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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림형제 Jun 11. 2023

집밥 요리... 어디까지 가능?

'할 줄 안다' 판별하기 시리즈 ④요리편



뒤뜰야영 요리 쇼다운


필자의 인생 첫 자력 완성 요리는 카레이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보이스카웃에서 '뒤뜰야영'을 하게 되었다. 학교 운동장에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하는 것인데, 여름 방학 중에 이뤄졌다. 선생님들이 미리 공지해 주신 바에 따라, 야영일 저녁을 조별로 자체 요리를 해서 먹도록 하되 선생님들이 그 요리를 평가해서 시상을 한다고 했다.

조장이었던 필자는 어머니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현명하신 어머니는 우리가 만들기도 쉽고 실패할 확률이 적은 카레를 추천해 주시고, 필요한 재료와 만드는 방법까지 알려주셨다.

1. 우선 각종 식재료를 물에 잘 씻는다.
2. 당근, 감자, 양파, 애호박, 돼지고기를 손가락 한 마디 정도 크기로 잘 썰어준다.
3. 기름을 두른 냄비에 돼지고기와 양파를 넣고 볶아준다.
4. 고기가 붉은색이 없어지기 시작할 때쯤 당근과 감자, 애호박을 함께 넣고 볶는다.
5. 대략 볶아졌을 때 물을 붓고 카레 분말을 넣는다.
6. 눌어붙지 않게 휘저어 주면서 세지 않은 불에서 끓인다.
7. 느낌상 다 된 것 같으면 불을 끄고 밥에 부어 먹는다.

초6의 남자아이 수준에서 당시 필자가 할 수 있었던 요리는 계란을 넣은 라면이 전부였는데, 카레는 수준이 다른 레벨이었다. 그럼에도 못 할 것 없다는 자신감이 생겼던 것 같다. 아니, 걸스카웃 애들한테 지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이번 뒤뜰야영 요리 대결에서 우리들의 코를 납작하게 해주고 말겠다는 걸스카웃 애들의 결연한 얼굴들이 떠올랐던 것이다.

평소 스카우트 훈련을 할 때면, 텐트를 치는 일에서는 보이스카웃이 걸스카웃 보다 늘 잘했다. 은근히 경쟁심을 자극했던 분위기 속에서 걸스카웃 애들은 텐트 설치에서 질 때면 약 올라했다. 그런 것도 못하냐며 보이스카웃 남자아이들이 놀려댔기 때문이다.

먼저 상대를 자극한 것은 우리들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요리마저도 이기고 싶어졌다.






계속해서 '할 줄 안다' 판별하기 시리즈를 이어가고 있다.



이번엔 요리 '할 줄 아는' 수준이란 어느 수준인지를 정의해보려 한다.


■ 설정 Set-ups

1. 이 글에서는 요리를 업으로 삼고 있지 않은 일반인이 평균적 가정의 주방환경에서 요리하는 케이스를 상정하여 요리 실력을 판단해보고자 한다.

2. 이 글에서 사용하는 '요리'와 '조리'라는 단어의 구분을 두지 않고 혼용한다.

3. 이런 단계를 나누는 것은 사람에 따라 기준이 다르다. 이 글은 전적으로 필자의 기준으로 단계를 구분해 본 것이다. 다른 기준으로 분류해보고 싶은 사람은 자신만의 분류법으로 나누어보기 바란다.

4. 어느 누구의 법률적, 학술적 검토를 거치지 않았으므로 정답은 없다. 특정 행태가 나쁘거나 좋다는 판단은 부적절하다.






요리의 정의


요리 '할 줄 아느냐'를 판단하기에 앞서서 과연 무엇을 요리라고 볼 것이냐의 선을 정해야 한다. 단순히 덥히기만 한 것도 요리냐, 혹은 요리의 일부 단계만 수행한 것도 요리를 할 줄 안다고 보아야 하느냐 등의 문제를 정리하기 위해서 말이다.


정상적으로 먹을 수 있는 완성된 요리

가장 우선적으로, 요리행위의 결과물이 정상적으로 먹을 만한 음식이어야 한다.

예를 들어, 요리를 위한 재료손질(세척, 썰기, 다지기 등)만 한 상태는 요리가 완성된 것으로 보지 않는다. 인간이 먹을 수 있느냐의 여부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내 가족, 사랑하는 사람에게 만들어 먹일 수 있는 상태인가를 판단해야 할 것 같다. 가족에게 시도했는데 다음부터 안 먹겠다고 하면 정상적으로 먹을 수 없는 것으로 판단해야 한다. 단, 반드시 모두에게 존맛탱 엄지척을 받아야만 한다는 것은 아니다. 다음에도 먹을 수 있는 수준의 맛이면 충분하다.


