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에서 '악마'로

by 김소영

타로카드의 6번 '연인'은 욕심이 들어가지 않은 순수한 사랑을 표현하고 있다. 선악을 알기 전의 에덴동산에서의 사랑처럼 계산이 없는 마치 사랑만으로도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은 동화 속의 사랑 이야기처럼 아릅답다.


그러다 인생 훅 가는 수가 있지만, 어쩌면 상대방을 실험대에 올린 다음에, 가혹한 시련을 통과해야만 결혼 상대자가 될 정도로 꼼꼼하게 고르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나는 당장 연애를 하고 싶은데, 앞에 있는 상대는 눈길 하나 주지 않고 먼산을 바라보거나 나보다 매력적인 사람에게만 관심을 가지고 있는 듯해서 속상하다.


아주 힘겹게 이상형에 가까운 사람과 데이트를 하게 된 다음에도 이 사랑을 지켜나가기란 생각보다 에너지가 많이 들뿐만 아니라, 도대체 그의 마음을 알 수가 없어서 이런 게 사랑이라면 다 때려치우고 싶어진다.


'내가 너무 성급했나, 조금만 참고 카톡을 기다리면 될 것을, 다 된 밥에 재를 뿌렸을까'

처음에는 사랑했다는 것에 의의가 있고 그 모든 허물도 덮어줄 수 있는 아량이 있었는데 점점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연인 카드에서 악마카드로 변하게 된다.


웨이트 경이 고안하고 스미스 여사가 그림을 그린, 15번 악마 카드는 두 남녀가 악마의 제단 앞에 쇠스랑에 묶여 있다. 연인 카드에서 두 사람을 축복하던 천사는 무시무시한 악마로 변해 있다. 순수하게 상대방의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기보다는 오로지 내 것이었으면 좋겠고 서로에게 묶여있길 바란다.

야성적이며 저속한 성적인 충동에 사로잡혀 올바른 판단을 할 수도 없다.


사랑의 감정이 연인에서 악마로 변화되는 시간은 어쩌면 인생을 살아가는 한 때의 강열한 사건이기도 해서 인생을 사는 묘미일 테지만, 그 결과는 처참하다. 두 사람의 연애로만 끝나면 문제가 없겠지만, 아이가 생겨서 책임을 져야 하고 남녀의 사랑에서 책임이 따르는 사랑으로 사랑의 색깔이 순식간에 바뀌게 된다.

난생처음 자신 안의 모성과 부성의 사랑을 깨달으며 거역할 수 없는, 사랑보다 강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혼란스럽다. 이제는 아이의 행복과 미래를 위한 생존의 문제로 사랑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동화 같은 사랑, 영원히 행복하게 살게 된다는 이야기는 어쩌면 지독하게 준비했고 냉철하게 판단한 사람들의 이야기일까?

사랑한 후의 이야기는 전쟁 후의 폐허처럼 가혹하다.

아닐 수도 있지만, 진정으로 사랑받은 공주이거나 예의와 실력을 갖춘 왕자이거나. 아름답게 사랑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사랑에서도 치열하게 준비했거나 연구했거나 운이 좋았을지도.


누구나 사랑에 대하여 꿈을 꾼다. 연인 카드에서의 그림처럼 서로를 온전히 믿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 잠시 15번 악마 카드의 지옥을 경험한다 해도 지옥은 지옥만의 행복이 있을 테니까. 끊을 수 없을 만큼 서로를 속박하고 지치게 하는 그러다 인연이 다했다는 걸 알았는 때, 둘 중 한 사람은 사슬을 벗고 자신의 길을 가고. 그때서야 남아있던 한 사람도 혼자만의 사슬은 의미가 없다는 걸 알고 자신도 스스로 사슬을 풀고 자신의 길로 돌아선다.


연인에서 악마의 사랑으로 연결될 때는 그나마 인생의 에너지가 있을 때이고 어떤 실수도 용납이 가능한 시기일 테지. 나이 들어서 실수하고 서로를 충동적으로 사랑하다 서로의 사슬에 묶여 헤어 나올 수 없는 중독에 빠져있다면 좀 이상하다. 사랑할 때 사랑하고 실수할 때 실수해야지. 인생에서 아직 실수를 만회할 시간이 충분할 때는 그래도 괜찮다.


그래서 지금 사랑에 힘들어하는 모든 남녀들은 사랑할만할 때 사랑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나쁘지 않다.

그 누구도 사랑을 하는 일에 연령을 제한하지도 않지만, 청춘들은 스스로 사랑을 포기하기도 한다. 나쁘다.


그렇다면 방법은 딱 하나가 남는다. 자신을 연인처럼 사랑하는 일이다. 자신을 사랑하는 일은 연령에 상관없고 악마의 사랑으로 나아가지 않아도 된다. 또는 자신을 연인처럼 사랑하는 사람들이 서로 만나 사랑하는 일이다. 누굴 만나든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할 준비를 하게 되는 셈이다. 자신 안의 충동을 조절하는 적절한 악마와 순수하지만 지혜로운 연인의 사랑이 혼재한다면 완벽하고 황홀한 사랑이겠지만.


세상에 온전한 사랑은 없으니 질투가 일고 오해가 생기며 상대방에게 못되게 굴 수도 있다. 자신을 믿고 신뢰하는 사람은 사랑에 실망하는 언짢은 구간도 잘 넘기게 된다.

사랑은 또 다른 형태의 수행이며, 고난의 행군을 마친 공주와 왕자는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는 동화가 진실이 되지만, 동화를 완성하는 사람은 드물다.






keyword
일요일 연재
이전 10화시크릿에 대한 단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