스)’ 포스터 작업이에요. 제를 대표하는 프로젝트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혹은 즐겁게 한 작업이라고 생각해요. 기존 작업방식의 틀을 깼던 포스터 중 하나인데 그 당시에 많은 고민이 있었어요. 작업을 하면서 다양한 변화에 대한 생각이 있어야 했는데 그 당시엔 계속 어디에 고여 있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었어요. 디자인 작업물로 표현하는 것 중에 계속 벽에 갇혀 있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어요. 그 벽을 허물고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싶다는 욕구가 생겨났었는데 ‘0toX’ 포스터 작업을 하면서 이전에 있었던 틀을 깨고 재밌게 했었어요. 당시 디렉터였던 김성진 작가님이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주셨고요.
모니터에서 나와 직접 재료를 구하러 골목을 탐색했어요. 포스터에 을지로에서 발견한 오브제를 올려놓고 스프레이를 뿌려가며 작업했어요. 때문에 하나도 같은 포스터가 나오지 않았어요. 그 이후로 오프라인 작업을 계속했던 것 같아요. 이제 그 경계를 계속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작업이었어요.
이후 김영인 감독의 ‘을지로들’ 다큐멘터리에 들어가는 그래픽 다자인을 했어요. 을지로를 구성하는 각 정체성을 테이프의 질감에 비유해 표현했어요. 예전 같았으면 컴퓨터로 글자를 그렸을 거예요. 화면 속에서 그리고 이후 질감을 추가했을 텐데, 실제 테이프로 글자를 그려보는 형태로 작업을 하게 되었어요. 더 다양하게 고민하게 된 것이죠.
화면 안과 밖을 연결해 주는 작업이 시작된 거네요. 궁금해져요. ‘0toX’가 앞으로 많은 변화의 시작이 된 것 같아요. 조금 더 지나 봐야 이 시점이 더 명확하게 규정되겠지만 지금 말씀해 주신 것과 이후 작업하시는 과정을 봤을 때 즐겁게 작업하시는 것이 느껴졌어요.
어느 시점에서 디자이너 최동준에서 개념 미술의 영역으로 일부 넘어간 그 경계에 있지 않을까 싶어요.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좀 더 기반을 만들어가는 과정으로 느껴져요. ‘글자’라는 요소는 계속 가져가겠고, 그 위에 담아내거나 이야기해야 될 것들이 조금 더 자기의 색과 영역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 같아요. 새로운 땅을 개간하기 시작한 시점처럼. 후에 디자인과 개념미술 어느 사이의 영역들을 만들어 가실 것 같은 상상을 하게 됩니다.
저는 그림 그리는 것을 오랫동안 훈련하지 않았어서 글자를 더 좋아하게 되었는지 모르겠어요. 학교를 다니면서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을 찾다 보니, 글자를 좋아하게 되었던 거죠. 그리고 학교 다닐 당시 타이포그래피 교수님을 존경하고 잘 따랐어요. 교수님을 좋아하다 보니 그분의 보폭에 발맞춰서 계속 따라갔던 것 같아요.
작업을 해나가시는 과정은 어떤 경로로 진행되는지 궁금해요.
크게 두자기로 나눠져 있어요. 하나는 글자를 그리는 레터링이고, 다른 하나는 포스터 속에서 그래픽으로 글자를 다루는 작업이에요.
레터링 작업부터 말씀을 드려보면 1) 먼저 글자가 가졌으면 하는 뉘앙스나 분위기에 대해서 글로 정리를 한 다음에 2) 참고할만한 레퍼런스를 찾고 3) 거기서 더 뾰족한 특징을 정의하고 맞는 도구를 찾아서 그리는 편이에요. 예를 들어 가로획과 세로획의 대비가 심한 레터링이 필요하면 납작 펜 혹은 다른 도구를 사용해서 실제로 글자들을 그려봐요. 이후에 일러스트로 옮겨와서 디지털화시키는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어요.
