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참지 않아도 되는 것

여자의 속 이야기 6화

by 김수다

“아프지 않았어? 엄마한테 말을 하지.“

“아, 그저께 학교에서 넘어졌는데 지금은 괜찮아. 그리고 엄마가 아파도 좀 참아야 한다고 했잖아.”


얼마 전 아이 다리에 로션을 발라주다가 커다란 멍을 발견했다. 깜짝 놀라 묻는 내가 민망하리만큼 무덤덤하게 말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니 많이 큰 것 같아 기특하면서도 아파도 참으라 했다고 미련하게 꾹 참았을 모습에 마음이 쓰렸다.


아이에게 아파도 참으라는 말을 자주 했었나 보다. 생각해 보니,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는데 병원에서도 특별한 이상이 없다고 하는데도 방귀가 나오려고만 해도 배가 아프다고, 하루에도 수십 번씩 배가 아프다고 하는 예민한 아이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엄마 손은 약손, 배를 살살 문질러주고 좀 참으면 괜찮아질 거라고 안심시켜 주는 것뿐이었다.



정말 참으면 좋아지는 걸까.


옛날부터 참는 게 미덕이라고 배웠다. 특히 여자들에게는 참고 삭히는 것을 강요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귀머거리 3년, 장님 3년, 벙어리 3년’이라는 속담만 봐도 그렇다. 시집간 여자는 가정의 평화와 양가의 원만함을 위해서 감정을 드러내지 말아야만 했다.


정말 여자는 참아야만 하는 걸까.


여자는 고통을 감내하며 살아간다. 누군가의 딸, 아내, 며느리, 엄마로 살다 보면 어느새 ‘나’를 잊게 된다. 아파도 아픈 줄 모르는 여자, 아파도 아프지 말아야 하는 그런 여자, 자신의 고통이 가장 마지막이 되어 버린 여자가 된다.


나 역시 그렇게 살아가는 여자 중 한 사람이다. 참는 것이 좋은 것이라고, 참으면 참을수록 기특하고 대견하다고 칭찬을 받으며 자랐다. 흐르는 시간이 약이라 생각하고 나의 몸과 마음을 내버리고 살았다. 아픈 걸 당연하게 여기고 미련하게 살았던, 닮고 싶지 않았던 엄마의 모습이 나에게도 있었다.

내 딸은 엄마의 이런 모습은 닮지 않기를 바란다. 곪고 터지는 것도 모르고 참고 사는, 대대로 전해져 온 인내의 사슬에서 벗어나기를 바란다. 모든 걸 참을 필요는 없다고, 우리가 안고 가야 할 많은 고통 중에는 참지 않아도 되는 것이 있다고, 그렇게 말해주고 싶다.




나는 초경 이후부터 줄곧 생리통이 심했다. 중학교 1학년 때, 자물쇠가 달린 비밀 일기장에 이렇게 적었다.

‘생리할 때 너무 아프다. 어른이 된다는 건 이런 고통이 있는 거구나.’


아기를 낳고 나면 생리통이 좋아진다는 말을 믿었지만 나에게 그런 행운은 오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나는 생리통을 호소하는 환자들이 더욱 안쓰럽다. 미간을 찌푸리며 말할 때면 그 아랫배의 통증이 나에게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 같다.


진료실을 찾은 환자들에게 먼저 생리 안부를 묻곤 한다. 규칙적인지, 양이 많지는 않은지, 생리통이 심하지는 않은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심한 생리통 때문에 결석이나 결근을 하거나 응급실에 갈 정도로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많아서 놀랄 때가 있다. 왜 진작 병원에 오지 않았는지, 왜 약은 챙겨 먹지 않았는지, 왜 그렇게 힘들게 사는지 모진 말들이 속상한 마음대신 쏟아져 나오면, 오히려 참지 못한 자신을 부끄러워하는 대답이 돌아온다.


“생리통은 참아야 하는 거 아니에요?“

“생리는 원래 아픈 거잖아요. 저만 생리하는 것도 아닌데요.”


통증은 여자의 몸에서 시작되었지만 그 고통을 더 깊게 만든 건 참아야만 한다고 가르쳤던 사회적 분위기가 아니었을까.


생리통만큼은 제발 참지 않았으면 한다. 의학용어로 월경곤란증(dysmenorreha)이라고 하는 생리통은 생리 기간 동안 자궁에서 만들어내는 프로스타글란딘(prostaglandin)이라는 물질이 범인이다. 프로스타글란딘은 아기를 낳을 때처럼 자궁의 수축을 일으켜 자궁으로 가는 혈액의 양을 감소시키고 통증을 유발하는 말초 신경의 과민성을 증가시켜 통증을 일으킨다. 따라서 생리통 완화를 위해서는 프로스타글란딘을 제거해 주거나 생리를 하지 않도록 하면 된다. 초음파 검사를 통해 자궁과 난소, 골반 내 장기의 구조적인 이상에 의한 이차성 생리통과 구조적 이상 없이 발생하는 일차성 생리통으로 구분할 수 있으며 비스테로이드성소염진통제(NSAIDS) 계통의 진통제, 경구피임약, 자궁내장치(미레나) 등으로 치료할 수 있다.




살다 보면 참아야 하는 고통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참는 것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말하지 못했던 고통과 삼킨 말들이 내 속에서 혹이 되어 버리진 않았는지 나를 들여다보았으면 한다.

아픈 게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참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 여자로 태어나 매달 아픈 아랫배를 부여잡고 사는 것이 억울하지 않도록 말이다. 여자의 고통을 불편해하고 참는 것을 예의로 삼는 세상에서 더 이상 참는 여자가 아니라 스스로를 돌보는 여자가 되자고 말이다.


keyword
금요일 연재
이전 06화여자의 아이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