밀키트, 냉동식품, 즉석식품, 라면 제외

밀키트나 냉동식품, 라면 등을 요리하는 것은 판단 대상에서 제외하도록 한다. 냄비나 그릇에 넣고 가열기구의 전원을 켜는 정도의 동작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장애가 있지 않은 이상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다. 요리 능력을 판별하는 데에 논할 가치가 없다.


단순 가열 요리 제외

계란을 예로 들어보자. 삶으면 완숙 또는 반숙이 된다. 계란을 프라이팬 위에 깨뜨려 살짝 튀겨내면 계란 후라이가 된다. 밀키트 수준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계란으로 각종 야채와 햄을 곁들인 오믈렛을 만든다면 그때부터는 이 글에서의 '요리'의 정의에 해당하는 것으로 본다.

삼겹살을 예로 들어보자, 불판 위에 놓고 굽기만 하면 된다. 밀키트 수준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고추장 양념을 만들어 삼겹살에 발라서 굽는다거나, 삼겹살과 다른 재료들을 꼬치로 만들어 데리야끼 양념을 발라 굽는다면 '요리'에 해당하는 것으로 본다.


디저트, 간식, 음료 제외

케익, 파이, 쿠키, 베이커리, 한과, 떡, 약과, 식혜, 칵테일, 에이드, 쥬스, 스무디, 샤베트, 아이스크림, 초콜릿, 캔디, 등등은 제외한다.


일반적 가정의 주방

대한민국 평균적인 가정의 주방엔 업소용 튀김기나 철판 불판 같은 것은 없다. 패스트푸드점 주방에서 햄버거 패티를 굽고, 후렌치프라이를 튀기고 한 것은 엄연히 요리가 맞다고 할 수 있지만 이 글의 판별대상에서는 제외한다. 군대에서 삽으로 밥을 펐던 경험도 유감스럽지만 여기서는 제외해야겠다.



한 마디로, 일반적인 집에서 해 먹는 집밥을 기준으로 하고자 한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한식 위주의 예시들로 구성되게 된 점은 양해해 주길 바란다.






요리 실력의 척도


요리 '할 줄 아느냐'는 다른 판별과 달리 실력 수준별 요리 가능한 음식을 가지고 단계를 나누어보도록 한다. 왜냐하면, 이것이 훨씬 더 실제에서 직관적으로 이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누군가 갈비찜을 할 줄 안다고 했을 때와 김밥을 할 줄 안다고 했을 때 각기 요리실력이 다르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1단계) 쌀국수, 스파게티, 잔치국수

제작 : 그림형제

쌀국수, 스파게티, 잔치국수는 시중에 이미 국물 육수와 소스를 판매하고 있어 손쉽게 만들 수 있다. 이 정도면 라면 끓일 줄 알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수준이다. 면을 삶고, 마트에서 구입한 소스 또는 육수를 이용하면 끝이다. 기호에 따라 각종 토핑을 추가하는 경우 약간의 재료 손질 작업이 필요하지만 이는 옵션이기 때문에 난이도에는 표시하지 않는다. 면을 삶을 줄만 알면 되는데 라면 좀 끓여본 사람이라면 무난히 할 수 있다.



2단계) 카레, 볶음밥, 김밥

제작 : 그림형제

1단계에 비해 재료 손질이 좀 필요한 요리들이다. 카레와 볶음밥은 감자, 당근, 양파 등의 야채를 적당한 크기로 썰어 주어야 하기 때문에 도마 위 칼질이 필요하다. 그것도 꽤 많이 필요하다. 김밥의 경우는 살짝 난이도가 더 높은데, 사전 조리가 필요한 재료들이 있기 때문이다. 밥에 식초, 소금, 참기름으로 간을 하고, 시금치는 데쳐두고, 우엉은 조려야 비로소 김밥을 말 수 있다. 이 정도면 끼니 해결을 위해 생존 요리를 할 수 있다는 뜻이다.



3단계) 된장찌개, 미역국, 잡채

제작 : 그림형제

재료 손질도 손질이거니와 이제부터는 간을 맞출 줄 알아야 하는 단계다. 즉, 손만 바쁘게 움직이는 수준을 넘어서 후각과 미각으로 맛을 감별하고 조절하는 능력이 요구된다. 찌개와 국은 간이 안 맞으면 먹기가 참 힘들다. 두 번 먹을 수가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끓이면서 간이 잘 맞는지를 확인하고 조절하는 작업이 필수적이다. 잡채는 김밥과 비슷하게 사전 조리가 필요하지만 간장과 기름으로 버무려지는 마지막 단계에서 간 맞추기가 들어간다.