포스터 디자인에서의 글자는 좀 다른데, 제가 보편적으로 많이 표현하는, 메인 그래픽이 타이포가 되었을 땐 단순히 글자가 읽히는 것 이상의 요소들이 필요해요. 글자가 레터링처럼 글자 자체로 들어가는 게 아니라 하나의 그래픽 요소로 들어가야 해요. 때문에 포스터가 가지는 어떤 목적에 맞는 시각언어를 전달해야 되어야 하죠. 이런 이유로 뉘앙스로 더 많은 이야기를 해줘야 해요. 적합한 글자들을 대략적으로 그린 다음에 그 글자의 그래픽 요소들을 어떻게 더 입힐지 생각 과정을 거치며 어떻게 더 그래픽적인 형태로 다가갈 수 있을지 계속 고민하는 것 같아요. 그 후 그래픽적 요소들로 레이어로 쌓아 올려가는 과정을 거치고 있어요. 포스터라는 한정적인 공간 안에서 밀도 있게 디자인이 들어가고, 내용전달에서는 가독성을 고려합니다. 또 어떤 요소들이 먼저 보이고 그다음 차선으로 보일 것인지도 생각하면서 작업을 진행합니다.
글자체 디자인이라는 게 결과적으로 읽히는 문자를 기본으로 삼고 있고 의미가 명확하게 전달되는 기호인데 그것의 뉘앙스를 바꿔줄 수 있는 것을 내가 주무를 수 있고 언어가 가진 성격과 색을 바꿀 수 있는 것이 디자이너로서 재미난 요소라고 느껴져요.
예전에 을지로에 있는 글자들로 달력을 만드는 워크숍이 있었어요. 2019년 1월에 있었던 워크숍이었어요. 그때가 처음으로 을지로의 글자들에 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되었어요. 다 같이 한 공간에서 밤을 새면서 작업을 하는 거였어요. 일종의 해커톤이죠. 저녁 8시쯤 시작해서 다음날 아침 6시까지 작업을 했었어요. 현장엔 와인과 먹을 꺼리들이 준비되어 있었어요. 각 달을 맡은 12명의 디자이너가 앉아서 노트북으로 작업을 하고 새벽 2-4시쯤에 서로 피드백을 했어요. 재미난 경험이었어요.
► 이공일구 을지로 동네 달력 : 텀블벅
달력을 단일한 면으로 만드는 것이었는데 그때 을지로 자료를 수집하면서 골목골목 돌아다녔었어요. 그 과정에서 발견하는 글자들이 재밌었어요. 이후에 술 마시러 노포에 자주 오게 되었었어요. 오고 가면서 좋아하는 글자들과 마주치게 되면서 을지로에 재미를 붙이게 되었어요.
2019년 2월에 사업자를 냈어요. ‘덕화맨숀'이 탄생했습니다.
2019년 중, 후반부터 인스타에서 덕화면숀을 보고 좋아했던 기억이 있어요. 당시 보고 관찰하신 것들로 달력을 만드신 걸까요? 달력을 만들어온 이야기를 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달력은 2020년도에 가로가 긴 가제본을 만들었다가 조그마하게 나온 건 2021년도 달력부터 2022년도 달력이 있어요. 올해도 2023년도 달력이 나올 예정이에요.
달력은 처음엔 주변 지인들에게 주고 싶어서 만들었었어요. 이걸 통해서 수익을 얻겠다는 아니었고 제가 좋아하는 것, 좋아하고 재밌는 것을 찾다 보니 글자들이 이렇게 모였었고 그냥 책으로 만들기엔 기존 아카이빙 책들도 많아서 더 재밌는 방식으로 만들어볼까 하여 달력을 만들게 되었어요. 그렇게 3년간 달력 만들기를 시작하게 되었어요.
처음엔 제가 글자를 다 그렸었어요. 1에서부터 30까지 제가 새롭게 그렸었어요. 좋아하는 것들을 어떻게 재밌게 해 볼까 하다 보니 숫자를 그리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을지로에서 아카이빙 한 글자들과 숫자를 다 그리면 12달이 다 나오니 같이 합치면 좋겠다 생각을 했었어요.
올해 마지막으로 만들어지는 달력엔 어떤 이야기가 담길까요?
이번 달력은 김상원 건축디자이너님과 함께 작업해서 건물까지 담겨 있어요. 글자를 찾다 보니 바깥에 나와 있는 글자뿐만 아니라 건물 안에 있는 글자들도 재밌는 게 많았어요. 그래서 그런 글자를 찾아다니다 보니 생각보다 오래된 건물들이 많음을 알게 되었어요. 독특하고 특이한 구조의 건물이 많아서 오래된 글자와 함께 건물도 함께 담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건축 디자이너님께서 함께 해주셔서 올해는 을지로의 건물까지 함께 아카이빙하게 되었어요.
