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어느 헬스 유튜버의 영상을 우연히 봤다. 노력과 재능을 주제로 올린 영상이었고, 뜻하지 않게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유튜버는 '노력은 절대로 배신하지 않는다. 성공할 만큼 노력하는 자만이 성공한다.'라는 메시지를 던졌던 이영표 전 국가대표 축구선수의 말을 비판하고, '성공은(축구는) 재능에 따라 좌우되고, 약간의 운이 더해져 완성된다.'라고 했던 전설적인 축구선수 마라도나의 이야기를 인용한다.
1. 재능은 중요치 않고 오로지 노력으로만 성공했다고 말하는 것은 '이미 성공하여 우월한 지위를 가진 자'의 언어이다.
2.이영표는 "정확하게 노력한 만큼 발전하고 이룬다."라고 말한다. 일반적인 국내 축구선수보다야 이영표가 훨씬 더 성공했지만, 월드클래스 선수들과 비교한다면 어떨까? 그보다 훨씬 더 위대한 리오넬 메시와 비교하면 이영표는 얼마나 나태했던 걸까? 필립 람과 비교하면 그는 얼마나 불성실하게 훈련했던 걸까?
3. 이영표와 같은 노력 맹신주의자들은 자신보다 더 성공한 사람을 만나면 입을 다문다.
4. 축구는 재능과 운이라고 말하는 마라도나는 과연 노력을 안 했을까?
5.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삶에서 나름의 최선을 다하기에, 오히려 성공 여부에는 재능이 훨씬 더 중요한 게 아닐까?
6. 노오오오력을 외치는 사람들의 최대 실수는 '남들은 노력 안 하는 줄 안다.'는 것이다.
7. 세상에서 가장 효과적인 동기부여는 '자신의 재능을 발견했을 때'이다. 그래서 재능 있는 자들은 재밌게 더 노력할 수 있다.
8. (얼마전 유퀴즈에도 출현하신) 장미란 전 역도 선수는 3개월 훈련하고 전국체전 1등을 한다.
9. 노력과 무관하게 우리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요소들이 많다. 재능으로 성공했다는 말은 재수없게 들릴 수 있고, 꿈꾸는 아이들에게 비수처럼 꽂힐 수 있다.
10. 하지만 노력'만' 한다면 결국 성공한다는 달콤한 거짓말은 더더욱 나쁜 것이다. 죽어라 노력해도 결국 꿈을 이루지 못하는 다수의 아이들의 몸과 마음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세상엔 노력만으로 되지 않는 일이 많다는 걸 확실히 알려줄 필요가 있다.
11. 재능으로 많은 일들이 판가름 나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력했으면 좋겠다. 아무리 긁어도 5등밖에 나오지 않을 복권이라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긁었으면 좋겠다. 노력으로 다 되는 건 절대 아니지만, 재능이 없는 사람이 노력마저도 하지 않으면 정말 아무것도 되지 않기 때문이다.
영상을 다 보고, 나의 삶을 돌아보며 고민해보았다. 지금까지 살아오며 나름대로 크고 작은 일들을 성취하는 삶을 살았는데, 과연 나의 작은 성공들에는 운/노력/재능이 얼마큼의 퍼센트로 기여를 했을까? 과거를 회상하면 삶을 허비하거나, 좌절하여 엎드러져 있거나, 게으르고 방탕하게 시간을 보낸 기억이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나는 인생의 고비와 중요한 전환점을 만날 때마다 되돌아보아도 후회가 없을 정도로 몸이 부서져라 노력을 해왔다. 대입이든, 군대든, 취준이든, 돈 공부든 스스로 약속한 시간 동안은 가슴에 손을 얹고 양심에 거리낌이 없을 만큼 죽어라 노력했다. 그래서 그나마의 성과를 내왔다는 생각이 든다.
