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백신을 맞고 오늘 하루 종일 무기력한 모습으로 침대 위에서 내려오지 못하고 있었다. 이렇게 있다가 더 무기력해지는 거 같아 쌓아 둔 설거지도 하고, 세탁기 빨래도 돌려보고, 몸에 힘을 조금씩 주며 남은 오후를 보낼 무렵, 둘째 아이 지인으로부터 공원 한 바퀴 돌자며 저녁 먹고 산책할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오늘 하루 청량한 하늘을 선사한 만큼 밖으로 나가고 싶다란 생각도 오후가 되어가니 조금씩 선명해졌다.
일단 타이레놀 두 알 먹고, 약속하고 부지런히 저녁을 먹고 밖으로 둘째를 데리고 나갔다.
나오길 잘했다. 저녁시간은 선물 같았다. 살랑살랑 부는 바람은 산책하기 잘했단 생각을 더 짙게 했으니, 공원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볍다. 공원 안에는 도토리나무도 지나고 은행나무도 지난다. 밤나무도 군데군데 있다.
은행나무 아래는 제법 노란 은행들이 떨어져 있다. 엊그제만 해도 이렇게 떨어지지 않았는데, 어찌 되었든 가을로 가을로 한 걸음씩 다가가고 있는 게 분명하다.
해마다 가을이 되면 두 개의 얕은 산을 지나야 집으로 오고 갈 수 있는 오솔길이 있었다. 집 근처 오솔길엔 내게 단골인 밤나무가 있었다. 산에서 크는 나무이기에 말 그래도 조그맣고 작은 알밤을 주는 밤나무였다.
지금으로 보면 약단밤(?) 정도의 크기의 밤나무 아래로 걸음을 옮기고 뒤적뒤적 알밤을 줍는다.
이 밤나무는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보물섬 같은 곳이었다. 밤나무에 가까이 가기까지 아카시아 나무도 지나야 했다. 밤송이는 바람이 부는 날이면 더 많이 떨어져 있었다. 만만한 나무 작대기를 손에 잡고, 눈에 보이는 알밤을 담아 신발주머니에 담는다. 작대기로 뒤적이다 알밤이 보이면 또 줍고, 밤송이에 붙어있는 알밤들도 하나라도 놓칠세라 하나하나 알차게 챙겨 줍는다. 그중에 벌에 먹은 알밤들도 많다. 아무래도 누군가 키운 나무가 아닌 야생 그 자체 밤나무 이기에 벌레 먹는 건 당연하다. 껍질이 반질반질한 벌레 먹지 않은 온전한 밤을 줍는 건 마치 길가다 동전이라도 줍는 기분이었다. 밤 줍는 건 하루 이틀로 끝나지 않는다.
밤나무에 밤이 다 떨어지기까지 3주 이상의 시간이 걸린 듯하다. 그 시기 하굣길 밤나무 아래서 보물을 줍는 그런 기분은 정말 좋다. 비라도 온 다음 날이면 밤들은 더 많이 떨어져 있다. 신발주머니 한가득 밤을 주워 집으로 가져가면 엄마께선 삶아 간식으로 내어 주셨다.
나보다 남동생은 알밤 줍는 게 더 열정적이었다. 휴일이면 밤 줍는다고 새벽부터 집을 나섰다. 굵기도 제법 굵은 밤을 주워온다며 이산 저산을 휘저어 다녔으니, 한가득 담아온 알밤 중에 굵기가 제법 큰 건 나중에 제사상에 올리신다며 따로 보관하셨다.
해마다 가을이면 알밤 줍던 시간 속에 나를 데려간다. 꿈속에선 아직도 알밤을 찾아다니고 있다. 그 밤나무가 늘씬하게 쭈욱 뻗은 채로 나를 반겨주고 있으니, 아직도 눈앞에 선하게 남아 있는 오솔길의 밤나무들이 매년 가을에 나를 또 그 추억 속으로 데려다주고 있다.
오늘은 둘째아이 친구가 공원서 주운 알밤에 그때의 기억이 소환되어 초가을 완연한 가을을 맞이하고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