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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잠전문가 Mar 22. 2024

계절의 정리, 옷장 정리

있는 옷으로 그냥 사는 게 올해의 목표

연예인이 혼자 사는 프로그램, 정리 전문가가 나오는 프로그램을 보면 대개 옷방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사람들이 이고 지고 사는 옷가지가 많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옷에게 방을 하나 내어줄 생각도, 여력도 없는 나는 신혼살림으로 마련한 장롱과 작은 헹거로 어찌어찌 겉옷과 속옷, 가방 따위를 욱여넣고 살고 있다. 매일 입는 옷도 비슷비슷하지만 늘 칼각으로 정리 정돈하는 편은 또 아니라 한 계절을 지낸 옷장 안은 늘 내 정신 상태처럼 심란하다.


나뭇가지에 달린 꽃봉오리가 통통해지기 시작했고, 뒷목을 파고들던 날카로운 바람은 순해진 계절, 옷장을 연다. 고마웠던 기모바지와 기모티, 패딩을 넣어둘 때가 된 것이다. 뒤죽박죽으로 놓인 옷들을 다 끄집어내 입을 옷, 넣어둘 옷, 버릴 옷을 구분해 놓는다. 매 계절 옷정리를 반복하는데 왜 그때마다 버릴 옷이 수북하게 나오는지 모를 일이다.


아니, 알긴 안다. 인정하기 싫을 뿐. 자꾸만 버릴 옷이 생겨나는 이유는 가성비 좋은(사실은 가격만 좋은) 옷을 자꾸만 사기 때문이다. 나는 사람 만나는 일이 중요한 비즈니스에 종사하는 것도 아니요, 거의 집 아니면 도서관에 있기 때문에 평소 저렴하고 편한 옷을 즐겨 입는 편이다. 가벼운 티셔츠와 바지 따위를 가장 많이 사는데 안그래도 저렴한 패스트패션 브랜드에서 할인가로 산다. 한때는 '위아래 삼만 원', 이것을 내 의복소비의 신조로 삼기까지 했었다.

물론 저렴해도 잘만 고르면 삼 년은 거뜬히 입는다. 몇 년 전 만원 주고 산 스파 브랜드의 노란색 경량 반바지는 어떤가. 시원하면서도 편한 데다 어떤 티셔츠와도 잘 어울려서 여름 교복처럼 입고 있다. 시즌오프 할인가로 색만 다르게 여러 벌 구입한 기모 후드티는? 몇 년째 내 겨울 교복이다. 문제는 필요해서가 아니라 단지 '싸서' 산 옷들이다. 왠지 안 사면 손해일 것 같아 사들인 싸구려 재킷과 무언가 한 끗이 이상한 디자인으로 한 두 번 입고 퇴출된 옷들이 한둘이 아니다. 아이 옷도 크게 사정이 다르지 않다. 한참 크는 아이는 한 계절만 지나도 껑충 바지가 짧아지기 때문에 큰돈을 들여 옷을 살 수 없다. 한 철 유용하게 입을 저렴한 옷을 사기에 지인에게 물려주기 애매한 옷들도 수북하다.  




큰 봉지에 옷을 싹 모아 나온 나는 초록색 의류수거함의 입에 하나씩 쑥쑥 집어넣는다. 이것들이 저 먼 어딘가로 옮겨져 쓰레기섬의 봉우리에 쌓이고 있다고 생각하니 죄책감이 턱밑까지 차오른다. 거짓을 말하면 손목이 잘린다는 로마 진실의 입처럼, 의류수거함의 검은 입이 내 손을 앙 물고 놔주지 않을 것 같아 왠지 무섭다.

고저택을 경매로 사들이고, 주말에는 가족별장에서 승마를 즐기는 할머니에게서 물려받은 듯한 올드머니룩이 작년부터 유행이란다. 이 룩의 성패를 가르는 요인이 오직 품질이라는 면에서 나는 정확히 그 대척점의 소비를 하고 있다. 딸아이가 앞으로 살아갈 세상을 위해 환경에 신경 쓰고 싶지만 에코백을 사은품으로 주는 이벤트에 괜히 책을 사고, 텀블러도 주기적으로 사는 나를 보면 기업만 그린워싱*을 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나도 입으로는 환경 환경하면서 그린워싱을 하는 소비자니까. 지구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딱히 하지 않는 우리 남편만이 구멍 날 때까지 같은 옷을 입으면서 진정한 환경운동을 하고 있다.

*그린워싱: Green과 White washing의 합성어, 녹색분칠. 겉으로는 친환경인 척 하지만 속으로는 그렇지 않은 행위


평소 가구나 큰 짐을 잘 들이지 않는 나는 나름 미니멀한 살림을 추구하고 있는데 유독 미니멀 라이프가 안 되는 부분이 옷이다. 대단한 멋쟁이도 아닌 주제에 짜치는(?)것들은 왜 자꾸 사서 옷장에 박아두는 건지... 잔뜩 옷을 버리고 와서 또 한 번 다짐한다. 올해는 정말 옷 사지 말아야지. 특히 싸고 얼마 못 입을 옷. 차라리 비싸더라도 품질이 좋은 옷을 사서 몇 년이고 오래오래 입는 것이 환경을 위한 일이다. 자꾸 싼 가격에 현혹되는 나를 위해 파타고니아나 아크테릭스 같은 브랜드에서 파격 세일 한 번 쏴줬으면 좋겠다.


미루고 미뤄둔 옷장 정리 끝! 시원하게 옷을 버리고 돌아와 한숨 돌린다. 푹신한 소파에 몸을 파묻고 핸드폰을 열어보니 메시지가 도착해 있다. [@@@ 브랜드데이 최대 90%] 아니, 사려는 게 아니고 그냥 눌러나 봤다. 메시지를 보냈으면 읽어야지. 암. 가디건이 만 원대? 엄지가 자꾸 나댄다. 몇 번 안 입고 버릴 미세플라스틱 쓰레기를 사지 않기 위해 나는 과연 욕망의 터치를 참을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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