4단계) 닭볶음탕, 녹두전, 고등어조림

제작 : 그림형제

재료 손질과 간 맞추기는 물론이고 불조절 기술이 필요하다. 닭, 고등어를 씻고 손질해서 적당 크기로 자른다거나, 녹두를 불려 두었다가 다른 재료들과 함께 갈아야 하는 등 식재료의 1차 준비 단계가 있다. 뿐만 아니다. 양념을 만들어야 한다. 녹두전의 경우는 반죽에 들어갈 재료들에 간을 해야 한다. 3단계보다 높은 난이도가 요구되는 것은 바로 가열 단계에서의 주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단지 찌개나 국의 간을 맞추는 보다는 조금 더 까다로운데, 고기에 양념이 잘 베어 들도록 하려면 물의 양과 불 조절이 필요하다. 명절 때 전 좀 부쳐 본 사람은 알겠지만, 전 부칠 때 기름과 불의 세기도 적당하지 않으면 타거나 속이 잘 안 익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5단계) 삼계탕, 갈비찜, 꼬막무침

제작 : 그림형제

재료 손질이나, 가열하기 등의 작업이 전 단계보다 어려워진다. 삼계탕의 경우는 들어가는 한약재료가 국물에 우러날 수 있도록 압력솥을 이용하여 끓이기도 한다. 갈비찜도 끓이면서 불조절이 필요하다.

꼬막은 세척과 손질부터가 고된 일이다. 대충 물에 씻어내는 수준으로 해서는 안된다. 많은 이물질이 나오기 때문에 꼬막 하나하나를 공들여 씻어야 한다. 세척을 다 하고 삶을 때에는 너무 오래 삶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하고 삶고 난 꼬막의 껍질 한쪽을 떼어 내는 작업도 필요하다.



6단계) 만두 빚기, 족발, 김장

제작 : 그림형제

쉬운 요리도 아주 많은 양을 만들려고 하면 한 끼 식사용으로 만들 때보다 손도 많이 가고 간 맞추기도 쉽지 않다. 일단 여기 6단계에서 언급하는 요리들은 시작 단계부터도 어렵긴 하지만 많은 양의 노동력을 요구한다. 끝난 후 뒷정리를 생각하면 한숨이 나오게 된다. 집에서 만두를 빚는 일이 그러하다. 만두소를 만드는 일은 간 맞추기, 양 조절하기가 필요하고 만두피는 반죽은 얇게 밀어 적당 크기로 잘라두어야 한다. 하나하나씩 가내 수공업을 계속하다 보면 줄지어 늘어나는 미니언즈 같은 만두들을 바라보며 현타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전날부터 작업해서 두 번을 삶아 내야 하는 족발은 또 어떠한가. 여간 고되고 성가신 작업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작업의 양과 난이도 측면에서 김장을 이길 수는 없다. 게다가 김장은 기타 작업이 수반되는데, 김장날이면 빠지지 않는 수육과 굴과 함께 만나는 겉절이가 그 주인공이다. 김장하느라 몸도 바빠 죽겠는데, 수육까지 삶아야 하니 가히 최상의 난이도라고 할 수 있겠다.



요리를 '할 줄 안다'고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은 2단계부터라고 생각한다. 판매되는 기성 양념을 최소한으로 사용하고 적어도 재료 손질을 스스로 해내야만 요리의 완성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 이후 단계부터는 요리를 '잘하는'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학교 운동장에 텐트를 치고 친구들과 하룻밤을 같이 보낸다는 것은 초딩에게 있어 좀처럼 흥분을 가라앉히기 쉽지 않은 일이다. 요리 콘테스트에서 1등을 하고 싶었던 필자를 어찌 되든 말든 내팽개쳐 두고 조원들은 그 흥분을 온몸으로 발산하고 있었다. 멀찌감치 걸스카웃 애들이 협동해서 김치찌개를 만들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오니 짜증이 올라왔다.


선생님들은 각 조별로 완성된 음식을 하나씩 모두 맛을 보신 후 심사 결과를 발표하셨다. 가장 맛있는 음식을 만든 3개 조를 호명했는데, 믿을 수 없게도 셋 중 마지막으로 필자의 조가 호명되었다. 그러나 이내 기쁨은 실망으로 변하고 말았는데, 요리 과정에서 협동하는 모습이 전혀 없었다는 이유로 실격으로 처리되고 만 것이다.


지금도 필자는 카레를 아주 좋아한다. 그런 의미에서 띄워보는 카레 song을 한 곡.





참고자료

- 브런치 : 김해경 "한식조리기능사 시험 4(마지막회)"

- 나무위키 : "요리"

- Youtube : 취미로 요리하는 남자 Yonam "취미는 취미로만 하는게..."

- Youtube : 성시경 SUNG Si KYUNG ♪"[성시경 레시피] 참치 김치찌개 | Sung Si Kyung Recipe - Kimchi stew with tuna"

- Youtube : 트박스 Twitch clips box "우정잉 - "이 정도면 요리 잘하는 거 맞죠??" 누렁이도 거르는 우정잉의 암살 요리 - [ 트박스 ] 샌드박스 트위치 핫클립"

- 만개의 레시피

- 렛츠쿡푸드 : 집에서 만들기 쉬운 음식 7가지

- 나무위키 : 아매요리



Main Photo : Katerina Holmes from Pi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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