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tage라는 것은 인위적으로 당대 어떤 디자이너 혹은 회장님이 이렇게 해! 해서 쉽게 타이틀을 얻을 수 없다. 문화유산은 당대 보다도 후대에 드러난다. 후대에서 돌아보았을 때 진정한 가치가 느껴지고 이를 계승하고자 하는 욕구가 생겨야 비로소 Heritage의 완성이 된다. 그것이 종교이든 철학이든 정치적 신념이든 아니면 시대를 거스르는 절대미(美)이든 짧은 시간에 결론 내리기 어렵다. 시대의 착오로 혹은 그릇된 신념으로 이루어진 선대의 유산은 얼마 못 가 금방 퇴화되거나 철폐된다. 시간은 가치가 없는 것을 이어가지 않는다.
현대그룹 계동 본사 (1983년 준공)와 현대 엔지니어링 사옥
80년대에 지어진 현대의 사옥은 건물의 상단에 창 크기의 작은 아치를 연속해서 넣는 것으로 건물의 일관성을 부여했다. 당시현대는 사옥을 지을 때 계동 본사를 사이즈만 다르게 그대로 카피해서 마치 똑같은 케이크를 적당한 크기로 잘라서 얹어 놓은 듯이 지었다. 이 건축 패밀리룩은 전국에 있는 현대 사옥뿐 아니라 잠실에 있는 아산병원과 멀리 블라디보스토크에 있는 현대호텔(현재 롯데호텔)에까지 적용하였는데 당시에 현대 자동차에도 도입되지 않던 패밀리룩을 현대 그룹 사옥에 넣는 것은 과연 누구의 결정이었을까? 그리고 왜 이런 결정을 하게 된 것일까?
현대아산 병원과 블라디보스톡 현대 호텔 (현 롯데호텔)
이 같은 결정은 그룹 내 주요 인물에 의한 것이었을 것이다.그러나 이것은 결정권자의 디자인 취향 이라기보다는 당시 현대그룹의 기업문화에서 기인한 자연스러운 결정이었을 수도 있다.
건축을 설계할 때 사람이 머무는 공간을 계획하는 평면 디자인 외에도 건물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는 입면 디자인을 한다. 물론 평면과 입면은 유기적으로 연관성이 있어야 하고 전혀 별개로 각각 디자인하는 것은 좋은 방법은 아니다. 그런데 만약 한 대기업이 앞으로 지을 모든 건물의 입면을 똑같이 하기로 맘먹는다면 설계하는 과정에 있어 새로운 디자인 작업에 소요될 수 있는 상당한 시간을 절약할 수 있었을 것이고 따라서 완성도 앞당길 수 있었을 것이다.
당시 이러한 계열사 사옥의 패밀리 룩은 현대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기업별로 선호하는 마감 재료나 스타일이 있을 수 있고 의도적으로 같은 어휘를 쓰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중 제일 눈에 띄는 것은 교보의 빌딩들이었다. 1983년에 지어진 광화문에 있는 교보 빌딩은 당시 스타 건축가였던 시저 팰리의 작품인데 도쿄 주일 미국 대사관 건물과 입면이 똑같이 생겼다. 아무리 자기 작품이지만 기존 작품과 똑같이 카피하기를 먼저 희망하는 건축가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 신용호 교보생명 회장의 강력한 요구로 같은 디자인으로 지어졌다고 한다.
광화문 교보빌딩과 주일 미국 대사관
그런데 문제는 이후에 건설한 전국의 교보빌딩 사옥을 건축가의 동의 없이 똑같이 복제해서 지었다는 것이었다. (현대와 교보 누가 먼저일까?) 나는 이 사실을 십수 년 전 지방 출장을 갔을 때 '어? 어디서 본 건물인데?' 하고 직접 발견하고 의문을 품게 됐었다.
결국 시저펠리는 이후 교보생명에 저작권 소송까지 걸었다고 하니 당시 건축주로서 국내 대기업들의 소양이 어떠했는지를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자동차와 마찬가지로 계열사 사옥에 패밀리룩 도입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각 대지의 상황, 컨텍스트 그리고 건물의 실 사용자의 요구사항에 맞춘 프로그램 구성, 그에 맞는 비례와 또한 지어지는 그 시기와 지역에 맞는 가장 합리적 재료, 최신 공법을 고려하는 건축가의 섬세한 작업이 다시 필요하다는 인식이 없었던 것이다. 최소한 건축가를 존중하는 태도라도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렇다면 당시 국내 대기업의 건축 문화는 모두 실용성 만을우선시하거나 건축가를 무시하는 분위기였을까? 한국 근대 건축사에 큰 획을 그었던 아래 두 사진의 건물을 보면 꼭 그런 것은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985년 김수근 건축가 유작 벽산그룹 사옥 (현 게이트웨이 타워, 좌)과 1983년 대우에서 지은 서울 힐튼 호텔 (김종성 건축가)
위에서 언급한 현대그룹의 기업 문화의 뿌리는 아무래도 창업주의 배경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현대그룹이 창업주 정주영 회장이 어린 시절 없는 형편 때문에 집을 가출하여 고생 끝에 세운 자수성가형 기업(1947년 시초)이었다. 그것에 반해 라이벌 삼성 그룹은 전통적으로 부를 축적한 집안에서 출발한 기업(1938년 시초)으로 창업분야부터 현대와는 달랐다. 삼성이 식료품, 모직, 금융, 언론이 초기 주력 사업이었던 것에 비해 현대는 건설, 조선, 중공업과 같은 매우 모험적이면서도 거친 사업을 일구면서 남성이 다수인 군대식 기업 문화로 이름이 높았다.
삼성과 현대.한국의 근대사를 이끈 쌍두 마차와 같던 두 기업의 정체성은출발점에서부터 차이를 알아볼 수 있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성장한 두 기업은 핸드폰(전자제품)과 자동차를 주력으로 디자인을 빼고 논할 수 없는 회사가 되었지만 처음부터 결이 달랐다. 그리고 그 다름은 두 회사의 제품뿐 아니라 건축물을 포함한 모든 기업 문화에 배어들어 있다.
삼성전자(강남) 현대 자동차(양재) 사옥
삼성은 그룹에서 건립하는 모든 건축물 디자인에 진심인 편이었다. 2008년 완공된 서초 삼성타운(사옥)은 당대 최고의 건축물을 만들기 위해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최고의 디자이너를 찾아서 평균 공사비의 몇 배를 주고 지을 만큼 공을 들였다. 그에 비해 현대 자동차의 사옥은 그룹의 규모나 위상에 비해 조금 부족한 듯한 이미지이다. 양재동에 있는 현대자동차 사옥은 현대가 직접 기획하여 지은 것이 아니라 2000년에 매물로 나와 있던 신축 건물 (서관)을 매입하여 입주한 건물인데 나쁘지 않았는지 바로 옆에 똑같이 생긴 타워(동관)를 하나 더 지어 쌍둥이 건물을 만들었다. 물론 현대 그룹도 최근엔 경영진의 세대교체가 되면서 점차 세련 되어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다른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어디에든 문화가 꽃피우려면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