언젠가는 끝을 내고 싶긴 했었는데, 아무 이유 없이 끝내고 싶지는 않았고, 큰 기획에서 그때가 정해졌으면 좋겠다 싶었어요. 달력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10년, 20년 계속 만들기는 저도 지루하고 재미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래서 때가 되면 유종의 미가 필요하다고 생각을 했었어요. 그러던 와중 산책을 했는데 작년에 찍어 놨었던 건물이 없어졌더라고요. 을지로의 재개발 이슈로 인해서 없어져가는 것들을 달력에 의미를 더 넣고 싶었어요. 사라져 가는 을지로에 빗대어 매해 점점 작아지는 달력을 기획했어요. 22년도엔 12.5cm, 23년도엔 11cm, 24년도엔 9cm가 됐어요. 그렇게 올해가 마지막 달력이 된 거죠. 유종의 미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공간이야기
을지로에서 달력 만드는 워크숍(2019)을 할 당시는 작업실이 집 앞에 있었어요. 아차산 쪽 어린이대공원역 앞에 있는 조그마한 공유 오피스였어요.
지금도 디자이너님의 작업실은 여러 사람이 함께 사용할 수 있는 공유 오피스 형태로 운영하고 계신데 이유가 있으신지, 혹시 공간을 함께 쓰시는 분들 간에 주고받는 영향이 있으신지 궁금해요.
Channel 5 Studio를 운영 중인 창협 디자이너와 함께 공간을 운영하고 있어요. 디자인 작업을 할 때 혼자 하다 보니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어떨지 궁금해서 같은 공간을 쓰시는 분들에게 자주 물어봐요. 특히 창협 디자이너에게 자주 물어보고 도움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저에게 아주 큰 도움이 되고 있어요.
스쳐간 분들까지 다 포함하면 한 20분 정도 같이 공간을 사용했던 것 같아요. 다양한 좋은 사람들과 같이 이야기 나누고 혼자서는 하지 못했을 다양한 것들을 생각할 수 있고, 함께 술 마시기도 하면서 자연히 시너지도 나는 것 같아요. 함께한다는 게 더 귀찮고 더 생각할게 많긴 하지만 그래서 더 재밌고 좋습니다.
20분들도 을지로에 작업실이 필요했고, 을지로가 주는 어떤 이점들 때문에, 두 분 덕분에 을지로를 활용할 수 있었을 것 같아요. 그 덕분에 두 분도 20분과 이런저런 관계를 맺고 서로 피드백을 주고받는 경험을 하실 수 있었겠어요.
보통은 디자이너가 많았나요?
거의 디자이너가 많았던 것 같아요. 공간이 개인 작업을 하기엔 좁은 곳이거든요. 그래서 그림을 그리거나 하기엔 좀 작아서 데스크 작업 위주로 하는 분들이 많았었어요. 건축디자이너도 있고, 포토그래퍼도 있고, 그래픽 다지이너도 있고.
스튜디오 외에도 영향을 주고받은 인물이 있을까요?
얼마 전에 개인전을 연 친구가 있어요. 김을지로라는 친구예요. 이 친구도 우연치 않게 만나게 되었어요. 4년 전 어느 워크숍에 참석했다 알게 되었어요. 이틀간의 워크숍 중에는 한마디도 이야기를 안 하고 있다가 돌아가는 지하철을 같이 타게 되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인스타를 교환하게 되었어요. 당시 게임으로 치면 둘 다 ‘Level. 00’ 이었을 때였어요.
‘Level. 00’이었을때 부터 서로 성장해 나가는 과정을 보고 있었던 거예요. 그 친구가 가는 방향과 하고 싶은 것이 뚜렷하고 차근차근 지긋이 해나가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어요.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이 자극이 되었었어요. 최근에 열린 개인전에 방문했는데 미디어 아티스트로써 자신의 작업 정체성에 대해서 계속 고민을 하고 있고, 고민의 흔적이 전시에 녹아 있는 것을 보면서 분야는 서로 다르지만 자기가 나아가야 하는 방향과 그 고민을 명확하게 생각하고 움직이는 모습에 많은 영향을 받았어요.
재밌는 것을 알게 해 준 장소예요. 전에는 글자를 좋아한다고 해도 뭘 어떻게 좋아하는지 몰랐어요. 그러다 을지로에 있어 보니깐 내가 이런 걸 좋아하는구나를 깨닫게 된 거예요. 길을 걷다 보면 옛날 글자들이 엄청 많이 있잖아요. 특이하고 재미있는 구조를 가진 디자인된 글자들이 많은데 그것들을 발견하다 보면 재밌고 작업의 방식을 풀어가는 것을 배울 수 있는 교본 같아요. 자연스럽게 내가 좋아하는 것들 내가 재밌어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그것을 어떻게 시작해 볼 수 있을지를 알려줬어요.