출처: 심슨네 가족들
하지만, 저 유튜버가 말하는 것처럼 재능을 발견한 사람이 노력하기도 쉽고, 노력이 재밌어지고, 자신의 노력에서 의미와 목표를 찾을 확률이 높아진다는 걸 염두에 둔다면, 나의 노력의 결이 사뭇 달라진다. 나는 (수능) 공부를 아주 늦게 시작한 학생이었다. 그럼에도 서울권 대학에 들어갈 수 있었던 까닭은, 물론 공부를 열심히 해서 등급을 올린 탓도 있겠지만, 결정적으로 '수시 논술'을 잘 봤기 때문이다. 논술이 잘 맞았던 건 내가 학창시절 내내 "수업시간엔 책 좀 읽지 마라."는 교과선생님들의 지적을 숱하게 받을 만큼 엄청난 독서광이었기 때문이고, 운 좋게 글쓰기 재능을 발견한 덕택이 컸다. 심지어 시나 소설 같은 문학을 쓰는 재능이 아니라 비평이나 논술문을 잘 쓰는 글쓰기 능력이었다. 이것은 매우 큰 운이었다.
대입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국문과에 들어갔을 때에도 글쓰기 재능은 끊임없이 빛을 발했다. 문학 창작 동아리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철학 수업을 들고, 문학이론을 독학하며 죽어라 노력한 것도 사실이지만, 내가 신춘문예에 처음 도전하며 곧바로 등단할 수 있으리라 자신감이 있었던 것도 애초에 나의 재능을 믿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도전한다면 재밌고 신나게 노력할 거라는 것도 예상할 수 있었다. 예체능에 재능이 전무하고, 외모가 뛰어나거나 부잣집 아들도 아니지만, '글쓰기' 하나만큼은 범인들보다 잘한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출판사에 입사하기 위해 취준 생활을 할 때에도 마찬가지다.
글쓰기 재능은 군대에 갔을 때에도 많은 도움을 주었다. 훈련병 때 차출되어 사단장 편지를 썼고, 연대에서 서평대회 최종심에 뽑혔다. 학창시절에 나의 부모님은 컴퓨터와 게임기 등을 매우 엄격하게 제한했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독서밖에 없었다. 그래서 어린 나이치고는 정말 많은 양의 책을 읽었다. 요즘 학생들은 숏폼 콘텐츠와 스마트기기로 인해 긴 글을 읽지 못하고, 문해력이 떨어져 문제가 된다는데, 내가 십 대일 때는 독서 습관이 매우 잘 길러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으니 이 또한 부모님을 잘 만난 행운이다.
출처: 픽사베이
내 인생의 크고작은 성공들은 노력/운/재능의 삼부작이다. 이번에 내가 새삼스럽게 깨달은 점은 '남의 노력을 무시하지 말 것'이다. 나는 운 좋게 단번에 나와 찰떡같이 맞는 대학교 학과를 찾았고, 전공을 살려 취업을 했다. 그렇기에 주변에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한 친구들에게 섣부른 조언을 하거나 은연중에 그들을 '노력 안 하는 사람'으로 생각한 적이 여러번 있었던 것 같다. 머리로는 그러지 말아야 한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나의 성과에서 노력이 차지하는 비중을 과하게 측정했기에이영표 같은 마음을 갖게 된 것이 아니었을까.
나는 노력과 성공이라는 주제로 글을 쓸 만큼 뭔가를 해낸 사람이 전혀 아니다. '진짜 성공한 사람들'에 비한다면야 내가 이룬 성과들은 너무 초라하고, 별것 아닌 것들뿐이다.
내가 이번 글에서 주목하고자 하는 건 노력도 중요하지만, 내가 노력을 쏟을 만한 재능을 찾는 일의 중요성이다. 그리고 성공은 노력/재능/운이 적절히 배합될 때 이뤄진다는 것을 직시하고, 주변 사람들의 고군분투를 좀더 분명하게 바라보는 시선을 길러야겠다는 점이다.
세상은 몹시 부조리하고, 불공평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의 복권을 끊임없이 긁어야겠다. 그리고 '노력하는 나'에게 필요 이상으로 취하지 않도록 경계해야겠다. 모든 이들이 자신의 삶을 책임감 있게 살아내기 위해 오늘도 얼마나 많은 노력을 쏟았을지 상상할 수 있는 공감능력이 절실히 필요함을 느낀다.
오로지 '나'이기 때문에 실현 가능한 노력과 재능과 운의 세계에서 모든 이들이 행복한 세상이 오길 오늘밤 진심으로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