을지로라는 장소가 디자이너 최동준에게 많은 영감을 주는 곳이었구나. 그렇게 준 영감으로 을지로가 다시 해석될 수 있게 되었구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내일이야기
뭔가 뚜렷하게 생각이 들지는 않아요. 매번 바뀌는 상황 속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선택하다 보니 또 다른 내가 되어 있지 않을까 해요. 그래도 생각해 보면 좀 더 단단해진 형태가 되어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제가 느끼기에 지금은 진흙 속을 걷고 있는 것 같아요. 예전엔 물속을 걷는 것 같았기에 오늘 조금 더 단단해져 있는 거죠. 그래도 아직은 발을 내딛을 때마다 푹푹 빠지기도 하고 살짝 미끄러지기도 하고 신발이 젖어 있어서 걸음이 빠르지 않고 뒤뚱거리며 걸어가는 모습 같아요. 10년 후엔 지금 보다 바닥이 더 단단해져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리고 뚜렷하게, 소소하게 뭔가를 향해 흔들림 없이 걸어가고 있을 것 같아요.
구체적으로 내가 뭔가를 하고 있을 거라고 얘기하고 싶지만 또 바뀔 것 같아서, 바뀔지 모르겠어서 그 말을 삼키게 되어요. 그래도 항상 제게 재미를 주는 것들, 좋아하는 것들을 쫓고 있을 것 같아요.
물속에 있다가 진흙으로 나왔다고 하시니 진화의 과정처럼도 느껴집니다. 조금 더 단단해졌다는 것이 어떻게 보면 내가 뭘 지향하고 싶은지도 알게 됐고, 발견했고, 그걸로 뭔가를 해봤고, 그렇게 해서 생긴 틀도 한 차례 벗어봤고 이런 과정들이 돌아가면서 단단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제 근 미래, 향후 계획된 일이 있으실까요?
아직 확정하진 않았지만 조금 더 나은 제가 되기 위해, 제가 가진 곳간을 더 확장하기 위해 구조를 넓힐 생각을 하고 있어요. 곳간 리모델링을 위해 공부를 더 해보려고 생각 중이에요. 더 나은 방향을 위한 무엇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건 아직 미완이라 명문으로 남겨 놓을 수 없어서 후에 공유드릴게요.
재미를 발견한 유쾌한 디자이너
경영학도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채워나가는 그래픽디자이너로 자신의 길을 열어간 최동준의 서사 속에 스스로를 찾아가는 과정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 때마다 도와주는 사람, 귀감이 되어주는 사람, 객관적인 시선을 이야기해 주는 사람, 사람 사람 사람이 함께 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발견한 것들을 나의 재주로 가공하고, 그렇게 만들어진 결과를 감사한 분들과 나눠가고자 한 마음의 온기가 느껴집니다. 그 따뜻함으로 낡은 골목을 보았기에 옛것들, 유행이 지난 것들로 치부되었던 글자들이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되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인터뷰 중 가장 많이 중첩되었던 단어는 ‘재미'였습니다. '재미'라는 말의 어원은 '늘어날 자滋' + '맛 미味'라고 합니다. 내가 맛나다고 느끼고, 기분 좋아지는 것을 계속해서 늘려 나갈 때 받을 수 있는 보상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는 끊임없이 재미난 것을 찾습니다. 그 결과 만들어진 성과는 스스로의 삶을 성장하게 하고 나아가 타인도 그가 깔아놓은 길 위에서 즐거울 수 있도록 합니다. 그의 재미가 쌓여 더 많은 이들과 나눠지는 모습을 그려봅니다. 이렇게 인터뷰를 마무리합니다. 긴 시간 이야기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최동준의 작업실
최종준의 작업실 이동
최동준 인스타그램 : @oveeeerface
덕화맨숀 인스타그램 : @duckhwa_mansion
덕화맨숀 홈페이지 : 쇼룸
노트폴리오 인터뷰 : 왜 한글 티셔츠는 안 이쁠까
작은도시전 : 한글티셔츠는 왜 이쁠까
을지로 작업실 동료 디자이너
오창협 디자이너 : @ch.5_studio
연다솔 디자이너 : @ours_design2020
임온익 포토그래퍼 : @onik.forestlim
윤자영 디자이너 : @tokak_goods
함께한 예술가
0toX(제로투엑스) : @0tox_movement
김상원 디자이너 : sangwonkim.com
김을지로 작가 : @uljiro
최동준의 PLAY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